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코로나바이러스가 자국을 '침공'했다. 급기야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상황이 도래했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이런 팬데믹이 통상의 국지전보다 더 무섭다고 경고한다.

당신이 정치가라면, 한 국가의 리더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바이러스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워나가는 한편 가시적이고 확실한 적을 상정하는 것이 국가적 공황 상태를 줄이는 손쉽고 빠른 길 아니겠는가. 불안이, 공포가, 국민들의 영혼을 잠식해 버리기 전에 말이다.

"논쟁할 필요 없이 바이러스가 어디서 왔는지 봅시다. 중국에서 왔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게 정확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대국민연설 통해 코로나19 대책 밝히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오후 9시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국민연설을 통해 코로나19 대책을 밝히고 있다.

▲ 대국민연설 통해 코로나19 대책 밝히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오후 9시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국민연설을 통해 코로나19 대책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AP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았던 바로 그 트럼프가 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다. 이럴 때야말로 확실한 적이 필요하다는 듯, 중국을 콕 짚어 공격하기 시작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역시 "(중국) 우한 바이러스와 싸워서 미국을 보호하자"며 "우한 바이러스는 살인자"와 같은 선동에 동참하고 나섰다. 가상의 적과 전쟁을 벌이느니 '한 놈'만 패는 게 효과적이라는 걸 진즉에 깨달았다는 듯이.

물론 중국도 큰 틀에서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였다. 최근 "우한에 전염병을 퍼뜨린 건 미 육군일 수 있다"며 미국의 해명을 요구한 중국이었으니까. 또 트럼프의 위 같은 발언에 중국 내 미 주요 언론 특파원들을 추방하겠다고 맞불을 놓은 것 역시 중국이었다. 

이에 18일(현지시각) 세계보건기구(WHO)가 즉각 "인종차별을 야기할 수 있다"며 경고 사인을 보냈다. 빌 게이츠도 "중국산 바이러스라 칭하지 말자"며 문제적 발언을 지적하고 나섰다. 하지만 백인 우월주위와 미국 패권주의를 등에 업고 당선된 트럼프가 강제력 없는 WHO의 '잽'에, 비정치인의 '훈수'에 흔들릴까.

아시아 향한 '인종차별적 문화' 재가동

초강대국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뻔뻔함'이 문제라지만, 따지고 보면 서구에 만연한 아시아(와 제3세계)를 향한 인종차별적 문화가 어디 어제 오늘 얘기던가.

코로나19의 불안이 확산시킨 아시아인에 대한 폭력과 차별, 혐오를 보라. 결국 일부 서구인들은 이성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제어해왔던 아주 오래된 '차별 바이러스'를 코로나19와 팬데믹을 핑계 삼아 재가동한 듯 보인다.

그 유구한 역사를 '증거'하는 것이 바로 영화라는 쉽고 대중적인 영상 콘텐츠다. 이 콘텐츠들은 아시아와 제3세계를 향한 각종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공고히 하는데 일조했고, 다시 그 시선을 관객들에게 환기시키는 악순환을 반복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오랜 기간 이들은 무지 혹은 의도에서 비롯된 집단무의식을 반영해왔다.

바이러스 소재 영화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SF란 장르의 외피를 입든 아니든, 바이러스라는 의학적이고 과학적인 다소 어려운 소재에 자본을 투입할 여력이 되는 곳은 할리우드뿐이었고, (실제 바이러스의 근원이 어딘지는 둘째 치더라도) 어떤 편견이나 특정 이미지, 의도된 무지를 반영해 온 영화들이 대다수였다.

어쩌면 지금 소개하는 이 영상 텍스트들이 코로나19를 둘러싼 작금의 폭력과 차별, 혐오의 알리바이를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함이 대세가 된, 'PC'함을 소비하는 신인류가 탄생한 지금, 그런 서구적 시선의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워진 대표작들만 훓어 봐도 이 정도다.

<아웃브레이크> 속 아프리카와 한국
 
 영화 <아웃브레이크> 스틸 컷.

영화 <아웃브레이크> 스틸 컷. ⓒ 워너 브라더스


"인류가 지속적으로 지구를 지배하는데 유일한 최대 위협은 바이러스다." (The single biggest threat to man's continued dominance on the planet is the 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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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웃브레이크>는 195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조슈아 레더버그의 꽤나 묵직한 '경고'로 문을 연다. 당시로써는 희귀한 이 '바이러스' 소재 스릴러 영화를 어릴 적에 봤다는 (넷플릭스 다큐 <팬데믹: 인플루엔자와의 전쟁>에 출연하는) 미국의 어느 감염병 전문가는 당시 "와, 세상에! 저렇게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다니, 굉장해!"란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영화 속 의료노동자들의 방호복이 기억에 남아 있다면서.

맞다. 무려 25년 전 영화(1995년)다. 이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감염병 전문가로 활약 중일 만큼, 이쪽 장르에선 고전의 반열에 오를 법하다. 앞서 열거한 관습적 시선들이 넘실거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영화 속 바이러스의 진원지는 30년 전 미국이 용병으로 주둔해 있던 아프리카의 오지다. 거기 살던 원숭이 한 마리가 실험용으로 잡혀 온 뒤, 미 캘리포니아 전역에 바이러스를 퍼트린다.

이렇듯, 언제나 적은 외부로부터 이식되어야만 한다. 물론 바이러스 퇴치에 앞장서는 주인공은 역시나 백인 남성이어야 한다(조력자로 등장하는 이가 흑인이긴 하다). 이 영화의 경우엔,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파견된 미 국방부 내 육군전염병연구소 소속 육군 대령(군의관)이다.

이 주인공이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고군분투하는 와중에 몇몇 무지한 인간들의 실수와 탐욕이 더 큰 화를 불러온다. 주인공은 캘리포니아 전역을 덮친 정체불명의 괴 바이러스가 다시 미 전역에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결국 '일과 사랑', '사랑과 일'을 모두 쟁취한다.

몇몇 바이러스 확산에 기여(?)하는 백인들이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또 폭탄 투하라는 '단순무식'한 방법으로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고자 하는 군부와의 갈등이 영화 전반을 차지하지만, 그건 할리우드 영화의 평면적인 단골 갈등 요소 정도에 머문다.

그보다 눈에 들어오는 건 선진적인 의료 시스템과 군 전력을 갖춘 강대국 미국의 면모다.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아프리카와는 극명히 대비되는 제1세계의 위상이 당시로써는 블록버스터 규모였던 이 영화 전반에 드리워져 있다. (명배우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하는) 선한 의지와 의학적 능력, 군인으로서의 용기를 갖춘 백인 '히어로'가 '세상'을 구한다는 공식 또한 뚜렷하고.

그런 대비로 인해 더더욱, 30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몰했던 오래된 괴 바이러스의 존재(외부로부터의 위협)는 영화 전반에 드리운 공포로 기능한다. 그렇다. 1990년대는 할리우드 영화가 제3세계를 타자화하는 데 이골이 났던 시대였다. 동아시아만 해도 유일하게 일본만이 미국 기업을 사들이는 '자본주의' 대국이었고, 중국은 천안문 사태를 진압해 국제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았던 때였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였던 한반도는 당연히 핵무장을 주창하던 북한에 이목이 쏠렸던 시기였다. 이런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 <아웃브레이크>가 바이러스의 숙주인 원숭이를 싣고 온 화물선을 한국인들의 '태극호'로 묘사했다는 사실이 분명 당혹스럽지만 한편으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영화는 한국인을 딱히 악인으로 묘사하진 않는다. 그저 바이러스 자체에 무지한 존재들, 그러니까 존재 자체로 위협적인 '인종'들로 그렸을 뿐이다.

그리하여 아프리카에서 발발한 바이러스(의 숙주)를 아시아인들이 미국 본토로 들여왔다는 이 기막힌 (타자화의) 설정과 일관성에 무릎을 치게 된달까. 명백히 에볼라 바이러스 창궐의 공포를 참조한, 이러한 제3세계로부터 유입된 공포는 의학적, 통계적 사실이나 핍진성과 관계없이 훌륭하지만 나쁜 '영화적 장치'로서 활용됐다고 볼 수 있다. 어쨌거나, <아웃브레이크>는 조슈아 레더버그의 묵직한 '경고'를 막을 국가는 '미국' 뿐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 월드워 Z >와 <컨테이젼> 속 북한과 홍콩

할리우드에서도 희귀한 이 '감염병 소재' 영화 <아웃브레이크>로부터 18년 후, 할리우드는 또 다시 한국(과 북한)을 소환한다. 영화 < 월드워 Z >(2013)에서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인간을 좀비로 만든다는 상상력을 근사하게 시각화한 < 월드워 Z >는 좀비가 처음 언급된 바이러스의 의심 진원지 중 한곳으로 평택(미군기지)을 지목한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하는 영화 속 백인남성 주인공은 가족과 떨어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바이러스의 근원과 백신 개발의 가능성을 쫓기 위해 한국(제3세계와 분단국 이슈)과 이스라엘(종교와 난민 이슈)이란 '외부'를 경유한다(한국은 원래 중국으로 설정됐으나, 제작비를 투자한 중국 회사와 중국 시장을 겨냥해 변경됐다는 후문이다).

< 월드워 Z > 역시 한국을 별달리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건 아니다(한국이 더 이상 제3세계는 아니지 않은가). 평택은 주인공이 얼마간 야간 작전을 수행하고, 이후 이스라엘로 이동하기 전 백신의 단서를 얻는 중간 경유지일 뿐(그래서 한국 촬영이 불필요했을 이유)이다. 흥미로운 건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전 세계에 좀비가 출몰한 가운데, 북한과 이스라엘만이 좀비와 바이러스 공포로부터 자유롭다는 것.

"인민 전체의 이빨을 뽑았거든, 북한이니까 가능한 일이지."

영화 속 CIA 요원이 설명하는 북한이 좀비 청정지역인 이유다. 골칫덩어리 독재자가 지배하는 핵보유국 북한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시각이 드러나는 '강렬한 말 한 마디'가 아닐 수 없다.

반면 또 다른 '청정지역' 이스라엘은 장벽을 쌓아서 가능했는데, 마침 주인공은 거대 장벽의 반대편을 기어오르며 이스라엘인들을 위협하는 좀비 떼들을 목도한다. 이 장면에서 누구는 이스라엘 영토를 침범하려는 '외부인'들(팔레스타인인)을 연상했을지 모를 일이다.
 
 영화 <컨테이젼> 스틸 컷.

영화 <컨테이젼> 스틸 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영화 <컨테이젼> 스틸 컷.

영화 <컨테이젼> 스틸 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이렇듯, 대중영화의 정치학은 꽤나 둔중하다. '코로나19 시대를 예견한 영화'로 숱하게 호출 중인(관련 기사 : '신종 코로나' 예언서? 9년 전 문제작의 네 가지 경고 http://omn.kr/1mg53) <컨테이젼>(2011년)은 아예 제목처럼 '전염'을 주인공 삼아 '감염병의 사회학'을 설파하는 수작이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해 죽어 나가고, 고통받고, 슬퍼하고, 무서워하고, 거짓말하고, 협박하고, 희생하고, 투쟁하고, 이겨내고, 견뎌내는 (주로 백인) 인간들의 양상을 냉정하고 건조하게 묘사한다.

홍콩 출장에서 돌아온 미국인 여성이 바로 사망한다. 뒤이어 어린 아들마저 죽는다. 이어 삽시간에 의문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이후 팬데믹이 도래하면서, 면역 판정을 받은 첫 사망자의 남편과 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센터장, 세계보건기구(WHO) 소속 관계자, 음모론을 설파하는 프리랜서 기자, CDC 역학조사관, CDC 바이러스 연구원과 이들 주변 인물들의 행로를 통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팬데믹의 일면들을 다층적으로 조망한다.

'코로나19' 시대를 정확히 예언한 작품으로 각광받을 만하다. 그렇게 "2002년 11월 중화인민공화국 광둥성 포산시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이후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 등을 거쳐 세계적으로 확산된 바이러스성 전염병' 사스(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의 자장 아래 만들어진 <컨테이젼>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미국과 홍콩(이 상징하는 아시아)을 대비시킨다.

음모론자인 프리랜서 기자나 불륜을 저지른 첫 희생자, 그리고 공포에 질린 군중들을 제외하고, (스타 배우들이 연기하는) CDC의 구성원들을 비롯한 미국인과 서구인들은 유능하고, 선량하며, 희생적이다. "과학을 믿고, 불신과 가짜뉴스를 멀리하라!"는 주제에 걸맞게, CDC와 미국, 그리고 WHO가 이 팬데믹을 해결하는 주체다.

실제 이들이 감염병 분야의 연구개발을 선도한다 치더라도, 결과적으로 <컨테이젼>은 얼핏 서구와 비서구의 이분법적 시선에 일정 정도 갇혀있다. 서구인들에 비해 동양인들은 무력하(게 죽어나가)거나 이기적이거나 그냥 이국적이다.

특히 홍콩인들이 바이러스를 피하기 위해 중국의 어느 오지를 연상케 하는 시골마을에 아이들을 피신시키고, 백신을 강탈하려는 홍콩인들에게 납치당한 여성 WHO 조사관이 동양 아이들을 돌보며 시혜를 베푸는 듯한 설정은 꽤나 난감하다.

홍콩인들에게 인질로 잡힌 이 여성을 구하기 위해 거대 제약회사가 넘긴 것이 가짜 백신이란 설정으로 면죄부를 줄 수 없는 오리엔탈리즘적인 묘사의 부자연스러운 개입 때문이랄까. 영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냉정하고 '쿨'한 작품을 주로 만든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조차도 뼛속까지 '미쿡' 감독, 서구인으로서의 시선을 거두진 못한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들이 묻는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넷플릭스 다큐 <팬데믹: 인플루엔자와의 전쟁>은 근래 들어 감염병과 팬데믹의 공포를 경고한 총체적인 문제제기를 잘 보여준다. 전염병의 심각성은 물론이요, 이를 극복하고 문제를 개선해나가기 위한 의료 시스템과 정치, 사회, 경제의 문제를 6부작을 통해 가감 없이 파헤친다.

다큐라서 더 사실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미국과 각국 사례를 들어 공중의료 체계를 비롯해 비싼 의료비가 소외지역과 소외계층에 미치는 영향 등, 모르고 어려워서 간과했던 문제들을 광범위하게 짚어낸다. 그 와중에, 아프리카 콩고와 중국, 베트남, 인도와 같은 비서구 지역들이 소환된다.

화면 그대로는 충격적일 수 있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 속 이데올로기적이거나 상징적이라 더 부각되는 부정적인 묘사라기보다 현실에 대한 리포트에 가까워 보인다. 서구(내 에서도 소외 지역을 포함해)와 비서구의 정치·사회·경제·문화적 차이를 부정할 순 없다.

다만, 다큐가 던지는 문제의식은 결국 이러한 차이 속에서 현존하는 위협인 감염병의 전파를 어떻게 예방하고 극복할 수 있는가다. 의료 시스템을 둘러싼 문제들을 짚은 것도 같은 맥락이고.

그리하여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일로 속에 서구인들의 아시아인들에 대한 폭력과 혐오의 시선이 심심치 않게 발생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 선봉에 선 셈이고.

그렇다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한국인과 아시아인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우리도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이미 이주노동자들이 마스크나 방역 대책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또 이주민들 10명 중 7명은 이미 인종차별을 느낀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여전히 '우한 폐렴', '우한 코로나'란 명칭을 고수하며 '중국인 혐오'로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그러니까,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묻는 것은 이런 거다. 코로나19에 불안해하는, 팬데믹을 목도하게 된 당신은 우리 안의, 내 안의 인종차별을 강화할 것인가.

그리하여, 할리우드 영화들이 묻는다. 당신은 트럼프가 될 것인가, 아니면 더 성숙한 이성을 작동시키며 코로나19와 팬데믹을 극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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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어제는 영화기자, 오늘은 시나리오 작가, 프리랜서 기자. https://brunch.co.kr/@hasungtae 기고 청탁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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