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커트 코베인 사후 발표된 어쿠스틱 라이브 앨범 <MTV 언플러그드 인 뉴욕>은 너바나와 커트 코베인의 신화를 더욱 강화했다.

커트 코베인 ⓒ Nirvana 유튜브 캡쳐


2020년 3월 8일은 110번째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이었다. 그래서 하루 내내, 여성에 대한 지지와 존중을 의미하는 장미꽃 이미지를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의 여성 섬유 노동자들이 정치적인 권리와 대우 향상, 노동조합 결성권 등을 요구하면서 시위에 임했던 날을 기념한 것이다. 당시 뉴욕의 여성 노동자들은, 민주주의의 주체와 수혜자들이 결코 남성에 국한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세계 여성의 날'은 그날의 뉴욕으로부터 112년이 지난 지금도 잔존하는 젠더 불평등을 상기시킨다.
 
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여성의 날이 될 때마다 떠올리게 되는 뮤지션이 있다. 바로 너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다. 커트 코베인은 마음속 어두운 단면을 처절한 소리에 실어 보냈던 청년이다. 그의 목소리는 X세대로 명명되는 당대의 젊은이들을 관통했다. 인디 밴드였던 너바나의 < Nevermind >가 마이클 잭슨의 < Dangerous >를 끌어 내리고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은 무엇보다 상징적인 장면이다.
 
너바나와 커트 코베인의 이름은 '얼터너티브 록' 신을 상징했지만, 그는 '얼터너티브'라는 구분을 좋아하지 않았다. 상업성에 경도된 록스타들을 경멸했던 그는, 자신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을 오래 견디지 못했다. 한없이 순수한 영혼이 택한 죽음이었다. 1994년, 스물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커트 코베인은 '마지막 록스타'로 역사에 아로새겨졌다. 커트 코베인 이후로 록스타가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와 같은 영향력과 카리스마를 발현시켰던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존 레넌, 퀸의 프레디 머큐리 등과 같은 '만신전'에 올랐다.
 
 너바나(Nirvana)의 < Never Mind >는 당대의 청년들을 규정했다.

너바나(Nirvana)의 < Never Mind >는 당대의 청년들을 규정했다.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우리에게 커트 코베인은 자기파괴적이었던 청년, 비운의 슈퍼스타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견지하고 있었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역시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커트 코베인은 인터뷰를 통해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밴드 '비키니 킬'의 멤버였던 토비 바일을 만난 후, 페미니즘에 눈을 떴다고 전해진다. 그는 너바나의 노래 'Polly'와 'Rape Me'에서는 여성에 대한 강간 범죄가 얼마나 끔찍한 폭력인지를 강조했다. 코베인은 단순히 강간 범죄를 비판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더욱 진보적인 자세를 주문했다. 그는 여성들에게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남성들에게 '강간을 하지 말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일갈했으니 말이다.

그는 성소수자들에게 LGBT의 아이콘으로도 여겨진다. 물론 그가 스스로를 게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는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에 꾸준히 반대했으며, 그들을 위한 자선 공연을 열었다. 자신의 섹슈얼리티 역시 하나로 고정된 것이라 보지 않았다. 'In Bloom'의 뮤직비디오에서는 크리스 노보셀릭과 함께 드레스를 입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등, 전형적인 남성성과 거리를 두기도 했다(그는 실제로 언제나 마초주의를 경계했다).

"여러분 중 게이, 피부색이 다른 사람,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공연에 오지 말고, 우리 앨범을 사지도 말기를 바랍니다."

커트 코베인은 분노와 열패감으로 가득 찬 목소리를 들려주었지만, 언제나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1994년, 그가 자신에게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면, 올해로 쉰세 번째 생일을 맞았을 것이다. 중년의 커트 코베인은 어떤 음악을 들려주었을 것인지, 그리고 그의 시선이 세상의 어떤 곳을 향해 있었을까. 2010년대의 마지막 대를 가득 채웠던 '미투 무브먼트'와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했을까.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그래도 상상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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