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행> 한 장면

영화 <부산행> 한 장면 ⓒ (주)NEW

 
영화 <부산행>에서 좀비가 창궐하자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문을 닫는 것이었다. 일단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상식적인 생각은 잠깐 거두고, 우리가 '문'이란 걸 만들어 '여닫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만 주목해보자.

인간은 세상 모든 곳에 경계를 그어놓고 그 속에 갇혀 산다. 드넓은 허허벌판처럼 보이는 평야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국경이 그어져 있고, 산과 들, 강과 심지어 하늘에도 도시의 경계가 그려져 있다. 비단 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건물 역시 인간이 공간을 실체로 나누어 놓은 경계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경계'가 탄생한 배경에는 소유의 개념이 있다. 내 것을 잃지 않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생각'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경계란 것이 얼추 이기심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실로 그렇지 않은가? 이기적인 곳일수록 경계는 폐쇄적이며, 관용적인 곳일수록 경계는 넓고 모호해진다. 모두에게 개방된 광장이나 공원은 사방팔방이 뚫려 딱히 경계라고 구분 지을 만한 곳이 없다. 그러나 기업의 거대한 고층건물이나 고급 아파트일수록 경계는 철저해진다.

그런데 인간은 눈 앞에 보이는 실체에 경계를 그어놓을 뿐만 아니라 관념의 영역에도 경계를 긋는다. 우리 집, 우리 회사, 우리 지역, 우리나라 등과 같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하나의 경계로 덩어리를 이루는 개념들이 우리 머릿속엔 분명히 존재한다. 대개 가상의 경계는 '무엇을 함께 하는가'의 기준인 '소속'과 관련이 있지만 때로 현실을 구분 짓는 경계와도 연동되면서 실체를 갖기도 한다.

현실에서도 드러나는 관념의 경계 
 
 영화 <부산행> 한 장면

영화 <부산행> 한 장면 ⓒ (주)NEW


실재하는 공간이 그러했듯, 소속과 같은 인간만의 관념 역시 이기적인 것일수록 경계가 강화된다. 영화 <부산행>에서도 석우(공유 분)는 증권 투자자로 소위 '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과 자신을 철저히 나눈다. 또한 그가 민 대위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나오는 스마트폰의 주소록처럼, 그는 '이익이 되는 인간'들 만을 자신의 테두리에 넣는다.
 
이런 관념의 경계는 곧 현실에서도 드러나게 된다. 석우 일행을 태운 KTX 101 열차는 대전역 광장 앞에 멈춰 서지만 석우는 딸인 수안만을 데리고 협소한 옆길로 새면서 문을 닫는다. 후에 석우가 기차 안에서 갇힌 사람들을 구할 때도 '안전한 사람들'이라는 소속으로 뭉친 시민들은 열차 칸 하나의 문을 걸어 잠그고는 '안전 칸'이라는 경계를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 비춰보면 인간이 무수히 나눠놓은 경계란 이기심과 관념의 경계에서 시작된다고도 할 수 있다. 먼저 '나부터 살자'는 마음이 구체화되고,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짐으로써 현실에 경계가 발생하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상상'하는 사람들

문제는 관념의 경계가 현실 영역과는 다르게 무한히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보고 듣는 모든 것에 무한한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데, 실제 현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어떤 사실을 배척할 수 있다. 마치 사람들을 구하고서 '안전 칸'에 도달한 석우를 향해 눈 상태가 이상하다며 감염됐다고 거짓으로 외치는 용석(김의성)처럼 말이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이기심을 갖고 경계를 갖는 것까지는 어쩔 수가 없지만, 경계를 긋지 말아야 할 부분까지 상상해가며 경계를 긋는 것은 진실로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인종차별, 지역차별, 빈부차별, 성차별 등 만연한 차별과 그 대상에 대한 폭력은 그들 존재가 본래 어떠했는지는 구분하지 않는다. 경계 밖에 있으면 그만이다. 게다가 이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 당신이 한국인이라는 단순한 사실이 해외에서 어떤 결과로 되돌아오는가?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함께 바이러스를 옮기는 숙주쯤으로 오인되고 있지는 않은가?

경계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자신을 가두는 것이기도 하다. 석우가 샛길로 빠진 바람에 탈출로의 제한을 받아 좀비의 습격을 받게 된 것이나 '안전 칸'에 모인 사람들이 결국은 가장 위험한 곳에 갇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이기심을 탈출하는 방법에 관하여
 
 영화 <부산행> 한 장면

영화 <부산행> 한 장면 ⓒ (주)NEW

 
"구조대가 올까요?"
"부산은 안전하단 얘길 들었어요. 가려면 지금 가야 돼요."
- 영화 <부산행> 석우와 성경(정유미 분)의 대화 중에서.


영화 <부산행>은 시종일관 '문'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문은 항상 폐쇄된 경계 끝에 놓여있으면서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게 한다. 자기 생존을 향한 갈망은 너무도 강력해서 모든 것을 덮어놓고 무시하려는 경향을 불러일으키지만, 문의 존재를 알고 여닫을 줄 아는 사람은 경계 밖의 일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인간은 경계를 그어 모든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면서도 분명 '열 수 있는' 문을 달아놓았다. 그렇다고 했을 때 문을 여는 것은 순전히 그것을 열기로 한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이기심에 함몰돼 각자의 경계에 갇혀 서로의 살점을 뜯어먹는 세계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경계에 달린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경계를 왜 그었는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인간의 생존을 막는 경계(境界)를 경계(警戒) 하지 않음은 문제가 있지 않은가? 독일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도 말했듯, 사람들은 무엇을 의심해 검사를 하면서도 그 검사 자체는 검사하지 않는다.

무언가 우리 앞에 그어진 경계(살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그 모든 영역)가 수상쩍을 때는 그 중심에 사람을 놓고 보면 모든 것이 간단해진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망가지는 것을 그저 방치하는 것은 언젠가 나의 파멸을 승낙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이미 주어진 경계에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문을 열어 직접 상황을 둘러보고 위험 앞에서는 문을 닫고, 구원 앞에서는 문을 여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이기심에 미쳐버린 공간(생각)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지 말라. 배려와 공감이 있는 사람다운 사회, 안전한 내일로 가는 길은 언제나 문을 열고 위험한 생각 밖으로 나가는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황경민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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