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디>를 보러 서울 잠실의 영화관에 갔다. 석촌호수의 벚꽃들도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하고, 제법 오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바로 석촌 호수가 전면 폐쇄조치 됐다. 올해 만개한 벚꽃은 조용히 홀로 피다 질 터이다.

꽃이야 사람들이 보러 와주건 말건 상관없이 철이 되어 피고 지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꽃과 다르게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애써 만들었음에도 시절을 잘못 만나 영화관에서 홀로 고생한다. '좌석간 거리 두기' 캠페인을 통해 한 자리씩 띄어판매하고 있지만 여전히 극장에는 손님의 발길이 드물다. 한참 떨어진 곳에 앉아 마스크를 풀지 않은 채 관람하는데, 그마저도 10명이 채 되지 않는 관객과 함께 봤다. 보러 온 사람이 적었기에, 스타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싶었던 '주디 갈란드'의 삶은 더욱 애달팠다.

인간이기 이전에 '스타'여야 했던 주디
 
 영화 <주디> 스틸 컷

영화 <주디> 스틸 컷 ⓒ (주)퍼스트런

 
주디는 약물 중독으로 인해 잠도, 먹는 것도 사람답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주디 역을 맡은 르네 젤위거는 영화 <조커> 속 호아킨 피닉스만큼 앙상하게 마른 몸, 바람이 불면 금세 날아가 버릴 것같은 걸음걸이로 등장한다. ​​​아이들과 함께 하룻밤 잘 곳이 없어 거리를 전전하는 주디에게 <브리짓 존스의 일기> 속 그 여배우는 보이지 않는다. 호아킨 피닉스에게 남우주연상이 당연했듯,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몫이 당연해지는 순간이었다. 

엄마 주디는 "아이는 내 몸 밖에 있는 심장"이라며 어떻게든 아이들을 책임지려 하지만 당장 묵고 있던 호텔에서도 쫓겨나는 처지다. 결국 두 아이들을 전 남편에게 맡기고 그는 무대가 있는 영국으로 향한다. 그가 원했던 건 평범한 삶이지만, 결국 그가 돌아갈 곳은 무대밖에 없는 이 장면을 통해 영화는 주디 갈란드의 삶을 정의한다. 영화는 주디 갈란드가 사망하기 6개월 전 섰던 마지막 영국에서의 공연과 영화 <오즈의 마법사>로 세상에 그녀의 이름을 알렸던 시절을 교차해 보여준다. 이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잠식당한 한 사람의 인생을 살핀다.
 
"잠을 자고 싶어요", "햄버거 한 입만이라도 먹고 싶어요", "휴식 시간을 주세요"라고 말하던 10대의 주디에게 제작사 대표는 선택을 강요한다. "네가 아니라도 너를 대체할 또래의 아이들은 많다"는 말은 선택이라기보다, 협박에 가깝다. "정해진 스케줄을 따르기 싫다면 당장 이 문으로 나가라"는 말에, 누가 어렵사리 얻은 주인공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갈 수 있었을까. 

2살 때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주디 갈란드는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전횡에 가까운 열렬한 지원에 힘입어 청춘스타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스타가 된 대가는 가혹했다. 스크린에서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제작사는 음식이나 잠 대신, 약을 먹였다. 결국 주디는 자고 싶어도 잘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한창 자라야 할 청소년기에 육체적 건강도, 정신적 건강도 챙기지 못한 주디는 자살 시도와 약물 중독 그리고 불성실한 태도로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할리우드 산업 시스템은 조금씩 주디의 정신과 육체를 갉아먹었다. 그러나 그를 책임지고 지키는 사람은 주디 자신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직접 키우고 싶지만 미국 그 어느 곳에서도 더이상 그를 불러주지 않았다. 그래서 영국으로 간 주디는 여전히 잠을 자지 못해 불안정한 모습이다. 그래도 아이들과 살기 위해서 주디는 무대에 선다. "다음엔 잘 해 낼 수 있을까"라는 무대 공포증 때문에 첫 무대조차 설 수 없을 뻔한 위기에 직면하기도 하지만, 떠밀리듯 올라온 무대에서 주디는 여전히 '스타 주디' 임을 증명한다. 성공적인 영국 데뷔 무대, 분장실에는 꽃다발이 넘치고 기사 역시 호평 일색이다. 하지만 정작 무대를 내려온 분장실의 주디는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이다. 그 무엇도 그를 위로해 줄 수 없어 보인다.

멋진 노래 뒤에 우레와 같이 쏟아지는 관객석의 박수와 찬사. 하지만 그런 인사를 받고도 주디는 "저는 무대에서만 주디 갈란드이지, 남들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그늘에서 스러져 간 '스타'의 삶
  
 영화 <주디> 스틸 컷

영화 <주디> 스틸 컷 ⓒ (주)퍼스트런

 
하지만 세상은 주디를 인간이 아닌, 스타로만 소비한다. 부모도, 제작사도 그리고 네 번의 결혼으로 만난 남자들도 모두 그랬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주디는 가진 모든 것을 주며 "결혼하자"고 말한다. 늘 내 편이 되어줄 누군가를 갈구하지만 결국 그는 늘 혼자 남는다. 다시 외로움과 쓸쓸함을 견디지 못하고 약과 술에 의지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스스로 견디지 못하는 삶의 무게는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기회마저 앗아간다. 무대와 노래를 여전히 좋아했지만, 그의 약해진 정신과 술과 약물에 지친 육체는 더 이상 무대를 감당할 수 없다.

우리는 종종 청춘스타였던 이들의 안타까운 내리막길을 기사로 접한다. 영화 속 주디를 보면서 그들이 떠올랐다. 인격이 제대로 형성되기도 전에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스타로 떠오른 그들은 늘 자신을 빼앗기며 살아왔다. "모든 걱정이 레몬 사탕처럼 녹아버리"는 달콤한 그 무엇을 꿈꾸지만 현실은 늘 녹록지 않다. "저 산 머너에 있는 무지개를 좇아 걸어가는 게 전부인 것이 어쩌면 인생"이라는 주디의 말처럼 말이다. 그들의 삶은 희생의 결과물이었지만 결국 그 삶의 무게 역시 온전히 스타 당사자가 짊어져야 한다. 

영화 <주디>는 어린 시절부터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몸 담았던 주디가 치른 가혹한 대가를 연민 어린 시선으로 그린다. 주디는 무대 위의 스타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으로 행복하고 싶지만 행복을 얻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스타였지만 끝내 내 편을 얻기는 어려웠던 한 인간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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