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리암 갤러거 >

영화 < 리암 갤러거 > ⓒ (주)디스테이션

 
2010년 열린 브릿 어워드 시상식은 '지난 30년간 최고의 앨범상'을 수여했다. 콜드플레이(Coldplay), 트래비스(Travis), 필 콜린스(Phil Col;ins),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gts) 등 쟁쟁한 후보들이 즐비했다. 쟁쟁한 후보들 가운데에서 트로피를 쟁취한 앨범은 오아시스(Oasis)의 2집 <모닝 글로리(What's the story-Morning Glory?)>였다.
 
오아시스는 이견이 없는 1990년대의 승자였다. 커트 코베인이 자기 파괴의 정서를 외치면서 시대의 목소리가 되었다면, 오아시스는 자기 긍정과 낙관주의를 내세우면서 '동세대의 친구'가 되었다. 형 노엘 갤러거가 만든 멜로디의 감성을 완성하는 것은 동생 리암 갤러거의 목소리였다. '존 레넌(비틀즈)와 조니 로튼(섹스 피스톨즈)을 합쳐 놓은 것 같다'는 영국 언론의 칭찬은 적합한 것이었다.
 
맷 화이트크로스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소닉>(2016)은 오아시스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해, 그 정점에서 이야기를 끝냈다. 반면 영화 <리암 갤러거>(2020, 찰리 라이트닝/개빈 피츠제럴드 연출)는 오아시스의 역사가 막을 내린 2009년 파리에서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공연을 앞두고 형제가 크게 다투면서 공연이 취소되는 것은 물론, 노엘 갤러거가 탈퇴를 결정하게 된 그 날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서사는 지극히 단순하다. 오아시스 해산 이후 방황하던 리암 갤러거가 다시 멋진 솔로 앨범 <애즈 유 워(As You Were)>로 일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리암 갤러거는 '나는 영원히 오아시스다'라고 말한다. 그는 오아시스의 프론트맨이라는 자부심이 매우 강했다. 노엘 갤러거의 탈퇴 이후, 남은 멤버들과 함께 밴드 비디 아이(Beady Eye)로 활동했다. 그러나 노엘 갤러거라는 사령탑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시원치 않은 성적표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라이드(Ride)의 리더였던 앤디 벨이 팀을 떠나면서 비디 아이는 두 장의 앨범을 끝으로 사라졌다. 리암 갤러거 역시 이 시절을 '실패'로 평가했다.
 
 리암 갤러거와 그의 애인 데비.

리암 갤러거와 그의 애인 데비. ⓒ (주)디스테이션

 
자신이 속한 밴드가 없어진 것은 수십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리암은 갈 길을 잃고 방황한다. 그 때 그를 옆에서 보살핀 것은 오아시스의 초기 멤버였던 본헤드(Bonehead), 그리고 친형 폴 갤러거였다. 그가 SNS에 실없는 글을 올리자, '트위터를 그만 두라'고 조언한 것 역시 본헤드였다. 여자친구이자 매니저인 데비는 그에게 '음악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주문한다. 그렇게 그는 기타를 잡고, 곡을 썼으며, 다시 노래를 불렀다.  아무리 화려한 조명을 받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는 법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리암 갤러거를 미화하고, 그의 입장만을 대변하기에 바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오아시스의 재결합을 꿈꾸는 팬들에게는 가혹한 일이겠지만, 리암은 이 영화에서 형 노엘을 끊임없이 비난한다. 두 사람은 밴드 해산 이후 10년 동안 만나지 않았다. 리암의 표현에 따르면, 노엘은 독선적이며, 자신의 연락을 받지 않는 사람이다. 이 영화에는 오아시스의 노래가 단 한 곡도 등장하지 않는다. 저작자인 노엘 갤러거가 오아시스의 노래를 이 영화에 삽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심지어 리암 갤러거 자신은 그냥 '개xx'지만, 노엘 갤러거는 '어마어마한 개xx'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러나 그가 노엘을 언급하는 장면마다 그리움 역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리암은 노엘을 만난다면 '곡괭이로 머리를 때릴 것인지, 키스를 할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때 리암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애증'이었다. 이 복잡한 감정은 '원 오브 어스(One Of Us)'라는 곡의 가사와 뮤직비디오에도 잘 드러난다.
 
"내가 서 있을 곳, 오직 무대뿐이리."
 
 페스티벌 무대에서 공연하는 리암 갤러거

페스티벌 무대에서 공연하는 리암 갤러거 ⓒ (주)디스테이션

 
과거의 리암 갤러거는 '오만한 태도가 지금의 오아시스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건 사고로 얼룩진 리암은 대중들에게 오만하고 저돌적이며, 적대적이고, 충동적인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자신을 신과 같다고 지칭하는 모습은 갤러거 형제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미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토록 자극적인 이미지 뒤에 가려진 본질은 따로 있다. 바로 '마이크 스탠드 앞에 선 로큰롤 싱어'라는 것이다. 2017년 맨체스터 테러를 추모하는 콘서트, 수만 관객을 압도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그리고 작은 극장에 이르기까지. 리암 갤러거는 한결같이 빛나는 록스타였다.

리암 갤러거는 '노래를 부르고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 내 일'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우주비행사가 될 수도, 꽃집 사장이 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 어디에 서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돌아갈 곳의 좌표를 알고 있었기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난동을 피우던 그는 이제 가족들과 등산을 하고, 조깅을 즐긴다. 약물도 줄였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술을 좋아하지만, 이젠 자러 갈 시간을 알 나이야'라고 말한다. 40대 중반에 이른 그의 목소리가 오아시스 말년 시절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리암 갤러거>는 다른 뮤지션들의 다큐 영화와 비교했을 때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차별점을 가지는 작품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스웨거(swagger)를, 그리고 나름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은 즐거웠다. 아무리 세월 앞에 유해졌다 하더라도, 그는 이 시대의 로큰롤 스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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