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인 모리(야마자키 츠토무)는 자신의 집 정원을 꼼꼼하게 돌아보는 게 하루의 일상이다.

화가인 모리(야마자키 츠토무)는 자신의 집 정원을 꼼꼼하게 돌아보는 게 하루의 일상이다. ⓒ 영화사 진진

 
두 지팡이를 힘겹게 짚고 걷던 구마가이 모리카즈(야마자키 츠토무)는 길가에 난 싹이 튼 식물을 보고 걸음을 멈춘다. 유심히 쳐다보던 그가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한 마디 건넨다. "여태 자라고 있었는가." 그가 걷는 길 주변의 울창한 나무는 햇빛을 막을 정도로 빽빽하다. 이름도 모를 곤충과 벌레들이 나뭇잎과 땅바닥을 기어 다닌다. 모리카즈는 자연과 마주하기 위해 때론 땅바닥에 누워서 관찰하기까지 한다. 그러던 그는 전에 못 보던 돌멩이 하나를 줍는다. "어디에서 날아오셨나?" 사람들은 그를 모리라고 불렀다.
 
한편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26일 개봉된 오키타 슈이치 감독의 영화 <모리의 정원>은 초록빛이 풍성한 작품이다. 나무와 식물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 카메라는 구름이 흐르 듯 천천히 담아낸다. 이야기의 배경은 모리의 집과 딸린 정원. 정원보다는 초록 우주라는 말이 적당할 것 같다.

정원은 저택처럼 크진 않지만 정원에 집이 딸려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우거져 있다. 94세인 모리카즈는 이 정원을 30년 동안 매일 탐험했다. 단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로. 세 등분한 모리의 일생의 한 부분은 자연 속에 파묻혀 있었던 셈이다. 그의 반복되는 일상은 한편으로는 고지식하게 보이지만 진정으로 자연과 교감하는 대가(大家)를 떠올리게 충분하다. 정원을 거닐다 잠깐 앉아서 쉬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느림의 미학이 펼쳐진다. 영화는 그런 모리의 일상 중 하루를 담았다.
 
 <모리의 정원>의 한 장면.

<모리의 정원>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남극의 쉐프>(2009)처럼 잔잔한 코미디를 만들어온 오키타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자연과 한 몸이 되는 모리카즈를 수채화처럼 맑고 투명하게 그렸다. 일본의 화가 모리카즈(1880~1977)라는 실존 인물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 기획했다. 모리카즈는 실제로 말년에 30년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과 정원의 삶에 만족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모리는 국가에서 준다는 문화 훈장을 "그런 거 받았다간 사람들이 잔뜩 오잖아"라는 말로 단칼에 거절한다. 모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알려주는 대목이다.
 
잔뜩 쌓여 있는 일 앞에서 마음이 쫓긴다거나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불안할 때, 마음을 잔잔함으로 적시기 좋은 영화다. 싱그러움에 마음은 안식을 얻고 모리의 너그러운 철학에 숨통이 틜 것이다. 어쩌면 인생이란 소박함에서 거대함을 얻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나무와 꽃, 곤충과 벌레만 유심히 관찰해도 삶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도 항상 주변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던 모리를 보면 따뜻함과 정겨움도 얻는다. 2018년 세상을 떠나 이젠 실제로 만날 수 없는 키키 키린을 보는 것은 영화의 또 다른 즐거움이자 감사함이다. 99분. 전체 관람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진수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모리의 정원 야마자키 츠토무 키키 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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