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 취재하며 문제의식을 토대로 한 심층, 탐사 저널리즘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기자 직무에 대한 확신이 생겼으며, 저널리즘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텔레그램을 통해 아동음란물을 유포하고 제작하는 범죄자들을 체포하는 과정도 취재해 후속 기사로 보도하고 싶다."

지난해 9월 열린 2019 제1차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 시상식. <"미성년자 음란물 파나요?" '텔레그램' 불법 활개>란 취재물로 우수상을 수상한 '추적단 불꽃'의 수상 소감은 이랬다. 당시 공모를 주최한 뉴스통신진흥회 심사위원들은 선정 이유로 "보안 메신저서비스인 텔레그램에서 이뤄지고 있는 '미성년자 음란물' 유통 실태를 탐사 기사 형태로 취재해 구체적 사례를 중심으로 작성되었다"고 밝혔다.

'추적단 불꽃'이 n번방의 존재를 처음 인지하고 취재에 나선 것은 작년 7월. 이들은 이후 채증자료를 넘기는 등 사건을 신고한 경찰의 수사에 공조했고, 작년 11월 이 사건을 최초 단독보도한 <한겨레>와 'n번방 추적기'를 연재한 <국민일보>의 취재에 협조하며 후속 보도를 이어갔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에서 보도한 n번방의 실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에서 보도한 n번방의 실태 ⓒ JTBC 캡처


이후 경찰 수사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11월 이후 일부 언론이 '텔레그램 비밀 채팅방'에 관해 보도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엔 SBS <궁금한 이야기 Y>가 "박사 관련 방송이 나가면 SBS에 한 여성이 가서 뛰어내리든 분신을 하든 할 것"이란 인터뷰를 방송했다. MBC <실화탐사대>와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가 'n번방' 사건을 다룬 것은 지난 2월이었다.

그리하여 최초 보도로부터 9개월이 지난 2020년 3월, 경찰이 이른바 '박사' 조아무개씨를 구속하면서 비로소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전 국민이 공분하는 사건으로 떠올랐다. 결국 "범죄자들을 체포하는 과정도 취재해 후속 기사로 보도하고 싶다"던 '추적단 불꽃'의 최초보도가 조씨와 공범들의 구속은 물론 숱한 가담자들의 수사란 결실로 이어지게 된 셈이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n번방 회원 전원 조사" 및 "가해자 엄벌" 등을 지시한 23일, 이들 '추적단 불꽃'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텔레그램 n번방 최초보도자가 사실을 바로잡습니다> 영상을 게재했다. "지금 모든 국민이 함께, 대한민국의 강간 문화를 추적해야 합니다"란 호소와 함께 사실관계를 정정하고 나선 것이다.

'추적단 불꽃'의 호소

"저희는 그 (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대한민국의 강간문화) 추적에 앞장서려고 합니다. 우선 'n번방' 사건과 관련해 너무나도 많은 가짜 뉴스가 퍼지고 있어 이를 바로 잡고자 유튜브를 시작합니다.

현재 진실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파편적인 정보가 많아 국민들과 수사기관이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건을 자극적이게만 다룬 뉴스는 2차 피해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고 보도해주시기를 바라며,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을 맹신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피해자들의 2차 피해와 가짜뉴스의 범람을 우려하던 '추적단 불꽃'이 이 4분여의 영상에서 호소한 내용은 사건을 직접 밀착해 왔던 이들만이 간과하지 않을 수 있는 '디테일'이자 세심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추적단 불꽃'이 팩트를 바로 잡은 사건 관련 기사 내용 중 첫 번째는 100만 명 이상이 동의한 청와대 국민청원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 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청원 내용 일부에는 '성기에 애벌레를 집어넣는 걸 150만 원이나 주고 관전하는 대한민국 남자들의 삐뚤어진 성 관념에 경종을 울려주십시오'라는 문장이 보입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사실입니다. <국민일보> 기사에 나온 이 부분은 저의 경험담입니다. 청원에도 적혀있듯, 성기에 애벌레를 집어넣은 영상은 텔레그램 대화방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제가 문제의 영상을 목격한 방은 150만 원을 주고 들어가는 방이 아니었습니다. 'n번방'이나 '박사방' 또한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클릭 몇 번이면 들어갈 수 있는 입장이 쉬운 방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성기에 애벌레를 집어넣는 영상은 존재하나, 150만 원을 줘야 그 영상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 내용이 경찰 수사에 혼란을 줄 것 같다고 생각해 바로잡습니다."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 청원. 24일 오후 1시 53분 현재 181만9928명이 동의했다.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 청원. 24일 오후 1시 53분 현재 181만9928명이 동의했다. ⓒ 청와대국민청원 갈무리


즉, 청원에 언급된 영상은 150만을 지불하고 입장하는 특별한 대화방이 아닌 평범한 방이었다는 것. 풀이하자면, 차마 글로 옮기기도 쉽지 않은 이 심각한 수준의 영상을 접하고 공유한 이들이 비단 n번방이나 박사방의 가담자들만이 아니라는 것.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의 조사 결과, 26만에 이른다는 단순 가담자들 누구라도 이 정도 수위의 영상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

이어 <국민일보> 연재 기사 속 "신검 받는 중"이라던 가해자가 '박사'가 아닌 "지난해 활발하게 활동하던 관리자급의 다른 가해자"라고 정정한 '추적단 불꽃'은 기사 댓글을 통해 자신이 '최초 신고자'라고 글을 쓴 이의 주장에 대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의 글과 그가 전에 다른 언론사에 보낸 메시지를 종합해 분석해본 결과 그는 이전에 가해자였지만 2019년 3월 반성하며 경찰에 신고했다는 사람이었습니다. 가해자가 최초신고자의 타이틀을 갖고 싶었던 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한편으론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최초 신고자, 최초 보도자 그게 중요할까요?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20만이 넘는 가해자를 규탄하고, 제대로 된 처벌과 피해자 보호, 우리가 함께 이뤄가야 할 문제입니다."


가해자 중 한 명이 도리어 최초 신고자를 자처하는 이어 없는 상황에 대해 "우리가 함께 이뤄가야 할 문제"를 명확히 짚고 나선 것이다. 더욱이 '추적단 불꽃'이 '최초 보도'를 언급한 것은 꽤 공교로웠다. 이날 SBS <8뉴스>가 '박사' 조씨의 얼굴을 '최초'로 공개했기 때문이다.
 
 SBS <8뉴스>는 지난 23일 'n번방'사건의 가해자 조씨의 신상을 단독으로 공개했다.

SBS <8뉴스>는 지난 23일 'n번방'사건의 가해자 조씨의 신상을 단독으로 공개했다. ⓒ sbs


SBS의 단독보도, 그리고 등장한 '국민의 알권리'

"SBS는 이번 사건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성범죄인 동시에 피해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중대한 범죄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추가 피해를 막고 또 아직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찾아서 수사에 도움을 주자는 차원에서,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저희가 단독 취재한 내용과 함께 구속된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이날 조씨의 이름과 나이, 얼굴과 신상을 공개한 SBS <8뉴스>의 앵커 멘트 중 일부다. 조씨가 과거 다녔던 학교를 찾아 가고 대학 동창등을 만난 SBS는 리포트 말미 "경찰은 내일(24일)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고 조씨의 신상을 공개할 지 결정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박사가 제가 그래도 알고 지냈던 사람이었다는 게 일차적으로 먼저 소름이 돋았고…"란 조씨의 대학 동료 인터뷰와 함께. 

이 리포트의 말미는 꽤나 의미심장했다. 조씨 지인의 입을 통해 이 사건의 끔찍함과 잔혹성을 재확인하려 한 SBS는 최초 신상공개의 정당성까지 확보하려 한 셈이다. 

그리고, 역시나 "국민의 알권리"가 등장했다. 하지만 이미 조씨는 구속된 상태다. 과연 경찰의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 개최 반나절 전 보도한 SBS의 이 단독이 "추가 피해를 막고 또 아직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찾아서 수사에 도움"을 얼마나 줄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이 SBS의 단독보도 이후, 조씨의 이름 등 신상을 공개하는 기사가 잇따랐다. 24일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텔레그램 n번방'을 적극적으로 보도해온 <국민일보>도 이날 1면에 단독보도를 내놨고, <조선일보> <한국일보> <동아일보> <세계일보> <중앙일보> 등이 조씨의 이름과 사진 등을 공개했다. 아예 SBS의 보도 화면을 갈무리해 보도한 일간지도 있었다.

SBS가 빗장을 열자, 보수언론(과 종편)을 중심으로 마음껏 신상을 공개하는 분위기다. 결국 서울지방경찰청은 24일 오후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어 조씨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경찰 측의 결정을 떠나 SBS가 조씨의 얼굴을 단독보도한 것을 두고, 의견이 나뉘었다. 전 국민적 공분이 일어난 사건이자 여성‧아동 피해자들이 산적한 만큼, 언론이 우선 기존의 법과 제도를 충실히 따랐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반면, SBS의 조씨 신상공개가 시원했다는 반응 또한 없지 않다. 

범죄자 신상공개에 신중한 입장을 보여 왔던 이들조차 이번 사건만큼은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이었다. 일벌백계와 재발방지, 사회적 경각심 차원에서 신상공개 여부에 대한 여러 논의는 여전히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의 알권리"에 기댄 SBS의 신상 단독보도가 "추가 피해"를 막거나 또 다른 범죄를 막는 데 어떤 유익함이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최초 보도자가 그렇게 중요할까요?"라던 '추적단 불꽃'은 지난 18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자극적인 보도를 피해야 하는 어려움이 '딜레마'였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텔레그램 n번방 관련 보도 이후 2차 피해를 유발한다거나 '기자가 텔레그램 n번방을 홍보하는 거 아니냐'라는 피드백도 있었다. 열심히 취재했다면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반응"이라며 "이런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적극적인 해결방안과 보도 이후 처벌 과정 등을 풍부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버닝썬 사건'을 연속 보도한 MBC와 같이, 전 방송과 언론이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비중 있게 보도하고, 이후 해결방안과 사회적 대책 마련에 주목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경찰의 공개결정 직전 이뤄진 SBS의 신상공개 보도처럼, 선정적이거나 속보 경쟁의 과열 속에 본질이 외면되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그런 점에서, "최초 보도자가 그렇게 중요할까요?"라던, "적극적인 해결방안과 보도 이후 처벌 과정 등을 풍부하게 다뤄야 한다"던 '추적단 불꽃'의 질문과 당부는 조씨 구속 이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적지 않은 기성언론을 향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텔레그램N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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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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