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자신이 아니면 정치를 할 사람이 없는 것처럼 여기지만, 정치인이 나가면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다. 그러니 권력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왕정의 붕괴 이후에도, 한국의 12.12사태 이후에도 항상 새로운 이가 등장해서 권력을 장악했다. 그리고, 스탈린이 죽은 후에도 그랬다.
 
 영화 <스탈린이 죽었다!> 스틸 컷

영화 <스탈린이 죽었다!> 스틸 컷 ⓒ M&M 인터내셔널

 
<스탈린이 죽었다!>는 구 소련의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 낸 블랙 코미디 영화다. 스탈린이 죽고 일어난 권력의 진공 상태에서 저마다의 야망을 가진 권력자들이 벌이는 좌충우돌 정치 쇼를 주제로 한다.
 
스탈린은 권력의 속성을 이용, 냉철하게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독재적 리더십을 손에 넣은 인물이었다. 그는 레닌 사후 유력한 경쟁자로 여겨졌던 트로츠키를 정치적으로 공격하고, 자신과 견해가 달랐던 부하린을 제거했다. 이후에는 대숙청으로 유명한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실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저항할 여지가 있는 이들은 죽이거나 굴라그로 보냈다.
 
이 영화의 제목처럼, 스탈린은 초반에 사망한다. 하지만 스탈린이 남긴 소련의 문화와 냉혹한 정치 현실은 영화를 진행하는 모든 등장인물을 옭아맨다. 사람을 죽이고 권력을 손에 넣지 않으면 아무도 믿을 수 없는 현실 말이다.
 
스탈린 생전에 살아있는 모든 이들은 스탈린에게 절대적 충성을 바쳐야 했다. 그러나 그건 언제까지나 살아있을 때다. 스탈린이 죽자 스탈린 휘하에 있던 장관들은 짧은 애도를 표하고, 눈치 작전을 시작한다. 권력 쟁투의 승자가 패자를 죽이는 소련에서 권력을 손에 넣을 사람에게 줄을 서야 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의 유머 선호를 기록하고 암기할 정도로 지략에 뛰어난 인물인 흐루쇼프, 과두 체제의 수장이지만 결단력과 카리스마가 부족한 말렌코프, 국민에 대한 철저한 탄압으로 위압과 정보를 손에 넣은 베리야의 3두 정치가 시작된다.
 
영화는 잔인한 소련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 국민들이 얼마나 비밀 경찰을 무서워하고 당의 위협에 떨면서 살아가는지 구체적으로 그려냈다. 영화에 등장하는 소련 사회는 밤에 누군가 문만 두드려도 아내가 고문을 당할 것을 염려해야 하고, 나와 상관없는 일로 당에 불려가도 죽음이 확실시되는 피바람이 부는 사회다.

영화의 주연은 흐루쇼프, 말렌코프, 베리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말렌코프는 스탈린 생전에도 눈치가 없어 사람들의 주의를 받던 인물로, 다른 장관들을 휘어잡을 힘이 없다. 이 영화의 코미디 부분을 담당하는 캐릭터다. 본인은 오직 자신만이 스탈린 사후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도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치적 지지 세력이 없는 명목상의 실권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현실을 웃기게 풍자하는 캐릭터다.
 
베리야는 비밀경찰의 총수로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있다. 이는 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 잇게 만드는 힘이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모든 사람이 베리야가 죽기를 바라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손에 타인의 약점이라는 중요한 카드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 패를 함부로 남에게 꺼내 위기를 자초했다. 오직 자신만이 남을 공격할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흐루쇼프는 정치를 '살아 움직이는 생물'로 보는 캐릭터다. 그는 애초에 스탈린 사후의 과두정치가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스탈린이 죽자마자 가장 기민하게 움직이면서 다른 이들을 포섭했고, 사람이 죽을 것을 각오했다. 흐루쇼프는 베리야가 막은 모스크바 열차 운행을 재개해 국민들이 총탄에 맞도록 설계하고, 군부와의 동맹을 바탕으로 베리야에게 역공을 가해 진공 상태를 종료, 스스로가 권력의 1인자가 된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다른 사람을 죽이러 온 사람이 죽는 일이 영화 내내 끊임없이 반복된다. 다른 이를 죽이러 온 사람은 자신이 일을 끝맺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정치판의 한 졸에 불과했다. 베리야는 비밀경찰을 동원해 스탈린의 별장에 있던 이들을 모두 제거했지만, 그 역시 다른 장관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영화는 훗날 흐루쇼프가 브레즈네프에 의해 쿠데타를 당해 실각할 것을 암시하면서 끝난다. 정치는 생물이기에 어떤 권력도 영원하지 않고, 권력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는 모든 경쟁의 승자인 흐루쇼프에게도 적용되는 법칙이었다.
 
이 영화는 구 소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권력과 인간이 가지는 관계를 극적으로 풀어냈기에 보편적인 재미를 가지고 있다. 권력을 쥐기 위해 아둥바둥 뛰어다니는 모습, 자신만은 남과 다르다고 오판하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웃음을 준다. 쓴웃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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