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두산 베어스의 자체 청백전이 열렸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시즌 개막을 연기한 KBO리그는 시범경기는 물론 연습경기도 전면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각 구단은 자체 청백전을 통해 실전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스프링캠프부터 함께 훈련하던 동료들과의 경기라 아무래도 긴장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만 현 시점에서 청백전은 선수들의 경기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훈련법이다.

이날 두산 청백전에서 청팀은 새 외국인 투수 크리스 플렉센이 선발 등판했다. 플렉센은 시속 152km의 강속구를 던지며 3이닝을 2피안타1볼넷 무실점으로 틀어 막았다. 제구가 다소 흔들리면서 투구수가 54개로 많아졌지만 플렉센은 연습경기에서 10이닝2실점(평균자책점1.80)으로 좋은 투구내용을 이어가고 있다. 두산은 플렉센이 조쉬 린드블럼(밀워키 브루어스)이 떠난 자리를 메워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반면 백팀 선발로 예정돼 있었던 또 한 명의 외국인 투수 라울 알칸타라는 목에 가벼운 담 증세가 있어 등판하지 못했다. 하지만 알칸타라 대신 등판한 이 투수가 6명의 주전 선수가 포함된 청팀을 상대로 3이닝 노히트로 호투하며 김태형 감독의 눈도장을 찍는데 성공했다. 두산 4년 차 사이드암 최원준이 그 주인공이다.

프로에서 공 하나 던지지 못한 나날

두산은 전통적으로 잠수함 투수가 강하지 못했다.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잠수함 투수로 꼽히는 김진욱 전 감독은 세 번이나 두 자리 승수를 올렸지만 고질적인 허리 부상 때문에 프로 생활을 단 10년밖에 하지 못했다. OB베어스가 2년 연속 꼴찌에 머물렀던 1991년 김상진(두산 재활코치)과 함께 동반10승을 기록했던 김동현도 그 해가 선수생활의 처음이자 마지막 전성기였다.

2000년대에 활약한 불펜 투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2004년 79경기에 등판해 3승3패2세이브15홀드3.12를 기록했던 정성훈은 은퇴할 때까지 단 1승을 추가하는데 그쳤고 2005년 8승을 올렸던 김성배는 롯데 자이언츠 이적 후 비로소 진짜 전성기를 맞았다. 2009년 'KILL라인'의 일원이었던 고창성(두산 재활코치) 역시 2010년을 끝으로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말았다.

루키 시즌 4승1세이브2홀드1.71의 성적을 기록했던 변시원(KIA타이거즈, 개명 전 변진수)은 루키 시즌의 활약을 재현하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 롯데 이적 후 홀드왕에 오른 오현택도 두산 시절 구위가 좋았던 시즌은 1,2년에 불과했다. 프로 2년 차 시즌에 국가대표까지 선발될 정도로 좋은 구위를 뽐내던 박치국이 작년 시즌 주춤했을 때 두산 팬들이 깜짝 놀란 것도 베어스의 '잠수함 투수 흑역사'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동국대 출신의 최원준은 지난 2017년 1차 지명을 받아 두산에 입단했다(그때는 개명 전 이름인 최동현으로 불렸다). 최원준은 두산에 지명될 때부터 팔꿈치가 좋지 않아 인대접합수술을 받은 상태였지만 두산은 장기적인 시각으로 대학야구 최고의 잠수함 최원준을 1차 지명으로 선택했다(물론 고우석, 이정후가 앞 순번에서 지명되면서 딱히 1차 지명으로 뽑을 대어급 선수가 부족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창 팔꿈치 재활을 진행하던 최원준은 2016년 10월 갑상선암이 발견돼 수술을 받았다. 아직 프로에서 단 하나의 공도 던져 보지 못한 투수가 팔꿈치 인대 수술에 이어 암투병까지. 팬들은 젊은 나이에 부상에 병까지 앓던 최원준이 복귀한다 해도 제대로 된 활약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다.  

존재감 알린 작년 시즌, 올해 한 단계 더 도약할까

최원준은 2018년 7월25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를 통해 프로 데뷔전을 치르며 그 해 6경기에 등판했다. 하지만 무실점을 기록한 경기는 아웃카운트 2개를 잡았던 7월27일 한화 이글스전 한 번 뿐이었고 나머지 5경기에서는 모두 실점을 했다. 6경기에서 승패 기록 없이 평균자책점은 10.61. 마침 입단 동기 박치국이 두산 불펜의 희망으로 떠오르면서 최원준에 대한 두산팬들의 기대도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최원준은 묵묵하게 다음 시즌을 준비하며 기회를 기다렸고 롱릴리프로 활약한 작년 시즌 드디어 두산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데 성공했다. 선발 4경기를 포함해 34경기에 등판한 최원준은 1승2패1세이브4홀드 평균자책점2.65라는 알토란 같은 성적을 올렸다. 시즌 피안타율은 .256였지만 득점권에 주자가 나가면 최원준의 피안타율은 .229로 뚝 떨어졌다. 그만큼 위기 상황에서 집중력이 돋보였다는 뜻이다.

최원준은 작년 키움 히어로즈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4차전 4번째 투수로 등판해 1.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역전 발판을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작년 시즌 최저연봉(2700만원)에 가까운 2900만원의 연봉을 받았던 최원준은 올해 103.4%가 인상된 5900만원에 연봉계약을 체결했다. 높아진 연봉만큼 팬들은 올 시즌 두산 마운드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해내길 원하고 있다.

두산은 외국인 원투펀치 린드블럼과 세스 후랭코프(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동시에 이탈했지만 플렉센과 알칸타라를 영입해 빈자리를 메웠고 이영하,유희관,이용찬으로 이어지는 토종 선발 3인방도 견고하다. 불펜에도 마무리 이형범을 중심으로 기존의 박치국,함덕주,윤명준,권혁 등이 건재하고 부상으로 한 시즌을 걸렀던 김강률과 신예 곽빈도 복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최원준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선발이 일찍 무너지면 등판하는 롱릴리프, 혹은 선발 투수에게 갑작스런 변수가 찾아 왔을 때 등판하는 대체선발로 시즌을 시작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27일 청백전에서 노히트 투구를 한 것처럼 최원준은 뜻하지 않게 찾아올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들 준비가 돼 있다. 올 시즌을 앞두고 포크볼을 장착하며 구종이 더욱 다양해진 최원준은 선발과 불펜에서 모두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두산의 '준비된 히든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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