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에 손세정제와 열감지기가 준비돼 있습니다. 마스크는 필히 착용 부탁드립니다.
-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마스크 착용하시고 오디션장 입장 부탁드립니다.


최근 영화와 드라마 촬영 현장, 오디션장에 등장하기 시작한 안내 문구다. 코로나19 사태가 두 달 넘게 이어지며 현재 제작 중인 작품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각 분야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장려하고 있지만 직군 특성상 근거리 작업 혹은 집단 협업을 피할 수 없기에 영화나 드라마 관련 종사자들은 노심초사하며 예방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WHO(세계보건기구)가 '세계적 대유행'(아래 팬데믹,  pandemic)을 선포한 전후로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앞두거나 진행 중인 작품들이 대거 그 영향을 받고 있다.

배우 황정민, 현빈 주연의 영화 <교섭>과 하정우, 주지훈 주연의 <피랍> 등은 지난 2월 선발대가 각각 요르단과 모로코에 들어가 있었지만 한국발 입국 제한 이슈로 본격적인 해외 촬영 자체가 지연되고 있다. 

해외 촬영뿐만 아니라 국내 촬영도 지장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인생배우들 집합! 13일 오전 서울 왕십리로의 한 상영관에서 열린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제작보고회에서 배우 정우성, 윤여정, 전도연, 신현빈, 정가람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인생 마지막 기회인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최악의 한탕을 계획하는 평범한 인간들을 그린 범죄극이다. 2월 12일 개봉.

지난 1월 13일 오전 서울 왕십리로의 한 상영관에서 열린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제작보고회 ⓒ 이정민


메가박스 플러스엠(<교섭>)과 쇼박스(<피랍>) 측은 <오마이뉴스>에 국내 촬영분부터 먼저 진행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계획대로면 <교섭>과 <피랍>은 3월 중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시작해야 했는데 세계적으로 한국발 입국 제한이 한창 늘던 중이라 부득이하게 순서를 바꾼 셈이다.

메가박스 플러스엠 관계자는 "다행히 촬영 준비엔 차질이 없다"며 "요르단 촬영은 상황이 나아진 이후에 진행할 것 같다"고 말했다.

베트남 촬영 비중이 큰 <범죄도시2> 또한 3월 중 현지에서 촬영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조정하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한창 해외 촬영을 진행 중인 작품 또한 촬영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배우 송중기, 이희준이 전면에 나선 <보고타>는 지난 1월부터 한창 콜롬비아 현지에서 촬영 중이었다. 20일 오전 <보고타> 관계자는 "콜롬비아에도 확진자가 나오고 있고, 상황을 주시하며 체크하고 있었는데 촬영을 중단하게 됐다"며 "배우와 스태프들이 순차적으로 귀국할 것이다. 미국을 경유해야 하는데 그곳 상황도 수시로 변하고 있어 안전 귀국이 우선이다"라고 전했다.

황정민, 이정재, 박정민 주연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주연의 <모가디슈> 또한 해외 촬영 비중이 꽤 큰데 다행히 코로나19가 대유행하기 전에 해외 촬영을 마친 경우였다. 

비단 해외 촬영이 없거나 분량이 적더라도 3월을 기점으로 준비 중인 여러 작품이 코로나19 상황에 민감하게 대응 중이다. 

넷플릭스 드라마인 <무브 투 헤븐>(이제훈, 탕준상 주연), 강하늘, 천우희 주연의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최동훈 감독 신작이면서 류준열, 김태리, 김우빈 등 호화 캐스팅이 돋보이는 영화 <외계인> 등이 모두 3월 중 크랭크인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다소 뒤로 미루고 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해외 촬영분이 없긴 하지만 코로나19 영향이 전혀 없진 않다"라며 "이래저래 여러 위험성을 고려해 조심하며 촬영을 준비 중이다. (크랭크인) 연기까진 아니지만 세부 일정이 며칠씩 영향받을 수 있다"라고 알렸다. 

큰 틀에서 촬영 자체엔 아직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현장 스태프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바뀐 상황을 몸소 체감 중이었다.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분이 관공서나 학교, 병원 섭외였다. 국가적 재난 상황이라 해당 장소가 폐쇄 혹은 출입 제한이 걸린 경우가 많아 장소 헌팅이 만만치 않아졌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거의 100% 이런 곳은 섭외가 안 되고 있다"며 "협찬이 들어온 카페라도 인근 주민들 항의가 많아져서 제대로 촬영을 못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세트를 지어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비행기가 뜨지 않기에 공항 등에서도 당장 촬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어렵게 촬영 허가가 떨어졌더라도 갑작스럽게 취소되는 일도 있다. 작품 포스터를 찍기로 돼 있었는데 전날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아 급히 비슷한 느낌의 다른 장소를 구해야만 했다"라고 말했다.

한 세트 담당자는 이례적으로 늘어난 업무량을 고백하기도 했다. "굳이 공공 기관, 관공서가 아니더라도 스태프와 배우 등 많은 인원이 한 장소에서 촬영하는 것 자체를 반기지 않는 분위기"라며 "로케이션 촬영에서 세트 촬영으로 바뀌는 비중이 갈수록 늘어 초과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답했다.

"코로나19 잡지 못하면 타격 막심해질 것"
 
 <침입자> 역시 개봉 연기를 결정했지만 이미 녹화한 예능 프로는 예정대로 방영돼야 했다.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한 배우 김무열, 송지효.

<침입자> 역시 개봉 연기를 결정했지만 이미 녹화한 예능 프로는 예정대로 방영돼야 했다.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한 배우 김무열, 송지효. ⓒ JTBC


고육지책이든 예방 차원이든 각계에서 코로나19 사태를 이겨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한계는 있는 법. 당장 소속 배우를 통해 사업을 하는 매니지먼트사나 거액을 투자받아 정해진 기일에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제작사들은 입을 모아 현 상황이 임시방편임을 강조했다.  

한 매니지먼트사 A대표는 <오마이뉴스>에 "현장마다 이 사태를 대하는 온도 차가 느껴진다"며 "제작사에서 마스크를 배포하고 촬영 전 발열 여부를 체크하는 현장이 있는 반면, 전체 스태프 중 10% 정도만 마스크를 쓰고 있는 현장도 꽤 많다. 매니지먼트 협회 차원에서 이들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중"이라 말했다. 이 대표는 "신인이나 조연 배우 경우엔 오디션이 중요한데 예전처럼 오디션을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영상으로 대체하는 일이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매니지먼트사 홍보팀 B실장은 "현장만 믿고 나갔다가 마스크가 준비 안 되는 일이 있어서 회사 차원에서 소속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손소독제와 마스크 등을 지급하고 있다"며 "매니지먼트 회사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함께 대응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고 생각을 밝혔다.

제작 사업까지 겸하고 있는 매니지먼트사 C대표는 "배우들 일정 관리에 어려움을 느낀다. 이미 해외로 나가야 했거나 다른 작품으로 넘어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라며 "해외 공동 프로젝트도 1년씩 밀리고 있다. 할리우드 유명 감독님이 한국에 와서 시나리오를 검토했어야 했는데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하는 한국 상업영화의 평균 순제작비가 약 50억 원(100억 이상 고예산 영화 제외)이라고 할 때 촬영을 하루만 미뤄도 스태프 인건비와 장비 대여료 포함해 약 2천만 원의 손해가 생길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일주일만 지연돼도 1억 원이 공중으로 사라진다는 얘기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손해기에 마냥 촬영을 미룰 수만은 없다. 계획을 수정해서라도 대안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며 "정말 문제는 이미 개봉했거나 개봉 직전 날짜를 연기한 작품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도연, 정우성 등 연기력이 검증된 스타급 배우들이 전면에 나섰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지난 2월 19일 개봉 후 지금까지 약 60만 관객이 들었다. 총제작비(순제작비에 홍보마케팅 비용을 더한 값)가 약 90억 원 중반으로 250만 관객이 손익분기점인데 18일 기준 누적 극장매출액은 약 42억 원으로 큰 손해를 보고 있다. 해당 작품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잠잠해질 것을 고려해 개봉을 일주일 연기했다가 큰 타격을 받게 됐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사냥의 시간' 베를린가는 시간 31일 오전 서울 광진구 아차산로의 한 상영관에서 열린 영화 <사냥의 시간> 제작보고회에서 윤성현 감독(왼쪽에서 세번째)과 배우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 박해수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한국영화 최초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에 공식 초청된<사냥의 시간>은 새로운 인생을 위해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 네 친구들과 이를 뒤쫓는 정체불명의 추격자 사이의 숨막히는 사냥의 시간을 담아낸 추격 스릴러다. 2월 개봉 예정.

지난 1월 31일 오전 서울 광진구 아차산로의 한 상영관에서 열린 영화 <사냥의 시간> 제작보고회 ⓒ 이정민

 
개봉일을 못 박았다가 연기한 작품의 경우는 프린트 및 홍보마케팅 비용(P&A)이 그에 비례해 더 투입될 가능성이 크기에 제작 진행 중인 작품들보다 손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개봉일을 알리고 영화 홍보를 위해 이미 정해진 예산을 쏟았다가 바뀐 일정에 맞게 내용을 수정해 다시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3월 중 개봉하려던 <침입자> <결백> <사냥의 시간>이 모두 이 경우에 해당했다. 세 작품은 여전히 개봉일을 확정하지 못했다.

<침입자> 관계자는 "시장 추이를 살피며 언제 개봉할 수 있을지 논의 중이다. 큰 추가 비용 없이 하거나 공격적으로 비용을 지불하는 방안 모두 고민 중"이라며 "이미 출연한 예능 프로야 방송은 됐고, 라디오 프로 등은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고 상황을 알렸다. 이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때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위축된 건 있었지만 이렇게 영화뿐 아니라 경제 전반으로 위축된 건 처음 본다"라고 토로했다.  

"(한창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2월 중순 때 속이 많이 상했다"던 <결백> 관계자는 "극장도 하루 관객이 겨우 3만 명 드는 요즘은 대안이 없을 것 같다. 홍보마케팅에서 집행을 중지할 수 있는 건 중지해 놓은 상태"라며 "우리의 실력이나 노력으로 해결될 상황이 아닌 천재지변 같은 상황이니 영화적으로 부끄러움이 없다면 마음을 비우고 기다려 보자고 감독님 및 스태프들과 얘기 중"이라 말했다. 

베를린영화제 초청 이슈를 기반으로 공격적으로 개봉을 준비했던 <사냥의 시간> 역시 개봉 연기로 피해가 있음을 밝혔다. 영화 관계자는 "그래도 우리보단 이미 개봉한 영화들이 더 피해가 클 것 같다"며 "개봉일을 아직 정하진 못했지만 여러 대안을 놓고 방법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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