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픈 더 도어>의 원제는 "STRAY"이다. 길을 잃은, 혹은 합당한 궤적에서 벗어난 등을 의미하는 형용사이다. 한국 개봉 제목은 단어에서 문장으로, 형용사에서 '문을 열라'는 명령문으로 바뀌었다.

예고편이나 한국 개봉 제목이 호러물을 연상시키지만 섬뜩한 기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나면 호러물이란 생각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고통으로 인해 길을 잃은 인간군상의 슬픔, 그리고 꾸역꾸역 살아내려는 삶의 의지 같은 것을 느끼게 될 법하다. 그 슬픔과 의지에 동감하게 되는 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네 삶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와인빌 양계장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다 
 
 영화 <오픈 더 도어> 스틸 이미지

영화 <오픈 더 도어> 스틸 이미지 ⓒ (주)팝엔터테인먼트

 
<오픈 더 도어>는 1928년~1930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와인빌 양계장 살인사건에 착안한 영화다. 와인빌 사건은 캘리포니아주 일대에서 일어난 끔찍한 희대의 범죄로, 많은 소년들이 납치·감금·살해되었다. <오픈 더 도어>는 이 사건을 전면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전체 사건의 지엽적 사건인 '뒤바뀐 아이' 실화에서 영감을 받아 공포 스릴러로 변용하여 제작되었다.

'뒤바뀐 아이' 실화에 집중한 영화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체인질링>(2009)이 있다. <체인질링>이 와인빌 양계장 살인사건과 한 아이의 실종사건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연결지어 조명한 작품이라면 <오픈 더 도어>는 개개 인간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고통에 어떻게 영혼이 잠식되는지를 공포물로 소화하였다.

시나리오가 탄탄하다. 디즈니가 만든 최초의 러시아판 판타지물 <북 오브 마스터: 마법의 돌>의 원작자로 유명한 안나 스타로비네츠가 러시아의 신세대 공포 영화 감독 올가 고로데츠카야와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체인질링>이 사회와 땅에 발을 디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오픈 더 도어>는 인간 내면과 외면 사이의 경계에 존재하는 이질감과 위화감을 극단의 공포와 갈등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인간 내면의 약점과 심리의 외곽 공략한 판타지의 리얼리즘 
 
 영화 <오픈 더 도어> 스틸 이미지

영화 <오픈 더 도어> 스틸 이미지 ⓒ (주)팝엔터테인먼트


실종된 어린 아들을 찾아 헤매던 부부는 실종 3년 만에, 잃어버린 아들과 같은 나이인 기이한 아이를 우연찮게 고아원에서 만나 운명처럼 집으로 데려온다. 그런데 아이가 온 후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데려온 아이는 실종된 부부의 아들과 점점 똑같이 변해간다. 그리고 추악한 비밀들이 드러나며 가족과 주변은 극심한 공포에 휩싸여 점차 파멸로 치닫는다.

<오픈 더 도어>에서 보여주는 공포의 핵심은 외부에 존재하는 호러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 내부의 죄의식과 상실감이라는 가장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끊어내는 '그것'의 정밀타격이다.

내부에 그런 허약한 공간이 생기는 순간 도로에 싱크홀이 생기듯 공포는 인간 영혼을 무너뜨린다. 시나리오상의 장점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종반부에 이를 때까지 이 영화가 귀신이나 요괴를 취급하는 자연주의 영화라고 생각하게 하다가 막판에 심리주의의 반전을 이루면서 인간 자체를 탐색한 영화임을 보여준다는 것이겠다. 스릴은 경계의 끝까지 유지되고 긴장은 폭발할 듯하면서도 끝내 세속적인 방식으로 터지지 않는 데서 영화의 묘미가 있다.

스토리라인을 따라가 보자.
 
실종. "아들이 사라졌다."
6살 아들이 실종되고 3년이 지나 여전히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고르와 아내 폴리나는 친구의 조언대로 입양을 결심한다. 고아원에서 운명처럼 아들과 같은 나이의 고아 소년을 집으로 데려온다.
 
사랑. "아들과 닮아가는 아이"
거칠고 어딘가 이상한 아이. 공격성이 넘치고 사회성은 없다. 폴리나는 그런 소년에게 온 사랑을 쏟는다. 아이는 아이는 점점 실종된 아들을 닮아간다.
 
희망. "우리 가족은 행복할 거야."
아이와 함께 아들을 잃어버리기 전 행복했던 시절로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부부. 함께 소풍을 가고, 친구들을 만나는 등 평범하지만 더 없이 소중한 시간을 보낸다.
 
행복. "기적의 탄생"
부부는 실종된 아들을 되찾은 듯한 기분에 다시 삶의 활력을 얻고 게다가 기대하지 않은 임신까지 이루어진다. 이 부부에게 행복한 미래가 펼쳐질 것처럼 보이는데.
 
위협. "아이가 점점 무서워져."
하지만 폴리나의 임신 후 아이의 공격성이 강해지고 단순한 새로 태어날 동생에 대한 질투심이라기엔 아이의 위협은 공포심을 자아낼 정도로 과도하다.
 
갈등. "저 아인 우리 아이가 아냐"
폴리나를 향해 질주하는 카트, 음식물에 섞여있는 바늘,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폴리나는 아이에게 극심한 공포를 느끼고 아이와 폴리나 사이의 갈등은 점점 증폭된다.
 
공포. "제발 아이와 단 둘이 두지 마"
남편 이고르와 함께 있을 때는 사랑스러운 아이지만 폴리나와 단둘이 남게 되면 180도로 변하는 아이.
 
추적. "대체 아이의 정체가 뭐죠?"
매순간 긴장된 상태에 늘 불안에 시달리며 공포에 시달리는 아내. 이고르는 아이를 처음 발견했던 고아원을 찾아가며 아이의 정체를 쫓기 시작한다.
 
비밀. "그것은 아이가 아니에요."
모습은 아이로 보이지만 그것은 아이가 아니라고 경고하는 수녀.
 
진실. "당신 가족이 위험해요."
아이의 주변엔 사고가 끊이지 않고, 그리고 하나 둘씩 밝혀지는 치명적 비밀과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진실.

 
관객은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스멀스멀한 공포감 속에서 지켜보게 되는데, 결말을 예상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이 상승의 삶이 급전직하하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처럼 서서히 하늘로 올라가지만 갑작스럽게 땅으로 처박히리라는 사실을 예감한다.

반전을 호들갑스럽지 않게, 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그럼에도 사건의 개연성과 의미를 부여하며 이끌어내야 하는 데에서 제작진의 역량이 발견된다고 할 때 <오픈 더 도어>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피를 동원하지 않고 싸늘한 냉기만으로도 공포의 최대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칭찬하고 싶지만, 공포와 함께 삶의 의미 그리고 인간 실존의 취약함을 포착한 것에도 점수를 주고 싶다. 공포스릴러 장르를 통해 심리주의적 성취를 이루었다고도 평할 수 있겠다.

영화의 중반부쯤부터 의혹의 소년을 '그것'으로 부르기 시작하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미론적인 암시이자 존재론적 위기를 상징하는 어휘이다.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라는 저서를 통해 관계를 '나와 너(Ich und Du)'와 '나와 그것(Ich und es)'으로 구분한다. '나와 그것(Ich und es)'은 소외받고 상처받는 관계이므로 우리는 '나와 너(Ich und Du)'의 관계를 지향하며 살아야 한다.

원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고, 사실 우리 삶은 '그것'들로 채워져 있다. 그것이 커다란 싱크홀을 만들지 못하게 우리 내면의 지반이 탄탄하게 유지되기를 바라는 게 어쩌면 더 현실적이지 싶다. 한데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닌 것을 어찌할까. <오픈 더 도어>의 결말은 인간 존재의 취약과 애틋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폴리나 역을 옐레나 랴도바, 이고르 역을 블라디미르 브도비첸코프가 맡았다. 4월 8일 롯데시네마 단독 개봉.
덧붙이는 글 안치용 기자는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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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평론하고, 래디컬 정치를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청소년/대학생들과 자주 접촉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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