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3회는 관찰자는 웃지만 당사자는 마냥 웃을 수 없는 재미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소아외과의 안정원(유연석 분)은 진료 전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아이 엄마의 상황극에 동참한다. 그러나 순조로운 진료를 위한 안정원의 적극적인 동참은 당황스런 '등짝 스매싱'으로 막을 내린다.

살다보면 간혹 이렇게 웃지도 울지도 못할 황당한 결말에 당혹스럽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3회의 에피소드들은 어떤 시작이 어떤 결말을 향해 갈지 알 수 없는 우리 삶의 여러 단면들을 그려낸다. 결말을 알 수 없는 그 사연들 속에는 멈추지 않고 뛰는 심장처럼 뜨거운 사랑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포스터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포스터 ⓒ tvN

 
모두가 주목하고 축복하는 출발 전 기념 행사를 꼽는다면 단연코 결혼식일 것이다. 그 어떤 시작보다 설레임을 동반하는 결혼식에서,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게 치장한 신부는 축하를 만끽한다. 3회에는 이 멋진 하루의 행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할 신부가 등장한다. 인생의 새로운 출밤점을 찍는 결혼식 날, 아버지가 삶에 종지부를 찍을지도 모를 수술을 받아야만 한다. 이 기쁜 날 우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시작과 끝처럼 반대의 것들은 때론 한 곳에서 만나기도 한다.

끝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는 죽음이다. 결혼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죽음을 걱정해야 하는 신부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하지만, 수술을 맡은 흉부외과의 김준완(정경호 분)은 결혼식을 앞둔 신부를 안심시킬 그 어떤 단어도 구사하지 않는다. 수술이 잘못될 가능성이 희박함을 언급하며 좋게 말해줘도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레지던트 도재학(정문성 분)에게 "그런 말하지 말라"며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예비 신부의 말마따나 김준완이 '싸가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안정원의 경우처럼 웃고 지나가면 그만인 해프닝이야 스쳐 보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어떤 시작에는 간혹 당혹을 넘어선 참혹스런 결말이 기다린다. 누구나 '순풍에 돛단 듯' 무사태평을 기대하지만, 인생이란 바다가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 누가 불현듯 찾아오는 죽음을 두고 이번은 아닐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김준완은 이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간췌담외과의 이익준(조정석 분)의 환자였던 육희관의 에피소드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과 그 비애를 잘 드러낸다. 육희관은 내일이 어린이날이니 아들에게 짜장면이나 사주겠다며 밝은 얼굴로 퇴원하지만, 다음날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가 되어 율제종합병원으로 돌아온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들 옆에서 오열하는 아내의 모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황망한 비탄을 전해준다.

육희관을 수술했던 이익준 역시 이 갑작스런 비보에 슬픔을 느낀다. 육희관의 장기 기증 수술을 담당하게 된 그는 육희관의 사망일을 어린이날이 아닌 다음날로 되게끔 조정한다. 어린 아들을 두고 있는 이익준은 육희관의 아들이 매년 돌아올 어린이날을 아버지가 떠난 날로 기억하게 할 수 없었다. 이것은 아버지의 죽음을 혹여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자책 어린 슬픔에 빠질지도 모를 아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였다. 또한 아들을 두고 떠난 아버지 육희관에 대한 최선의 애도였다.

어떤 죽음은 때론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된다. 장기 기증으로 이어진 육희관의 죽음이 그러했다. 장기 기증에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 담긴다. 이름 모를 누군가는 그의 장기로 새로운 삶을 얻을 것이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이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고 감동으로 이어지는 부분이다. 끝이 곧 시작이 되는 생과 사의 순환은 철학이나 종교로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죽음을 이겨내는 현대의 부활은 이러할 터였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3회의 한 장면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3회의 한 장면 ⓒ tvN

 
시작과 동시에 끝을 걱정해야 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존재한다.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찬형은 심장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그런데, 아이의 심장처럼 찬형의 부모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갓 스물을 넘긴 듯한 젊은 부부는 심각해 보이는 찬형의 상태에도 걱정하는 기색없이 태연하다. 병원 사람들은 내심 그들을 철부지라 여기고, 부부의 어머니들 역시 김준완에게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들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준완은 약해 보이면 더 무시할까 일부러 강한 척했다는 찬형 엄마의 눈물어린 호소를 듣는다. 어떤 일은 미처 준비가 되기도 전에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리다 하여 자녀에 대한 사랑이 작을 수는 없다. 이른 나이에 부모가 된 탓에 아픈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조차 없었던 찬형 엄마를 보며 준완은 신부 아버지의 수술 때와는 달리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를 건넨다. 그것은 삶을 안타깝게 시작한 찬형의 수술을 꼭 성공시키리라는 다짐이며, 서툴러 보이지만 마음은 이미 제대로 부모가 된 찬형 엄마에 대한 응원이기도 하다.

다 큰 자녀는 그만 떠나보내야 할 때가 온다. 찬형처럼 부모가 전력을 다해 돌봐야 할 때가 있고, 찬형의 부모처럼 때가 이른 듯해 보이더라도 책임감을 갖고 홀로 서야 할 때가 있다. 찬형의 두 할머니들처럼 미숙해 보인다 하여 도와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꾸 대신하려 한다면 자녀를 완전하게 독립시킬 수 없게 된다. 양육도 종료할 시점이 있는 법이다. 성숙한 부모의 사랑은 간섭과 독립을 잘 구분해낸다.

세상 모든 것에 시작과 끝이 있다 하나, 시작은 있으나 그 끝을 알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아닐까 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3회에는 한없는 부모의 사랑이 그려진다. 수술을 마치고 나와서도 결혼식에 가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버지, 퇴원 수속을 밟으면서도 아들이 어린이날을 챙기려는 육희관, 그러한 희관의 마음을 헤아리는 익준, 아들의 수술이 걱정돼 준완의 주머니에 부적을 넣는 찬형 엄마의 모습 등은 끝이 없는 부모의 사랑을 그려낸다.

세상의 뉴스는 때때로 이런 모습과 동떨어진 부모의 소식을 전해주기도 하지만,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조건없는 사랑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부모의 사랑임은 부인할 수 없다. 부모의 사랑에는 본능과 책임감이 뒤섞인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3회에는 이러한 부모의 사랑과 어딘가 닮아보이는 환자에 대한 의사의 책임감을 조망한다.

'나를 찾자'는 라디오 DJ의 멘트에 화답하듯 휴일을 이용해 취미 생활에 나섰던 채송화(전미도 분), 안정원, 김준완은 호출을 받고는 병원으로 돌아온다. 의사라는 직업은 환자의 생사가 위협받을 때 곁에 있어야만 한다. 결말을 특정할 수는 없어도 원하는 결말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의사이다. 매번 죽음을 이길 수는 없더라도 당면한 죽음과 싸우는 것이 의사이다. 생명과 연결된 소명 의식과 책임감이 없다면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황급히 귀원한 세 사람이 전공한 외과는 의과 전공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처지이다. 병원에 존재하는 다양한 진료과 중 배우는 과정이 험난하고 전문의 취득 후 경제적인 꽃길을 보장받지 못하는 분야는 의과생들에게 선택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은 안타깝다. 여러 외과들, 특히 심장을 다루는 흉부외과 지원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뉴스는 낯설지 않다. 드라마가 그리는 율제종합병원의 상황 역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과 연습생 장윤복(조이현 분)과 장홍도(배현성 분)은 찬형의 수술 후 힘차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만져본 후 감격한다. 김준완은 왜 흉부외과를 시작하게 되었냐는 윤복과 홍도의 질문에 선배의 권유라는 그저 그런 대답을 했었다. 그러나 준완 역시 처음 실제의 심장을 만져본 후 윤복과 홍도처럼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흉부외과를 선택했다.

힘차게 뛰는 심장을 만지며 세 사람의 심장은 힘차게 뛰었을 것이다. 거세게 뛰는 심장은 무언가를 선택하게 하고, 그 선택을 지속하게 한다. 병원으로 급하게 돌아온 안정원, 채송화, 김준완은 그런 선택을 한 의사들일 것이다.

심장이 뛰는 선택은 부모의 사랑에 깔린 본능과도 비슷하다. 환자의 안위에 대한 책임감은 일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바탕될 때 더 강해지기 마련이다. 편하고 부담없는 미래가 보장된 선택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심장이 뛰는 일을 선택하는 의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환자를 위해서, 그리고 의사를 위해서 말이다.

심장이 뛰는 일에 남녀 간의 사랑이 빠질 리가 없다. 외과 레지던트 장겨울(신현빈 분)은 안정원을 짝사랑하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일에는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무덤덤한 사람으로 보이는 장겨울의 연정은 뜻밖이다. 예외없이, 그녀의 심장도 뛰고 있었다.

이익준의 지적처럼 안정원은 신부에 대한 미련을 여전히 갖고 있기에 앞으로 장겨울의 애정 전선은 좀 험난해 보인다. 그러나, 안정원을 보고 뛰기 시작한 그녀의 심장이 멈추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심장의 요동이 마음대로 된다면 세상의 고통 절반쯤은 거뜬히 줄어 들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랑의 묘연한 행방에 가슴 아픈 사람이 있으니 바로 이익준이다. 외국에서 잠시 귀국한 익준의 아내 육혜정(기은세 분)은 그에게 이혼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한다. 혜정의 전화에 설렘을 감추지 못했던 익준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한번 일치한 애정의 향방이 영원히 맞물려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흘러 누군가는 여전히 사랑하지만 누군가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 다른 남자가 있는 듯한 혜정의 정황들은 그녀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음을 짐작케 한다.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고 약속한 결혼이 꼭 사랑의 종착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변덕스런 사람의 마음을 몇 가지 법적인 서류들로 구속하기란 쉽지 않다. 함께 가던 길 중간에서 한 사람만이 이별을 원하는 건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미처 끝나지 못한 사랑은 언제나 가슴 아프다.

이익준과 육혜정이 이러한 결말을 예상하고 사랑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 것이다. 혹여 세드 엔딩이 예상되더라도 쉽게 멈출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의 시작에 앞으로 전개될 서사를 고려하는 통찰력을 위한 자리는 없다. 오직 상대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을지가 가장 중요해진다. 상대만 보면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은 같은 박동으로 화답받을 순간만을 기다린다. 사랑에 빠진 누군가를 보는 것이 은근히 기분 좋은 것은 계산이 사라진 이 순수가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3회의 한 장면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3회의 한 장면 ⓒ tvN

 
그 아름다운 시작의 순간을 <슬기로운 의사생활> 3회는 종료 직전에 비춘다. 채송화는 신경외과 레지던트 안치홍(김준한 분)의 잦은 실수를 질책하지만,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말라는 격려를 잊지 않고 전한다. 비오는 날, 캠핑장에 나타난 안치홍은 채송화의 새 신발을 자신이 선물한 것임을 드러낸다.

비 오는 캠핑장, 나란히 앉은 텐트 앞, 진료 가운을 벗고 병원이 아닌 곳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설레임을 전해준다. 시청자들의 심장을 간질이는 방법을 잘 아는 대본이자 연출이다. 둘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시작'이다.

찬영의 멈추었던 심장이 뛰기 시작할 때의 감격은 '뛴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이 순수함에는 전개에 대한 계산과 결말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린 이 두려움을 현명함으로 포장하며 뛰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며 살아가기 쉽다. 뭔가를 시작한 후에 따라오는 책임감 역시 부담스럽다. 그러나, 그 두려움도 부담감도 한편 시작한 일을 이끄는 힘이 되기도 한다.

김준완은 예상치 못할 결말을 도외시하는 것을 경계하는 사람이다. 희박하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면 성공을 장담하지 않는다. 그가 하는 분명한 약속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이다. 미리부터 책임질 수 없는 결말에 대해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도리는 최선이다. 시작이 아름다운 건 이 '최선'을 이끌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시작이 없다면 최선도 있을 수 없다.

찬영의 작지만 힘차게 뛰는 심장은 이 끝을 따지 않은 열정의 고동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가슴이 뛴다면 그 무엇도, 여전히 아직 늦지 않았다. 심장이 멈추지 않는 한, 사랑에 지각은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양선영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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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한 귀퉁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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