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리정혁과 윤세리가 평양으로 가는 길에 기차가 연착되어 노숙하게 되는 장면

▲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리정혁과 윤세리가 평양으로 가는 길에 기차가 연착되어 노숙하게 되는 장면 ⓒ tvn

 
tvN 주말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끝난 지도 2주가 지났다. 리정혁(현빈 분) 대위는 피아니스트가 되어 스위스로 가버렸고 윤세리(손예진 분)는 그의 옆에 있다. 당분간 두 사람이 장거리 연애를 해서라도 사랑을 지속하기 바란다. 드라마가 끝난 뒤 나의 허전함은 그들이 책임질 수 없으므로 쿨하게 안녕.

<사랑의 불시착>이 처음 방송되었을 때 제목이 촌스럽다는 평을 주변으로부터 들었다. 초반에 시청률이 저조했다면 아마 '뽕삘'나는 제목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으리라. 그렇지만 리정혁과 윤세리의 연애담은 그 이름이 아니면 안 됨을 이제는 알고있다. 인간사 불시착하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사랑에 관해서 우리는 모두 불시착하였지만 그런대로 살아내는 법을 터득하며 사는 것은 아닌가.

북한 엘리트장교와 남한 CEO의 연애라는 드라마적 설정은 남과 북이 서로 오고갈 수 없는 대한민국 현실에선 명백한 판타지물이다. 세상에 분명 존재하나 평범한 사람들이 만나기엔 불가능한 인물들이 운명을 넘어 온갖 역경을 극복해낸다는 서사는 리정혁의 믿음직스러움과 윤세리의 아름다움 그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내뿜었다.

어디 분화구는 두 사람 뿐이었던가. 북한 군인 마을에 사는 '주부어벤져스'의 생활상은 어떠했나. 윤세리를 처음 만난 주부어벤져스들은 처음엔 다소 쌀쌀함을 보였지만, 이내 그녀에게 따듯함을 선사했다. 북한에서 그들과 보낸 시간을 그리워하던 윤세리는 이후 한국에 돌아가서 자신이 만든 브랜드인 세리스초이스에서 내놓는 새 화장품에 '주부어벤져스'의 삽화를 넣기도 한다. 

박지은 작가는 북한 생활에 대한 고증을 성실하게 했음이 틀림없다. 문화어(북한 표준어)를 구사하는 배우들의 대사들도 실감이 났고 사회상과 시대상을 구현하는 연출도 뛰어났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한 장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한 장면 ⓒ tvN

 
나는 1981년생으로 대한민국 육군 장교였던 아버지를 둔 덕에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휴전선 인근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리정혁 대위가 그랬던 것처럼) 파주, 철원, 동두천, 연천, 전곡을 돌며 전방교대근무(?)에 나갔고 그 때마다 우리 가족들도 아버지를 따라 군부대 안에 있는 민간인 통제구역 군인 관사에 들어가 살았다. 

초등학생이었던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서울 이남 지역에서도 반공교육을 철저히 했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노태우 정권 이후 남북관계는 이전과 분명 달랐을테지만 휴전선 근처에서 학교를 다닌 나를 포함한 인근 주민의 자녀들은 여전히 철저한 반공교육의 대상이었다.

간첩이 되어서 돌아온 외삼촌을 보며 고민하는 외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투철한 신고정신을 가진 내 또래의 주인공이 첨예하게 갈등하던 영화. 감자와 옥수수를 먹던 북한 농민의 일상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장마를 견디고 홍수를 막아서 목표량을 달성하던 노동자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옆집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도 끝내 고개를 저어야하는 현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반공 영화를 단체로 관람하고 암막 커튼을 젖히고 나오면 눈부신 운동장에는 책보를 옆구리에 낀 이승복 동상이 당장이라도 팽팽한 목젖을 찢어 버릴듯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외치고 있었다. 이승복은 1968년 무장공비에 의해 살해된 소년. 죽기 직전까지 공비들의 잔학한 행위에 항거하기 위해 저 유명한 말을 남긴, 나와 나이가 비슷하지만 생존했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용감한 소년이다. 내 팔에 오톨도톨 돋아난 닭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고 반공교육을 받을 때마다 돋아나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되묻게 만들었다.

강설량이 높은 휴전선 일대는 겨울에 한번 눈이 오면 무릎이 빠질만큼 왔고 그런 날 학교를 가는 부대 연병장 위에는 간밤에 북한에서 날아온 '삐라'가 눈과 함께 소복소복 밟혔다. '삐라'를 주워 교무실 문 앞에 달린 상자함에 넣으면 한 달에 한번 가장 많이 모아온 학생에게 학용품도 주고 상장도 주고 그랬다. '삐라'는 빨간 글씨로 쓰여져 있었고 김일성을 찬양하는 문구와, 지상의 낙원 북한으로 오라는 회유의 말걸기가 대부분이었다. 시베리아에서 불어온 북서 계절풍을 타고 날아온 조악한 삐라들은 우리들의 손에 곱게 닿아 연필과 공책을 불려주었고 지루한 등굣길을 함께 해주었다. '삐라'를 주울 때 우리가 모두 합창하여 부르는 노래가 하나 있었는데 간첩은 어떤 생김을 하는 사람인지 알려주는 목적성이 짙고 지은이를 알 수 없는 노래였다.

"새벽에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 양복바지에 등산화 신고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 등산화에 이슬 젖은 흙이 묻어 있는 사람, 담배값을 모르는 사람, 남들 다 잘 때 북한 라디오를 듣는 사람..."

세월이 지나 노래의 곡조는 잊었지만 가사만큼은 분명 저랬다. 노래의 목적성에 알맞게 훈련되어진 나는 읍내 버스정류장에서 배낭을 매고 양복바지를 입고 진흙이 묻은 등산화를 신은 남자를 볼 때마다 외로이 심각한 내적 갈등을 하곤 했었다. 간첩 신고를 해야하나...

나는 철저하게 반공교육을 받고 자랐다

봄이 오면 아버지에게도 서울서 손님이 오셨는데 그 때마다 우리는 통일 전망대로 갔다. 거기서 망원경으로 북한을 보면 소 몰고 논 일 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랑의 불시착> 사택마을 한가운데 붉은 글씨로 쓰여져 있던 '지상의 낙원' 같은 슬로건도 망원경으로 선명하게 보였다.

소를 몰고 농사를 지으러 가는 듯 보이지만 사실상 일이 없는 처지라고 담당자는 알려주었다. 모내기 철인데 모를 낼 수 없을만큼 어려운 경제상황 즉 고난의 행군 시기라는 것도 이해시켜 주었다. 저기 보라고 논과 밭이 파랗게 물이 들어야 할 오월에 누렇게 말라 비틀어진 잡초만 무성하다고. 담당자는 신이 나서 말을 이어갔다. "겨울엔 너무 추워서 오줌을 싸면 그대로 얼어 고드름이 되어버리는 곳이 저 휴전선 너머입니다."

이렇듯 나는 철저하게 반공교육을 받고 자랐다. 내가 배운 바에 의하면 휴전선 너머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삶이 없었다. 나는 그들의 삶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다. 저들은 국가의 부속품으로서 존재하며 다만 소극적이거나 적극적이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자주 꿈을 꾸었다.

내 방 아래가 땅굴이어서 간첩이 튀어나오는 꿈. 집 앞의 야산에서 무장공비가 내려와 우리집 부엌에서 밥을 훔쳐 먹는 꿈. 읍내 피아노 학원으로 도망을 갔는데도 간첩이 따라와 총을 쏘는 꿈. 

그 꿈은 아버지가 전역을 하고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한 뒤에도, 내가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남태평양을 건너 호주로 이민을 온 지 십년이 넘은 후에도 이어진다. 그 꿈은 내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가 내재화된 형태일 것이다. 국가로부터 학습받아 체득화된 이념이 폭력인 줄 모르고 성장했고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달아나지 못한 채 자의식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 살았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한 장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한 장면 ⓒ tvN


<사랑의 불시착>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나는 너무도 쉽게 그 시절로 돌아간다.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보던 북쪽의 주민들, 밤이 되면 대남방송을 타고 오던 그들의 웅변과 노래, 집요하게 꿈에 나와 나를 무섭게 하던 간첩들이 모두 그 드라마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의 회가 거듭될 수록 나의 시간여행이 그 때 그 시절과 같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박지은 작가는 '이쪽' 사람들 의식 속에 갇혀있던 '저쪽' 인물들에게 말을 주고 목소리를 주었다. 개개 인물들에 삶을 주었고 존재에 이유를 주었고 무엇보다도 그 인물들에게 '사랑'과 '연애'를 주었다. 삶에 있어 사랑이나 연애만큼 구체적이고 분명한 모양새가 어디있는가. 북한 사람들에게 그런 것이 있다고 우리는 언제 생각해 보았는가.

한국 전쟁 이후 쓰여진 전후 문학은 패배감이 짙었고 음울했다. 한국 전후 문학은 인간 실존의 부조리에 집중하느라 폐허가 된 상황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자기 복제만 하다가 끝이났다. 나는 박지은 작가가 쓴 <사랑의 불시착>이 한국 전후 문학의 완결이라 생각한다. 종전 선언을 두고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 만큼, 이쯤에서 대한민국이 전후문학을 완성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존재를 고민하느라 삶을 챙기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주저앉고 만 전후 문학은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한 작품을 통과하여 문학사적 매듭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존재의 부조리함에 천착하던 전후 문학이 개인의 사소한 삶을 통해 인간을 향한 희망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을까.

혹자는 이 드라마가 북한을 미화하여 국민을 빨갱이가 되도록 선동한다고 욕하고 폄훼한다. 그러나 단언컨데 박지은 작가는 통일이 된 '그 날이 오면' 남과 북이 오도가도 못하던 시절 사람 사이에 틈을 내고 길을 낸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빨갱이 세상이 다시 올까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는 때에 북한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키고 문학적 완성을 이룬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수혜자는 바로 나다. 내가 수십번을 반복한, 식은 땀을 흘리며 깨야했던, 간첩이 따라와 필사적으로 도망가던 그 꿈을 꾸지 않을 것을 알기에. 

우리는 지금 남북으로 갈리고 찢긴 것도 모자라 이제는 산산이 조각나 파편으로까지 갈린 분열의 시대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은 어떻게 스스로를 치유할 것인가. 저들의 삶을 눈으로 보는 것이 답이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을 가진 자들이 '저기' 있음을 형상화 시킨 <사랑의 불시착>을 보는 것이다. 16회 내내 사랑스러웠던 리정혁과 윤세리의 연애는 대한민국이여 이제 앞으로 나아가라 외치는 메시지였다. 리정혁과 윤세리가 사랑하는 이 마당에 도대체 왜 아직까지 빨갱이를 무서워하고 적화통일을 걱정하는가? 그걸 걱정이랍시고 해야만 하는가? 리정혁이 사랑 때문에 땅굴을 타고 청담동까지 와버렸는데!

이젠 '저쪽'에서 나처럼 사는 주부어벤져스를 만나길 꿈꾼다. 또한 좋은 문학은 한 사람의 오래 묵은 트라우마를 거둬 내기도 한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당신 연애 참 즐거웠소 리정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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