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방영한 KBS2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한 장면

지난 11일 방영한 KBS2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한 장면 ⓒ KBS

 
"아내가 처음에 연애할 때는 산뜻하고 늘 단정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저랑 비슷하게 추리닝(트레이닝복)을 입어요. 요즘 들어 그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말 나온 김에 세게 얘기했습니다!"

지난 11일 방송된 KBS 2TV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이하 <살림남2>)는 팝핀현준의 아내 국악인 박애리의 변신을 집중 조명했다. 

"트레이닝복 입은 것도 대박이다. 내 것 입었나? 집에서 트레이닝복 좀 입지 말아라. 아무리 편하게 있다 해도 예쁜 홈드레스도 있지 않나?" 
"엄마는 새치 별로 없네? 박애리가 더 많다. 새치가 아니라 흰머리다. 할머니다. 다른 데 가면 사람들이 나랑 10살 이상 차이나는 줄 안다." 


이날 방송에서 팝핀현준은 아침부터 아내에게 '흰 머리가 많다', '늙어 보인다', '집에서 트레이닝복을 입지 말라' 등 무례한 말을 쏟아냈다. 마침내 그는 박애리에게 "외모를 꾸밀 것"을 강요한다. 팝핀현준의 도를 넘은 외모 지적은 아들 집에서 가사 노동을 전담하는 그의 어머니는 물론, 이 모습을 중계하는 팽현숙, 최양락까지 폭발하게 만든다. 

결국 아들의 언행을 보다 못한 어머니는 며느리 박애리씨를 데리고 쇼핑에 나선다. 미용실과 옷가게를 거친 아내는 산뜻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그제야 팝핀현준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변신에 성공한 아내의 모습에 기뻐하며 애정공세를 선사한다. 이날 세 가족의 이야기 마지막 장면에서 팝핀현준은 달라진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심야 데이트를 나섰다. 데이트에 나서는 순간까지 팝핀현준만은 트레이닝복을 고수하고 있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지난 11일 방영한 KBS2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한 장면

지난 11일 방영한 KBS2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한 장면 ⓒ KBS

 
본인은 집에서나 밖에서나 늘 트레이닝복을 즐겨 입는다. 그러나 아내는 집에서도 트레이닝복을 입으면 안 되고 언제 어디서나 단정하고 산뜻한 모습을 유지할 것을 강요한다. 잘 꾸미지 않는 아내의 모습이 불만이라면, 자신 또한 최소한 깔끔하고 단정한 외향을 갖추고 아내를 지적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살림남2>는 이날 외모에 관심없었던 박애리의 변신 전후를 여러 번 대조해서 보여줬다. 이후 박애리의 달라진 모습에 아내 팔불출이 된 팝핀현준의 변화로 훈훈하게 마무리 짓는다. 평소 관심없던 외모 관리에 나서야 했던 여성(박애리)은 남성을 흡족하게 하는 미모를 갖추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사랑과 관심을 되찾게 된다. 문득 1980년대 말 고 최진실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던 가전제품 CF 광고 카피가 떠올랐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물론 얼떨결에 변신에 나선 박애리 또한 자신의 달라진 모습에 기뻐하고,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외모를 가꿔 예뻐지고 싶어하는 여성의 욕망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오로지 남성의 입맛대로, 그들이 원하는대로 외모를 가꾸는 장면이 공영방송에 걸맞은 것이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지난 11일 방영한 KBS2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한 장면

지난 11일 방영한 KBS2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한 장면 ⓒ KBS

 
"아이들 아침 먹이는 것을 제가 하고, 씻기는 건 같이 하고, 아침 식사 준비와 준비물은 아내가 챙긴다. 이 정도면 5대 5가 아닌가?"

한편, 이날 <살림남2>에서는 배우 강성연과 재즈 피아니스트 김가온 부부가 새로운 출연진으로 합류했다. 주 내용은 독박육아, 살림에 시달리는 강성연의 일상이었다.두 아이 육아를 위해 배우 활동을 잠시 쉬고 있는 강성연과 달리 김가온은 음악 작업을 이유로 육아와 살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때문에 육아와 집안일은 전적으로 강성연의 몫이고, 이 모든 것을 혼자 해내느라 정신없는 일상을 보여준다. 그 시각 동료들과 음악 작업에 몰두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김가온과 대비되는 하루다. 아이들의 아침을 직접 먹인다는 김가온의 주장과 달리 방송에서 아이들의 식사를 챙기는 것은 전적으로 강성연의 몫이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식사에만 신경쓸 뿐이다. 퇴근 후에도 김가온은 육아를 도와 달라는 강성연의 요청에 잠깐 아이들과 놀아주는 척 하다가, 작업실로 슬그머니 들어간다. 김가온은 이후 아내의 간곡한 부탁을 듣고서야 설거지와 청소에 나선다. 하루종일 쉴 틈 없이 가사, 돌봄 노동에 시달린 강성연의 짐을 덜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해보이는 장면이었다.

남편에게 외모지적을 당하다가 결국 그의 뜻대로 외모를 가꾸고 다시 남편의 사랑과 가정의 평화를 얻게 된 여성, 결혼 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남성과 달리 독박 육아에 시달리는 여성. 이날 <살림남2> 방송이 보여준 우리 시대의 여성상이었다.
 
외모지상주의, 결혼,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까지 현실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동시대 여성들의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지만 <살림남2>는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예능적인 재미로만 가볍게 이를 다뤘다.

<살림남2> 제작진이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도대체 무엇일까? 자신의 외모를 생각하지 않고 아내의 외모를 지적하는 팝핍현준의 철없음에 대한 시청자들의 분노? 독박육아에 시달리는 아내의 고충에도 자신의 작업에만 몰두하는 김가온에 대한 한숨? 변화하는 가족상과 여성에게 유독 높은 잣대가 부여되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성찰과 고민없는 가족예능의 뒷맛이 씁쓸하기만 하다. 
 
 지난 11일 방영한 KBS2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한 장면

지난 11일 방영한 KBS2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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