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아이돌의 시대이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끼 있는 친구들이 쏟아졌나 싶을 정도로 매달, 매주 새로운 아이돌이 데뷔한다. 음악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눈에 익은 그룹을 찾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든다. 아이돌이 데뷔하는 데에 길게는 수 년, 심지어 십 년이 넘는 시간이 들기도 한다는데 그럼 저 많은 친구들이 수 년의 젊음을 바쳐 무대에 올랐다는 건지.

또,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 많은 친구들이 무대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건지. 무언가 어색한 기분이 든다. 아이돌을 열렬히 좋아해 본적도 없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뭔가 어색하다. 저렇게 맑은 얼굴을 한 아이들이 자신들의 젊음을 담보로 너무 큰 모험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프로듀스 시리즈>이었다. 가장 유명한 그룹의 멤버 수조차 가물가물한 '아알못'인 나조차 그 인기를 체감할 정도였으니 직접 참여하는 연습생들에게는 진정으로 가슴 떨리는 여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시간이 야속할 만큼 순위는 단숨에 결정되었고 연습생과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의 얼굴에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다.

가끔 이 프로를 우연히 보면 늘 이런 장면과 자막이 보였다. 후줄근한 티가 땀에 젖을 만큼 연습을 하고 있는 연습생, 부상이 있음에도 이 악물고 연습에 참여하는 연습생, 어머니와 통화를 하며 동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순위를 비관하며 눈물 흘리는 연습생. 그런 장면에는 어김없이 그들의 대표 주제곡의 피아노 버전이 흐르며 꿈, 도전, 희망 같은 자막들이 붙어 나왔다. 그리고 나는 의아했다. 저들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

연습생들의 인터뷰를 보면 숨이 막혔다. 이 일이 유일한 꿈이라고 한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자신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다고 한다. 자신은 이것 아니면 안된다고 한다. 그들의 눈에서 절박함이 보였다. 그것은 한 발 더 나아가겠다는 간절함보다 한 발 더 밀려서는 안된다는 벼랑 끝의 처절함, 그것에 가까워 보였다. 눈물이 났다. 노래와 춤이 좋아 무대에 서고 싶었던 그들에게 도대체 누가 무대에 서지 않으면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한 걸까.

원한다면 마이크를 잡고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무엇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왜 그들에게는 그런 게 보이지 않았을까. 대안 따위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간절해서? 인생의 다음을 생각하기에는 당장의 오늘이 너무 긴박해서? 도대체 무엇이 그들에게서 2순위, 내일, 미래, 내지는 자기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빼앗아 간 것인지 궁금했다. '청년'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어리고 해맑은 연습생들이 자신의 연습 기간을 소개하는 순간, 의문이 풀렸다.

아이돌도 조기교육을 받는 모양이다. 그렇게 어린 청년들이 벌써 5년 이상의 시간을 연습실에서 보냈다고 하니,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는 그림이다. 어린 나이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빠르게 발굴해 가르치고 싶은 회사의 열망과 경쟁심이 만든 결과물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시스템이 지드래곤과 같은 거물급 아이돌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성공한 시스템이 언제나 옳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 성공이라는 것조차 경제 논리 지표에 입각한 성공일 뿐이라는 것이, 슬프게도 스타들의 삶의 굴곡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웬만한 교육기관 못지않게 어린 아이들을 케어하는 곳이 소속사이다. 아이돌이 되기 전에 아이들의 삶을 헤아리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려면 설령 그들의 재능이 아이돌에 적합하다 할 지언정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춤과 노래를 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으로 존립할 수 있도록, 교육은 하지 못하더라도 망치지는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꿈이 자라날 기회는 모두 차단한 채, 아이돌이 되는 것과 관련된 것 외에는 어떠한 교류도, 어떠한 교육도, 어떠한 시도도 하지 못하게 억압하는 것이 과연 좋은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연습생들의 꿈은, 정말 그들의 꿈인가? 열정으로 가득한 눈에 가림막을 씌우고 오로지 앞으로만 달려가야 한다고 몰아치는 그 누군가는, 그래서 그 가림막이 벗겨지는 순간 그들이 허무감과 무력감에 괴로워할 것을 알고 있는 그 누군가는, 정말 나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허상에 불과할까?

노래하고 춤추는 동안 아이돌들은 정말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무대 위에서만 행복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무대를 내려와서도, 어쩌면 다른 일을 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나름의 행복을 향해 걸어갔으면 좋겠다. 다른 누구의 꿈도 아닌 자신의 꿈을 향해서.   
아이돌 프로듀스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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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듯 살며 떠오르는 것을 낚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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