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행>의 주역들.

영화 <비행>의 주역들. 왼쪽부터 배우 차지현, 홍근택, 그리고 조성빈 감독. ⓒ 써드아이비디오

 

한 학번 차이의 대학 동문들이 5년에 걸쳐 하나의 단편 영화와 하나의 장편 영화에 함께 했다. 영화가 좋아 오랜 시간 꿈을 품고 실력을 키워오던 이들이다. 포기할까 싶던 차에 조금씩 보이던 희망의 끈을 붙잡은 결과는 정식 개봉. 19일 개봉하는 영화 <비행> 이야기다.
 
단편 <햄버거맨>으로 배우 홍근택, 차지현을 발굴한 조성빈 감독은 <비행>을 통해 보다 밀도 높은 청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전작이 인생 막장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은 두 친구를 다뤘다면 <비행>에선 남한에 정착하고 싶어한 새터민 근수(홍근택)와 한국을 떠나고 싶어했던 전과자 지혁(차지현)이 마약 판매에 연루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학교 졸업 작품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급지원상을 받았고, 2년이 흘러 겨우 빛을 보게 됐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려 서울의 모처에서 세 사람을 만났다.

"더이상 영혼은 팔기 싫었다"

비디오아트와 광고 일로 생계를 해결하던 조성빈 감독은 작심하고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원하는 건 영화였는데 전자제품 등 여러 제품의 광고를 만들어 오며 영혼이 갉아 먹히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나름 20대를 치열하게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광고 일을 하며 내 영혼을 팔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하고 싶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금도 계속 영혼을 팔고 있다. (생계 때문에) 광고 일은 계속하고 있거든. 돈 때문에 영혼을 갉아먹는 캐릭터가 주인공인데 도치시킬 수 있는 게 마약이라고 생각했다." (조성빈 감독) 

감독은 물론이고, 두 배우도 영화를 찍기 위해 사비를 털었다. 돈뿐만이 아니다. 새터민 역을 위해 홍근택은 친구 부모님의 가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을 수소문하면서까지 탈북 경험자를 찾았고, 차지현은 실제로 학교 근처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감독은 형사와 마약상을 만나고 다녔다. 개봉은커녕 영화가 완성조차 될 수 있을지 불투명했지만, 대학교 문을 빠져나오기 직전 세 사람은 자기 자신을 그렇게 던졌다. 
 
 <비행> 스틸컷

<비행> 스틸컷 ⓒ 아이 엠(eye m) , kth

 
"마약수사과를 무작정 찾았는데 형사분이 얘길 잘 안 해주시더라. 이미 제가 알고 있는 수준의 정보를 주시길래 인터넷으로 직접 마약상을 접촉했다. 처음엔 마약을 구매할 것처럼 했다가 욕만 먹고 그랬다. 포기하기 직전 솔직히 영화 찍기 위함을 밝히고 접근한 한 사람이 긴 텍스트를 보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분이 어떻게 마약을 거래하는지 자세하게 적어 보내셨더라. 나름 알아보니 사실이더라. 큰 도움이 됐지." (조성빈 감독) 

"학교 근처 중국집이 있었는데 처음엔 촬영을 거부당했다. 그래서 제가 감독님에게 뚫어보겠다고 한 후 사장님에게 일 좀 시켜달라고 일주일간 졸랐다. 완강하게 거절하시다 결국 받아주시더라. 무급을 자처했는데 사장님이 기어코 돈을 주시려 했다. 하지만 받지 않았다. 나중에 이곳에서 찍겠다는 허락을 받아야 했으니까. 결국 찍을 수 있게 됐지(웃음)." (차지현)

"영화를 찍을 때만 해도 유튜브에 탈북민 콘텐츠가 없었다. 마침 학교 동기 친구의 부모님이 가게를 하셨는데 그곳 아르바이트생이 탈북민이셨다. 북한과 중국 경계에 살던 분인데 그분 도움으로 여러 얘길 듣고, 다른 분도 소개받았다. 제가 대본을 드리면 그분이 북한말로 다 바꿔주시기도 했다. 사실 마약을 파는 탈북민 역할이 두렵긴 했다. 조심스러운 것도 있었고 제가 덩치가 큰 편이라 어색할까 걱정도 됐다. 근데 전주영화제에서 실제 탈북민 같다는 평을 받았다. 눈물이 앞을 가리더라." (홍근택)


 
 영화 <비행>의 주역들.

영화 <비행>의 배우 차지현, 홍근택. ⓒ 써드아이비디오

 
치열함의 결과물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겠지만 유독<비행>은 참여한 사람들의 온도가 뜨거워 보였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지만 영화가 그린 청춘의 방황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크다. 장면마다 치열하게 토론했던 덕이었다. 조성빈 감독은 특정한 정답을 제시하기보단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쉽게 접촉할 수 없는 인물들을 통해 어떤 경험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마약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촬영 중반에 결정됐다. 두 결말이었는데 우린 둘 다 표현할 준비가 돼 있었다. 사실 갑론을박이 있었다. 감독님 하고픈 대로 하셔라 말씀드리긴 했지만, 개인적으론 지금의 결과가 만족스럽다." (차지현)

"촬영 중 감독님과 다퉜다. <햄버거맨>을 같이 했다지만 감독님도 장편은 처음이었고, 뭔가 현장에서 소통이 단절되는 느낌이랄까. 북한말을 제가 잘하고 있는 건지도 헷갈려서 길잡이가 돼 달라고 했는데 배우가 모르면 어떡하냐고 하더라(웃음). 그렇게 싸우다가 나중에 감독님은 배우를 믿고 있기에 아무말 안 하는 거라고 하셨다. 저 역시 그때부터 더 감독님을 믿고 가자고 결심했다." (홍근택)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기 보단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들도 사는구나 생각하면 더 편하게 보실 수 있을 것이다. 나름 치열하게 20대를 보냈다. 경제적으로 일찍 독립해서 영상 일을 했는데 자괴감도 많이 느꼈다. 계속 뭔가를 쫓으며 산다는 느낌이었다. <비행>에도 세 번의 추격신이 있는데 두 번은 쫓고 쫓기는 실체가 있지만 세 번째엔 쫓는 사람 없이 도망가는 인물만 있다. 20대를 돌아보려는 의도였다." (조성    빈 감독)


 
 영화 <비행>의 주역들.

영화 <비행>을 연출한 조성빈 감독. ⓒ 써드아이비디오

 
불안함 속 자기 확신 

경험으로 치면 세 사람 모두 신인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자신들이 택한 일에 확신은 강해 보였다. 홍근택, 차지현 모두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연기의 끈을 놓지 않고 있고, 조성빈 감독 또한 영화일을 택한 것에 후회가 없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십 대 끝자락과 서른 초입에 첫 장편을 경험한 이들은 각자의 미래를 그려 보고 있었다.

"<비행>을 찍은 이후에도 꾸준히 학생 단편이나 독립영화에 참여하고 있다. 사실  태어날 때부터 연기하고 싶었거든(웃음). 어렸을 땐 그냥 유명한 스타가 되고 싶은 게 꿈이었다면 지금은 연기를 잘하고 싶다. 재미를 느껴 놓지 않고 있는데 인정을 잘 안 해주니 오기가 생기더라. 그러다 <햄버거맨>과 <비행>을 만난 거다. 불안함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저만의 확신이 있어서 그 불안함을 즐기고 있다. 긍정적인 성격이라 포기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다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있다. 오디션도 열심히 보고 있다. 이 시간이 좀 길어질 수는 있겠지만 즐겁게 보내려 한다." (차지현)

"저도 '관종'의 끝이었다(웃음). 대학 진학 앞두고 연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음에도 부모님께 말씀드렸는데 흔쾌히 허락하시더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대입 실패 후 재수를 했고, 대학만 가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웃음). 군대 가기 전까진 연기보다 스태프 일을 더 많이 했다. 너무 지쳐서 쓰러지려 할즈음 한번씩 기회가 오더라. 말 그대로 연기에 멱살 잡혀서 지금까지 끌려 왔다. 좀 더 끌려다녀 보려 한다." (홍근택)

"지금의 제가 이 일을 안 했다면 뭘 하고 있을까 상상해봤는데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더라.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분명해서 택한 것이다. 제 선택에 후회는 없다. 이미 작품을 내놓게 된 것도 하나의 꿈에 다다른 상태라고 본다. 다음 작품? 두 배우와는 함께 하지 못할 것 같다! 서로의 과제다. 헤어져서 서로 다른 배우와 감독과 해봐야지(웃음)." (조성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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