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빈의 어린 시절도, 성격도, 외모도, 가족도, 옷도 궁금하지 않다. 궁금한 것은 오직 검찰과 법원과 사회가 그를 어떻게 벌할 것인지 여부다. 디지털 성범죄를 끝내려면 그가 평범한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에 참석한 신성연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의 일침이다. 최근 자우림밴드 김윤아도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마십시오. 범죄자에게 마이크를 쥐어주지 마십시오"라는 글을 소셜 미디어에 올려 많은 공감을 얻었다. 이른바 '가해자의 서사'에 대한 거부는 '텔레그램 대화방 성착취 사건' 해시태그 운동의 정서적 근간과 맞닿아 있다.

가해자를 악마화, 신성화, 개인화하며 그 특수성을 강조하지 말라는 것. 가해자와 피해자의 신상털이 보도 또한 사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그 어떤 보도나 의제설정을 거부한다는 것. 이를 통해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 재범 방지와 구조적 개선 등을 위한 사회적 역량이 총동원돼야 한다는 것 말이다.

헌데, 28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아래 <그알>) '은밀한 초대 뒤에 숨은 괴물-텔레그램 박사' 편은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정확히 역행하고 있었다. '텔레그램 대화방 성착취 사건'에 쏠린 관심을 반영하듯, 7.2%란 높은 시청률(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을 기록한 이날 방송은 언뜻 보면 <그알>이 그동안 꾸준히 해왔고, 또 잘 해왔던 보도의 연장선상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방송을 지켜본 이들은 SNS, 포털 사이트,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피해를 적극적으로 포르노화 시켰다", "(이날) <그알> 방송(을) 조주빈이 평생 소장할 듯", "조주빈 '신상' 빼고 알게된 게 더 있나?",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자극적인 말로 일관했다"는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불쾌감을 표시하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민원을 독려한 이도 있었다.

같은 시각, 윤석희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등이 출연해 'N번방 사건과 디지털성범죄'를 주제로 토론한 KBS 1TV <생방송 심야토론>이 더 유익하고 공익적이었단 평가도 적지 않았다. 불과 지난주 '회장님 위의 회장님-벗방 카르텔의 진실' 편을 통해 성인 인터넷 방송과 디지털 성범죄와의 연계를 취재했던 <그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악마화, 그리고 범죄자의 서사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박사와 그의 불법행위에 동조해온 관전자들의 행태를 전하려다보니 그 과정에서 '일베'(일간 베스트) 문화가 일부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의도가 박사방의 실상을 가감 없이 전하고자 한다는 점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행자의 입을 통해, 제작진은 이렇게 당부했다. "조주빈이 진짜 박사가 맞는지, 박사가 또 얼마나 끔찍한 범행을 해 왔는지, 피해여성들을 우리가 왜 이해하고 보호해야하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란 당위가 동원됐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조주빈의 발언을 강조하고 그의 신상에 주목하며, 그 과정에서 <그알> 특유의 자극적인 묘사가 곳곳에 포진됐다.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불쾌해하거나 의아했던 요인이 여기에 있을 터다. 그러니까, <그알>이 지금껏 해왔고 주력했던 사건과는 비교할 수 없는 훨씬 세심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했다는 사실 말이다.

조주빈은 이미 구속수사를 받고 있다. 그는 미지의 연쇄살인범이 아니다. 피해자들이나 유가족들이 혹은 시청자들이 '죽도록 잡고 싶어서' 그 어떤 묘사도 용인해 줄 그럴 상황이 아니다. 범인을 위한 단서를 추적하고 퍼즐을 풀기 위해 자극적으로 '가해자의 서사'를 동원할 필요가 있었는지, 시청자들이 묻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구속되기 며칠 전까지 조주빈을 만났다는 친구의 인터뷰는 의구심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가 더 나서는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친구라고 저는 믿고 생각을 하고 있던 친구가 지금 성범죄자다. 그런데 이거는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중략).

"어렸을 때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저한테 얘기 많이 했었거든요. 그 다음 약간 여성 혐오도 어느 정도 없진 않은 거 같아요. 엄마에 대한 혐오 때문에 생긴 건지.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그 이후로 아버지한테 좀 맞으면서 자랐나? 약간 좀 호되게 자랐다고 들었거든요. 엄마를 되게 안 좋아했어요."


조주빈을 이해하고 공감하자는 취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주빈이 누군이 알아야 한다'는 명목 하에, <그알>은 조주빈 본인이 '확인'하거나 수사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은 조주빈의 과거와 심리를 친구의 입을 통해 나열했다.

과거 부모로부터 심리적‧물리적 학대를 받았다거나 여성과의 관계 맺기를 힘들어 한 점이 어머니와의 관계로부터 나왔다는 추측은 시청자가 알아야 할 정보였을까? 이러한 가정환경이 조주빈의 범죄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추측, 키가 크는 수술을 했다는 과거를 시청자들이 과연 알 필요가 있을까?

26만 명에 달한다는 가담자들을 잡기 위한 방편이란 당위를 내세울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박사의 구속과 관련 청와대 청원이 500만을 돌파한 이후 모든 언론이 달라붙어 보도를 쏟아내는 중이다. 검경 수사기관과 정부 역시 사건 해결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천명했다. 어떤 연쇄살인범처럼 언론 중에서 <그알>만 혼자 쫓고 있는 사안이 아니란 얘기다.

여타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 않은 내용도 물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조주빈이 직접 썼다는 '내가 바뀐 계기'라는 장문의 글이었다. <그알> 제작진은 진술분석가 등 전문가를 동원해 조주빈의 심리나 과거 이력을 유추하고 있었다. '이걸 길고 자세하게 보도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내용이 다수였다. 왜 그랬을까. 혹여 방송 외적인 요소가 작용한 건 아닌지, 그것이 알고 싶어진다.

<그알>의 피해자 
 
"박사라는 대화명 뒤에 숨어 있는 괴물의 얼굴은 26살 조주빈이 맞는 걸까. 직업이 없었고, 이렇다 할 직업도 없었고, 전과도 없었고. 조주빈은 누구일까요? 진짜 박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방송 초반, 진행자는 이렇게 묻고 있었다. <그알> 제작진은 방송 초반 조주빈이 실제 '박사'가 아닐 가능성을 꾸준히 제기했고, 중반까지 그런 방향으로 계속 질문을 던지고 퍼즐을 맞춰가는 방식으로 편집을 이어갔다.

"목소리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라 생각했는데, (조주빈) 그 사람이 진짜 일까 모르겠다"는 한 피해자의 주장, 다른 공범들 그 누구와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다는 경찰 수사 내용, 30대 후반에서 40대 초중반으로 예상된다는 프로파일러의 예상 등이 조주빈이 박사가 아닐 거란 의심의 근거였다. 

조주빈 친구의 제보 내용이나 일종의 '자서전'이 주요하게 다뤄진 것을 포함해 편집 방향 전체가 그러한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제작진은 실제로 조주빈이 '박사'가 아닐 거란 방향으로 취재를 이어갔던 것 같다.

애초 지난 21일 방송된 예고편의 제목은 '자서전과 비트코인-진짜 박사가 남긴 시그니처'였다. 유튜브나 홈페이지에서 현재 삭제된 이 예고편에는 제작진이 조주빈이 아닌 다른 남성A씨를 쫓아가 "박사를 아시나요?"라고 묻는 장면이 포함돼 있었다.

조주빈은 20일 검거됐지만, 이 예고편만 보면 '조주빈이 아닌 다른 범인이 있다'는 내용을 유추하기에 충분했다. '자서전'과 '비트코인', '진짜 박사'란 제목도 이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27일 <미디어오늘>의 <SBS '그알' 때문에 'N번방 공범자' 낙인찍혔다> 단독보도에 따르면, 이런 암시는 제작진의 실제 취재내용이자 제작 방향이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알> 측에 따르면 조주빈씨가 운영하던 박사방에 지난 9일 암호화폐 주소가 몇 개 올라왔다. 이 중 하나가 A씨 비트코인 주소다. 박사방 참가자들은 성착취물 대가로 암호화폐를 지급하는데 보통 운영자가 1:1 채팅방을 열어 주소를 주고 암호화폐를 받지만 이례적으로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던 이 시기 단체방에 주소들이 올라왔다.

<그알> 취재진은 이방에 올라온 주소 중 하나라는 이유로 A씨를 박사의 공범자 내지 '진짜 박사'로 추정했다. A씨는 이날 취재진이 떠난 이후부터 약 6일간 문자와 이메일로 14차례 해명을 보냈다. 예고편이 올라온 이후엔 예고편 삭제도 요청했다. 담당 PD는 이메일에 답변하지 않았고 문자로만 일부 답을 했는데 계속 A씨를 범죄자로 보는 관점이었다." (20일 <미디어오늘>, <SBS '그알' 때문에 'N번방 공범자' 낙인찍혔다> 기사 중)


납득할 수 없는 취재, 노린 것은 특종인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사건을 요약하면 이렇다. <그알> 제작진은 비트코인 주소를 도용당한 A씨를 '박사'로 추정, 지난 18일부터 위와 같이 취재에 돌입했다. 2013년부터 암호화폐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하기도 했던 A씨는 졸지에 '박사'로 낙인 찍혔고, A씨의 연이은 해명과 호소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은 강압적인 취재를 이어갔고, A씨를 모자이크 처리한 예고편까지 방송했다.

<미디어오늘>의 취재에 응한 A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알> 제작진의 강압적인 취재는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A씨가 실제 '박사'인지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기보다 '낙인찍기'와 추궁에 가까운 취재를 앞세웠고, 결국 A씨는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금전적 손해는 물론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기에 이르렀다.

<미디어오늘>은 28일 두 번째 기사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만으로 그를 무너뜨렸다>에서 <그알> 제작진을 향해 "확실한 증거 없이, 반론을 마주해도 기존 취재 방향을 유지하는 언론이 있다"고 비판했다.

A씨가 '박사'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 후에도 <그알> 제작진은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반복했다. A씨에게 '암호화폐 전문가'로서 취재에 응해달라며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이다. 28일 방송 후반부 <그알>은 이른바 '팀박사', 즉 조주민과 주요 공범들의 또 다른 범죄를 추적하며 비트코인과 암호화폐 관련 내용을 방송했다.

하지만, <그알> 제작진은 이 사안에 대해 방송 내용에서 그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만약 A씨가 '박사'가 아니라는 사실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알>은 "진짜 박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라며 A씨가 '박사'라는 '암시'만으로 방송을 끝내진 않았을까.

앞서 언급했지만, 이번 사건은 <그알>이 평소 잘하고 또 잘해온 살인사건 등과 같은 범죄와 다른 취재, 다른 편집을 요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A씨의 예나 실제 방송에서 보듯, <그알>은 '평소 하던대로' 취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니, A씨의 경우 오히려 암호화폐를 도용당한 피해자를 범인으로 단정하는 듯한 취재 방식을 강행했다고볼 수 있다. SBS와 <그알> 제작진은 아직까지도 고통을 호소 중이라는 피해자 A씨를 위해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 것인가. 행여 경찰이 조주빈의 신상공개를 결정하기 하루 전, 조주빈의 얼굴을 먼저 공개한 SBS < 8뉴스 >처럼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울 것인가.    

그렇다면, 제작진은 애초 예고편까지 당당하게 내보낸 '은밀한 초대 뒤에 숨은 괴물 - 텔레그램 박사' 편을 통해 무엇을 추구했던 걸까.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목소리를 외면한 채, 검거된 조주빈이 실제 박사가 아니라는 암시를 통한 '특종'을 노렸다고 밖에 볼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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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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