돈은 그 자체로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이기까지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부재는 곧 죽음과 같다. 그런데 과연 인간의 '뇌'는 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EBS <다큐프라임-뇌로 보는 인간> 1부 '돈' 편은 총괄자문 및 프리젠터로 참여한 정재승 교수와 함께 돈과 관련한 다양한 실험과 그와 관련된 뇌의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테마는 자연스럽게 '부의 불평등'에 맞춰졌다.  

부의 불평등,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 평등하지 못한 분배 상태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마치 사람마다 DNA가 다른 것처럼, 보유하고 있는 부가 다른 것도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 방식(혹은 망연자실) 때문일까. 부의 불평등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0.9%가 전 세계 부의 43.9%를 보유하고 있고, 절반이 넘는 56.6%의 사람들은 전 세계 부의 1.8%만을 갖고 있다. 고작 1.8%이다.
 
 EBS <다큐프라임-뇌로 보는 인간>의 한 장면

EBS <다큐프라임-뇌로 보는 인간>의 한 장면 ⓒ EBS

 
우리 인간의 뇌는 20만 년 전 수렵 활동을 하던 시절의 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사냥한 고기 등을 보관하던 습성 때문에 돈 역시 자꾸만 쌓아두려 한다. 만족을 모른다는 이야기다. 부의 불평등은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현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동의하고 싶지 않겠지만) 인간은 돈을 다루는 데 상당히 서툴다. 많은 돈을 감당하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돈을 많이 가질수록 공감 세포가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항상 위에서부터 내려다보는 시각으로 말투, 행동을 지시형으로 하시는 분들이 실제로 많아요. 그래서 동등하게 만난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좀 어려워하시는 것 같아요. 항상 상하 관계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주변에 참모로 계시는 분들이 부자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니까 이 분이 좋아하는 이야기만 하게 되잖아요.

듣는 채널들이 계속 협소해지잖아요. 협소해지니까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공감 능력이 떨어지다 보면 자기 합리화를 하는 논리가 점점 더 맞다 생각하게 되고 확증 편향이 생기는 것 같아요. 나중에 CEO 갑질 사건으로 벌어졌을 때도 그 당시에는 '내가 뭘 잘못했지?'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거죠."


매경이코노미의 박수호 기자는 이른바 '슈퍼리치' 전문가이다. 그는 지난 14년 동안 현금성 자산이 10억 원 이상인 리치(부자)들과 100억 원 가량을 보유하고 굴릴 수 있는 슈퍼리치들을 한 주에 2명씩 만나 인터뷰했다. 대략 1000명 정도를 만난 셈인데, 그 정도 데이터가 쌓이면 뭔가 보이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박 기자는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매우 흥미롭고도 놀라운 문제제기였다. 
 
 EBS <다큐프라임-뇌로 보는 인간>의 한 장면

EBS <다큐프라임-뇌로 보는 인간>의 한 장면 ⓒ EBS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정재승 교수는 버클리대 심리학과 교수 대커 켈트너를 만났다. 대커 켈트너는 부와 특권으로 법망을 피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의 관심을 집중시킨 건 '보행자 구역'이었다. 대커 켈트너는 고급 차들이 먼저 온 보행자를 기다리지 않고 교차로를 지나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아챘다. 자동차 가격과 교통법 준수의 상관관계를 발견한 것이다. 

"보행자가 기다리고 있어도 어떤 차가 부행자 우선 구역을 지나칠지 궁금했습니다. 우리가 알아낸 것은 저가 차량의 운전자들이 100% 멈췄다는 겁니다. 고급 차량의 운전자들은 45%가 넘는 확률로 보행자 우선 구역을 지나쳤어요."

결과는 명확했다. 자동차 가격이 올라갈수록 정지선을 무시하고 지나갈 확률이 높았다. 다시 말해서 비싼 차일수록 교통 법규를 잘 지키지 않았다. 대커 켈트너는 "부유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미주 신경'의 반응이 없다는 걸 발견했"는데, 이는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느낄 때 공감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이 꺼지는 것"이라 설명했다. 결국 자기 기준에서만 생각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괴물'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부의 불평등이 야기하는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더 심각한 건 가난이 아이들의 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연구 결과였다. 인지 발달 신경 과학자 찰스 넬슨은 하루에 1~2달러 정도의 돈을 버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실시했다. 그들은 좁고 열악한 방에서 생활했고, 더러운 거리와 오염된 환경 속에서 자라 질병에 걸릴 확률도 높았다. 찰스 넬슨은 흥미롭지만 매우 슬픈 사실을 알아냈다고 말했다.
 
 EBS <다큐프라임-뇌로 보는 인간>의 한 장면

EBS <다큐프라임-뇌로 보는 인간>의 한 장면 ⓒ EBS

 
"아이들이 3세가 됐을 때 벌써 눈에 띄게 아이큐가 낮아졌습니다. 평균 아이큐가 100이라고 했을 때 방글라데시 아이들의 아이큐는 85정도밖에 되지 않아어요. 더 중요한 건 생후 2달 정도만 돼도 뇌의 회백질 양이 적었습니다. (...) 뇌의 처리 능력이 떨어지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의 지적 능력이 떨어질 것입니다. 다음 세대에도 영향을 미치겠죠." 

충격적인 결과였다. 부의 불평등이 교육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데까지는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미 생후 2달 무렵부터 뇌의 회백질 양에 차이가 생긴다는 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단지 방글라데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국가, 심지어 가장 부유한 국가라는 미국 내에서도 부의 불평등이 구성원들 간의 격차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가 공평하게 대우받지 못하면 분노하는 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은 원숭이를 통해 공평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유추했다. 그는 (두 마리의 원숭이 중) 왼쪽 원숭이에게 돌을 건네주는 대가로 오이 조각을 보상으로 주고, 오른쪼 원숭이에게는 같은 대가로 포도를 주었다. 그러자 왼쪽 원숭이는 불공평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해 매우 화를 내기 시작했다.

프란스 드 발은 공평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 오래된 감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서 "협력하며 살아가는 동물들은 불평등을 싫어"한다고 주장했다. 경제학자와 정치인들은 불평등이 자본주의의 한 부분이며 그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라 떠들어대곤 한다. 우리도 그런 이야기들을 당연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위의 실험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평등이라는 전통은 우리 종보다도 오래된 개념으로 영장류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보편적 현상이다.
 
 EBS <다큐프라임-뇌로 보는 인간>의 한 장면

EBS <다큐프라임-뇌로 보는 인간>의 한 장면 ⓒ EBS

 
팬데믹으로 번진 코로나19는 부의 불평등을 극명하게 드러내주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코로나19로 인한 격리조치가 계층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면서 "일종의 코로나19 카스트제도'가 만들어졌다"고 보도했다. 부자들의 경우 안전지역에 있는 호화로운 별장에서 격리생활을 맘껏 누리지만, 재택근무가 불가한 직종의 저소득 노동자들은 감염 위험에도 매일같이 출근해 부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야 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흔히 바이러스는 공평하다고 하지만, 감염 위험도는 각자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안전한 격리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며 설령 감염이 된다고 해도 부담없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다. 그러나 당장의 생계가 걸려 있는 사람들은 다르다. 가령, 새벽 배송을 해야 하는 '쿠팡맨'의 돌연사나 구로 콜센터의 집단 감염은 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재난도 불평등했다. 

결국 부의 불평등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극명한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런 양상은 (코로나19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훨씬 더 명징하게 드러난다. 평소에는 이와 같은 격차가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치 드론을 띄워 높은 상공에서 내려다 보기 전까진 부와 가난의 격차가 뚜렷하게 관찰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만큼 시야가 가려져 있기 떄문이다. 대가로 포도를 받는 원숭이가 내 옆에 있는 경우는 드물다.

절망과 희망이 교차한다. 부의 불평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현실은 암울한 미래를 연상케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 '슈퍼리치'는 아니지 않은가(슈퍼리치도 안심할 수 없다. 당신들의 공감능력에 문제가 있다니까!). 그러나 우리가 불공평에 저항하며 생존 확률을 높여 온 인류의 후손이라는 점은 일말의 희망을 품게 한다. 그리고 뇌는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정재승 교수의 내레이션을 통해 위안을 삼아 본다. 
 
"자본주의 시대, 우리의 뇌에 돈이 차지하는 공간은 점점 커지지만, 뇌는 돈을 다루는 데 허술하고 엉성합니다. 하지만 우리 뇌는 자본주의가 만든 불평등을 본능적으로 역겨워하고 혐오합니다. 우리 인간은 돈에 대한 탐욕만이 아니라 공정한 나눔의 미덕도 가지고 있습니다.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가장 큰 희망은 우리의 머리 속에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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