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토 아르시치오 소속 미국 대표팀 선수... 로위(194cm·왼쪽)와 워싱턴(190cm)

부스토 아르시치오 소속 미국 대표팀 선수... 로위(194cm·왼쪽)와 워싱턴(190cm) ⓒ 국제배구연맹

 
올 시즌 이탈리아 리그에서 최대 돌풍을 일으킨 라바리니(41세)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이 큰 위기를 맞았다. 소속팀의 핵심인 미국 대표팀 선수들이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공포로 팀을 떠났기 때문이다.

라바리니 감독은 현재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이다. 그러나 '전임 감독'이 아니다. 도쿄 올림픽까지만 맡기로 한 '임시 계약직'이다. 때문에 프로구단인 이탈리아 리그의 부스토 아르시치오 팀 감독을 병행하고 있다.

부스토 아르시치오는 13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 배구연맹이 최근 유럽 팀들에게 코로나19 발생 지역에 거주하는 미국 선수들의 귀국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며 "우리 팀도 카스타 로위와 할레이 워싱턴이 미국으로 떠난다"고 공식 발표했다.

라바리니 감독, 카스타 로위(26세·194cm), 할레이 워싱턴(24세·190cm)은 부스토 아르시치오가 올 시즌을 앞두고 이탈리아 리그 정상에 도전하기 위해 야심차게 영입한 인물이다.

그 선택은 적중했다. 부스토 아르시치오는 올 시즌 이탈리아 리그에서 최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 정상급의 초호화 군단인 이모코, 노바라, 스칸디치 등 이탈리아 리그 '빅 3'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당당히 2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이탈리아 컵' 대회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했다. 단순히 돌풍을 넘어서 강호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그러나 로위와 위싱턴이 이탈리아 정규리그 후반부와 최종 우승을 팀을 가리는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코로나19 사태로 팀을 떠났다. 두 핵심 선수의 공백으로 치명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로위와 위싱턴은 미국 대표팀의 1군 주전 멤버다. 특히 로위는 지난 시즌 이탈리아 리그 최강인 이모코 팀에서 활약했다. 2018-2019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교체 멤버로 들어가 16득점으로 팀 내 최다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워싱턴은 지난해 8월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과 9월 월드컵 대회에서 미국 대표팀의 주전 센터로 맹활약했다. 장래가 촉망되는 특급 신예라고 할 수 있다.

로위와 워싱턴은 이날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작별 인사를 남겼다. 로위는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과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팀과 우승을 놔두고 떠나는 것이 슬프다. 곧 돌아올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워싱턴도 "이렇게 시즌을 중단하게 돼 유감이다. 이 팀에서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코칭 스태프와 구단 회장에게 감사 드린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예상 뒤엎고 '리그 2위' 돌풍... 핵심 선수 이탈 '좌초 위기'
 
 라바리니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현 이탈리아 1부 리그 부스토 아르시치오 감독)

라바리니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현 이탈리아 1부 리그 부스토 아르시치오 감독) ⓒ 박진철 기자

 
부스토 아르시치오는 지난 시즌 이탈리아 리그에서 최종 순위 6위에 그쳤다. 때문에 올 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출전 자격조차 얻지 못했다. 올 시즌 전망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지난 10월 13일 이탈리아 리그가 개막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잘해야 4위권 정도로 평가됐었다.

빅 3가 세계 배구 강국의 핵심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부스토 아르시치오보다 훨씬 막강한 전력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라바리니 감독은 지난해 대한민국 여자배구 대표팀을 지휘하느라 소속팀 선수들과 고작 10여일 함께 훈련하고 올 시즌 정규 리그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부스토 아르시치오는 라바리니 감독의 트레이드마크인 '토털 배구를 바탕으로 하는 스피드 배구'를 앞세워 강팀들을 무너뜨렸다. 이는 현재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추구하는 배구 스타일과 똑같다.

올 시즌 부스토 아르시치오 선수들을 포지션별로 살펴보면, 레프트는 헤르보츠(21세·182cm), 젠나리(29세·184cm), 빌라니(25세·187cm), 피치니니(41세·184cm)로 구성됐다.

라이트는 로위(27세·194cm), 비치(25세·186cm)가 나섰다. 센터는 워싱턴(25세·190cm), 보니파치오(24세·185cm), 베르티(24세·193cm)가 포진했다. 세터는 오로(22세·180cm), 쿠미오(28세·177cm), 리베로는 레오나르디(33세·165cm), 왕쓰민(23세·168cm)이 맡는다.

오로는 현재 이탈리아 대표팀 1군의 백업 세터다. 주전 세터인 말리노프(24세·185cm·스칸디치)에 이어 2인자라고 할 수 있다. 헤르보츠는 벨기에 대표팀의 주 공격수다. 공격과 수비력이 뛰어난 완성형 레프트에 가깝다.

피치니니는 올해 한국 나이로 42세(1979년생)다. 현재 V리그 최고참인 이효희(1980년)보다도 1살이 많다. 피치니니는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이탈리아 대표팀 선수로 출전했다. 당시 한국과 경기에서도 교체 멤버로 뛴 적이 있다. 지난 1월 시즌 중간에 부스토 아르시치오에 영입됐다.

이탈리아 코로나 '심각'... 고민 깊어진 라바리니 감독
 
 라바리니 감독(뒷줄 맨 오른쪽)과 부스토 아르시치오 선수들... 2019-2020 CEV컵 대회 (2020.1.23)

라바리니 감독(뒷줄 맨 오른쪽)과 부스토 아르시치오 선수들... 2019-2020 CEV컵 대회 (2020.1.23) ⓒ 유럽배구연맹

  
이탈리아는 현재 모든 스포츠 경기가 4월 3일까지 전면 중단된 상태다. 문제는 그 이후에도 과연 재개될 수 있느냐다. 이탈리아의 코로나19 확산 추세로 볼 때 회의적인 전망이 많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증가 추세를 놓고 보면, 이탈리아는 단연 세계 1위다. 13일 기준으로 이탈리아는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가 1만7660명에 달한다. 이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다. 13일 하루에만 신규 확진자가 2547명이나 증가했다. 현재 일일 확진자 증가폭은 단연 세계 1위다. 신규 사망자 수도 250명으로 역시 세계 1위다. 전체 누적 사망자 수도 1266명으로 중국 다음으로 많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9일 '3월 10일부터 4월 3일까지 전 국민 이동 제한령'을 발동했고, 11일은 모든 식당, 술집 등을 잠정 폐쇄하는 등 초강력 조치들을 취했다. 또한 4월 3일까지 프로축구 리그 세리에A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 경기를 중단시켰다.

유럽배구연맹(CEV)도 지난 11일 남녀 유럽 챔피언스리그, 유럽배구연맹(CEV) 컵, 유럽 챌린지 컵 등 유럽 컵 대회에서 '이탈리아 팀과 대결하는 경기'는 모두 추후 공지 때까지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무기한 연기 조치다. 이탈리아의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수그러들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파장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심지어 미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은 해외 리그에서 뛰고 있는 대표팀 선수들에게 서둘러 귀국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중요한 포스트시즌을 앞둔 유럽 팀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라바리니 감독은 이탈리아 리그 한복판에서 이미 핵심 선수까지 떠나보냈다. 그러나 떠오르는 세계적 명장답게 불리한 조건들을 뛰어난 전략으로 여러 차례 극복해 온 바 있다. 이번 대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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