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아이처럼 보이고 싶은 소녀의 성장담을 다룬 영화 <톰보이>(2011)

남자아이처럼 보이고 싶은 소녀의 성장담을 다룬 영화 <톰보이>(2011) ⓒ (주)그린나래미디어

 
지난 금요일,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국내에도 수많은 팬을 보유하게 된 프랑스 여성 감독 셀린 시아마의 전작들을 볼 기회가 있었다. 코로나19 여파로 극장가가 역대 최악의 침체기를 맞는 상황 속에서도, '셀린 시아마 기획전'은 예매 오픈과 함께 전 좌석 매진을 기록했다. 셀린 시아마 파워를 보여준 이번 기획전 상영작은 그녀의 데뷔작인 <워터 릴리스>(2007), <톰보이>(2011), <걸후드>(2014), 지난 1월부터 절찬리에 상영 중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 총 4편이었다. 

지금까지 발표된 셀린 시아마 감독의 모든 영화가 인상깊게 다가왔지만, 그중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온 영화는 <톰보이>였다. <톰보이>는 제목 그대로 남자처럼 보이고 싶은 소녀의 성장담을 다룬 영화다. 새로 이사온 동네에서 만난 리사(진 디슨 분)와 친구들에게 소년 '미카엘'로 자신을 소개한 로르(조 허란 분)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고군분투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결국 엄마에게 모든 사실을 들켜 버린 로르는 원치않는 커밍아웃을 해야하는 위기에 처한다. 

로르에게 파란 원피스를 입히며 아웃팅을 강권하는 엄마는 이렇게 설득한다.

"너에게 벌을 주거나 가르치려고 하는 건 아냐. 나는 네가 남자아이처럼 옷을 입던 행동하던 상관 없어. 하지만 계속 할 수 있는게 아니야.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해봐. 난 모르겠으니까." 
 
 지난 7일 방영한 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강제 아웃팅을 당한 마현이(이주영 분)과 그를 위로하는 박새로이(박서준 분)

지난 7일 방영한 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강제 아웃팅을 당한 마현이(이주영 분)과 그를 위로하는 박새로이(박서준 분) ⓒ JTBC

 
로르 엄마가 굳이 로르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폭로한 것은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만간 학교에서 만날 학생들은 로르를 모두 미카엘로 알고 있는데, 학교에서도 로르의 정체를 숨길 수는 없는 법. 할 수 없이 이웃들에게 자신의 진짜 성별을 알려야했던 로르에게 닥친 결말은 예상대로다. 그간 자기들보다 축구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는 로르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남자아이들은 로르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잔인한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심지어 로르의 진짜 성별을 확인 해야겠다면서 또래 여자아이인 리사를 시켜 몹쓸 짓도 서슴지 않는다. 

로르를 강제 아웃팅 시켜야하는 엄마의 사정도 이해는 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에 우리 사회가 생물학적 성별과 다른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도 너그럽게 포용하는 분위기라면, 굳이 저렇게까지 잔인하게 정체성을 드러낼 필요성이 있었을까. 극장에서 봤을 때도 유독 끔찍하게 다가온 장면 이었지만, 유독 이 장면이 기억에 남는 것은 다음날 TV드라마를 통해 이와 비슷한 상황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방영한 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단밤포차의 주방장으로 맹활약 중인 마현이(이주영 분)는 트랜스젠더다. 

지금까지 종갓집 장남으로 알려져있던 마현이가 돌연 아웃팅을 당한 것은 TV 요리경연 프로그램인 '최강포차' 우승을 둘러싼 단밤과 장가의 자존심 대결이 있었다. 단밤의 마현이가 '최강포차' 1, 2차 예선전에서 장가를 연이어 이기자, 제 실력으로는 도저히 승리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장가의 장근수(김동희 분)는 마현이가 트랜스젠더임을 언론에 폭로한다. 
 
 지난 7일 방영한 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강제 아웃팅을 당한 마현이(이주영 분)에게 '돌덩이'라는 시를 읊어주며 격려하는 조이서(김다미 분)

지난 7일 방영한 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강제 아웃팅을 당한 마현이(이주영 분)에게 '돌덩이'라는 시를 읊어주며 격려하는 조이서(김다미 분) ⓒ JTBC

 
마현이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게된 사람들은 그를 보자마자 일제히 수근거리기 시작한다. 이전과 달리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에 충격을 받은 마현이는 그들을 피해 계속 도망치기 시작한다. 

예기치 못한 아웃팅으로 곤욕스러운 상황에 처한 마현이에게는 다행히도 그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단밤의 식구들이 있었다. 마현이 역시 "언제고 있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최강포차'에서 우승해야 거액의 투자를 받을 수 있다"면서 우승을 향한 각오를 다지지만, 갑작스런 아웃팅의 상처를 훌훌 털어 버리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나는 돌덩이. 뜨겁게 지져봐라. 나는 움직이지 않는 돌덩이. 거세게 때려봐라 나는 단단한 돌덩이. 깊은 어둠에 가둬봐라. 나는 홀로 빛나는 돌덩이. 부서지고 재가 되고 썩어버리는 섭리마저 거부하리. 살아남는 나. 나는 다이아"

기사를 통해 마현이의 강제 아웃팅 소식을 접한 조이서(김다미 분)는 지금 누구보다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마현이를 위해 시 한 편을 전해준다. 뜨겁게 지져도 움직이지 않고, 깊은 어둠 속에서도 홀로 빛나고, 부서지고 재가 되고 썩어버리는 섭리마저 거스리고 다이아로 살아남는 돌덩이. 그를 둘러싼 무수한 편견 속에서도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고자하는 마현이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한 글귀가 있을까. 

"저는 트랜스젠더다. 그리고 저는 오늘 우승하겠습니다." 

자신을 어떠한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언제 어디에서나 홀로 빛나는 돌덩이로 비유한 조이서의 응원에 큰 힘을 얻은 마현이는 예정대로 '최강포차' 결승전에 참석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향한 편견에 당당히 맞설 것을 선언한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이야기는 못하지만, 영화 <톰보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자신의 정체성이 들통나 웃음거리가 되야 했던 <이태원 클라쓰>의 마현이와 <톰보이>의 로르는 그 와중에도 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지지를 보내는 동료의 응원에 힘입어 다시금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당당히 '최강포차' 결승전에 모습을 드러낸 마현이는 선언한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실력으로 인정 받겠다고 말이다. 
 
 지난 7일 방영한 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강제 아웃팅의 상처를 딛고 '최강포차' 결승전에 등장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커밍아웃한 마현이(이주영 분)

지난 7일 방영한 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강제 아웃팅의 상처를 딛고 '최강포차' 결승전에 등장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커밍아웃한 마현이(이주영 분) ⓒ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가 유독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간 여러 방송, 드라마에서 특이한 존재로 다뤄지던 성소수자, 트랜스젠더를 다른 사람들과 다를바 없이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인정받고 싶은 보통의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마현이가 아웃팅 당하자마자 그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초리처럼, 트랜스젠더, 성소수자를 향한 사람들의 인식은 여전히 곱지 못하다. 그러나 원치 않는 커밍아웃과 그를 향한 야멸찬 시선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자기 자신을 드러낸 마현이처럼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던지 당당히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고도 차별없이 존중받고 배려받는 사회. 그것이 인류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할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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