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기자말]
"형님은 그렇게 한참을 목이 터져라 울었다. 그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알 수가 없었는데 너무 다행이다 싶었다."

지난 21일 막을 내린 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15회 새로이(박서준)는 죽음의 문턱에서 깨어나자마자 무척이나 서럽게 소리내어 운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승권(류경수)은 이렇게 말한다.

나 역시 그랬다. 흔들리지 않는 소신을 지켜내며 꿋꿋이 견뎌온 새로이는 분명 멋있고 듬직한 캐릭터였다. 하지만 그를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안쓰럽고 조마조마했다. 그런 그가 마침내 서럽게 울었을 때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느껴졌다. 가만히 그동안 새로이가 살아온 과정을 떠올려보니 조금 알 것도 같았다. 그가 왜 그토록 서럽게 울었는지, 그리고 그의 성공이 아닌 눈물이 왜 내게 안도감을 선사했는지를 말이다. 새로이의 눈물에 담긴 복잡한 감정과 의미를 탐구해본다.
 
 삶의 원동력이 되어준 '복수심'
 
 면회온 장회장을 만난 후 새로이는 복수를 다짐하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면회온 장회장을 만난 후 새로이는 복수를 다짐하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 JTBC

  
학창시절의 새로이는 조용하면서도 정의감 높은 학생이었다. 학교에서 주목받는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정당하지 않은 조처들에 대해 반발하는 그런 아이. 친구를 사귀지 않지만, 그를 멀리서 좋아해주는 친구들이 있는 매력있는 아이였다. 아마도 장근원(안보현)과의 만남이 아니었다면 그는 그답게 조용하면서도 책임감있게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호진(이다윗)을 괴롭히는 근원을 맞닥뜨린 순간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뀐다. 평소대로 양심과 소신에 따라 행동했을 뿐인데 그는 학교를 잃고, 아버지를 잃고, 전과자가 되고 만다. 모든 것을 포기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새로이. 그런 그에게 살아야하는 이유를 가져다 준 자는 아이러니하게도 근원의 아버지 장대희 회장(유재명)이었다.

교도소에 있는 그를 면회 온 장 회장은 "소신, 패기. 없는 것들이 자존심을 지키자고 쓰는 단어. 이득이 없다면 고집이고 객기일 뿐이야"(2회)라며 그를 나무란다. 체념하듯 살아가던 그는 이 한 마디에 다시 분노한다. 그리고 분노는 그에게 복수를 결심하게 하고, 복수는 이제 그가 살아가야 할 이유이자 목적이 되어준다.

심리학에서 복수는 분노라는 감정에 뒤따르는 일종의 앙갚음 행위다. 우리는 흔히 분노를 느낄 때 그 즉시 화를 내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앙갚음을 하거나(반응적 공격),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랫동안 생각해서 공격하는 방식(능동적 공격)을 택한다. 복수는 후자 즉 '능동적 공격'의 대표적인 형태다. 즉시 해결하지 못할만큼 엄청난 분노를 느꼈을 때, 사람들은 그 감정을 가슴에 묻는다. 그리고 이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 복수를 결심하고 이를 살아가는 원동력으로 삼는다.

새로이 역시 그랬다. 그에게 분노는 복수에 대한 의지를 불러일으켰고, 이 의지는 그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그는 복수를 위해 원양어선을 타고, 막노동을 해 자금을 모으고 작은 단밤포차를 만든다.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하나 계획한 바를 이뤄간다.
 
현재를 보지 못하게 하는 복수심
 
 새로이의 단밤포차는 승승장구한다. 원하는 바를 하나씩 이뤄가지만 새로이의 밤은 여전히 씁쓸하기만 하다.

새로이의 단밤포차는 승승장구한다. 원하는 바를 하나씩 이뤄가지만 새로이의 밤은 여전히 씁쓸하기만 하다. ⓒ JTBC

 
<복수의 심리학>을 쓴 마이클 맥컬러프도 적었듯 복수심은 인간의 진화에 있어서도 매우 적응적인 기능을 했다. 무리생활 중 피해를 입은 사람이 가해자를 공격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집단에 또 다른 피해를 방지하며, 규율과 도덕을 세워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래전 인류가 복수심을 활용해 집단을 유지하고 생존할 수 있었듯, 새로이에게 복수심은 생존할 수 있었던 주요 자원이었다.

문제는 복수에는 현재시제가 없다는 점이다. 복수심은 과거의 상처에 기반해 미래의 보복을 위해 나아가는 마음이다.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받은 상처를 잊어서는 안된다. 대부분의 심리적 상처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아물고 희미해져간다. 하지만, 복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과거의 상처가 아물어 간다는 것은 삶의 원동력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들은 아픈 과거를 수시로 기억해내고, 그 때의 분노를 재경험하며 이를 통해 복수의 의지를 다지는 일을 끊임없이 해야한다. 현재에 벌어지는 일들은 이들에겐 별 의미가 없다. 오직 과거의 상처와 복수해 승리할 미래만이 중요하다.

특히 새로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복수를 계획하고 이를 실행해 옮기려면 그 긴 시간동안 과거의 아픔을 되뇌이고 재경험해야만 한다. 그리고 쉬지 않고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며 스스로를 담금질해야 한다. 때문에 복수심은 삶의 원동력이 될 수는 있지만 현재를 사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새로이의 밤은 늘 씁쓸하다. 단밤이 인기점포가 되고, 투자를 받아 프랜차이즈가 되어도 그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다. 성취로 인한 기쁨은 그냥 그 순간일 뿐이다. 아직 원하는 복수를 하지 못했다고 믿는 새로이는 잠시 기쁨을 만끽한 후 또다시 과거의 상처를 되새기고 미래를 향해 달려갈 뿐이다. 현재를 볼 수 없기에 그는 자신을 위해 그토록 애쓰는 이서(김다미)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심지어 15회 수아(권나라)가 말하듯 "너만 빼고 다 알고 있었던" 이서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12회 장가에 당하고 힘들어하는 새로이에게 수아는 "이제 그만 멈추고 행복해지면 안되냐"고 묻는다. 하지만 새로이는 "그 전에 난 행복해질 수 없어" 라고 소리친다. 이 후 수아는 반문한다. "복수하고 나면 그 다음엔?"이라고. 새로이는 이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아마도 새로이가 복수심에 사로잡힌 채 복수를 했다면, 그는 장가를 무너뜨린 후에도 행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의 행복을 느낄 줄 모르는 그에게 복수의 성공은 행복감이 아니라 공허감만을 가져왔을 테니 말이다.

눈물의 의미 그리고 지금-여기에서의 행복
 
 아버지를 떠나보낸 새로이는 마침내 복수심에서 빠져나와 지금-여기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새로이는 마침내 복수심에서 빠져나와 지금-여기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 JTBC

 
그러던 그는 마침내 이서의 마음을 알아채고, 자신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를 깨달아가던 찰나, 근원의 계략에 걸려든 새로이는 생사의 기로에 놓인다. 병원에서 깊은 잠에 빠져든 새로이는 꿈 속에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버지를 만난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장면들에 아버지와 함께 가보며 살아온 길을 돌아본다. 마침내 그는 복수만을 생각한 나머지 현재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편안한 곳으로 함께 가자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산다는 것 자체가 버거웠어요. (…) 아버지 편안히 가세요. (…)아빠는 이제 없지만 아빠를 그리워하는 마음까지 다 안고 살아갈 겁니다."

이는 새로이가 아버지를 떠나보냄으로써 과거의 상처에서 드디어 해방되었음을 보여주는 매우 의미심장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깨어난 새로이는 한동안 통곡한다. 승권이 궁금해했던 이 눈물은 아버지를 떠나 보낸 애틋함, 복수심을 놓아버린 편안함, 그 동안 힘들게 살아온 자신에 대한 안쓰러움, 동시에 알아채주지 못한 지금-여기에서의 행복한 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뒤범벅된 복잡한 감정이 표현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서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뒤늦게 깨달은 것에 대한 후회도 함께 섞여 있었을 테다.

새로이는 이제 지금 여기서 내게 소중한 것을 지키며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때문에 장회장 앞에서 기꺼이 무릎을 꿇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항복'의 의미라기 보다는 과거에서 풀려나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다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드라마 속 새로이의 복수는 분명 건설적이었다. 자기 자신을 발전시켜 '보란 듯 잘사는 방법'으로 복수를 했고, 그가 택한 복수의 방법은 무척이나 정의로웠다. 주변 사람들을 소중히 아꼈고, 정당한 방법으로 하나씩 하나씩 일궈냈다. 그럼에도 새로이는 행복해질 수 없었다. 복수심을 내려놓고 지금-여기서의 삶에 충실할 수 있게 된 후에야 그는 편안하게 웃을 수 있었다.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복수심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반드시 '용서'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16회 새로이는 자신을 찾아와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장 회장을 매몰차게 대했다. 아마 용서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새로이가 그랬듯, 현재의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은 복수심에 사로잡혀 살지 않겠다는 결심만으로도 충분하다.

'평소와 같이 일을 하고, 평소와 같이 데이트를 한다. 보통의 하루'

드라마의 에필로그에서 새로이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십수년을 고생해 얻은 이 깨달음을 마음에 새겨보자. 새로이가 꿈꾸던,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단밤(sweet night)'은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미래에 집착하지 않을 때, 지금 여기 보통의 일상에 충실할 때 찾아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 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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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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