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은 2002년 <라라라>로 첫 1위를 하기까지 지상파 순위프로그램에서 2위만 14번에 올랐다.

이수영은 2002년 <라라라>로 첫 1위를 하기까지 지상파 순위프로그램에서 2위만 14번에 올랐다. ⓒ jtbc 화면 캡처


 
지난 2월 27일, JTBC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 시즌 3>에 가수 이수영이 등장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에서 영감을 얻은 이 프로그램은 한 시대를 잠시 풍미했다가 홀연히 사라져 버린 가수를 불러낸다는 것에 그 의의가 있었다. 그 결과, 양준일처럼 '대중이 과거로부터 불러낸 스타'가 배출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수영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느낀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수영은 결코 '잠시 사랑받았던 가수'가 아니라, 최고의 가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2003년과 2004년에 걸쳐 가요대상을 수상했고, 수년 동안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히트곡을 쏟아 낸 '발라드의 상징'이었다. 쉽게 대체되지 않는 창법과 동양적인 멜로디는 곧 이수영의 트레이드 마크였지 않는가.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 프로그램이 기존 방송 취지보다, 과거의 인기 가수를 불러내는 일 자체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장나라, 정상급의 인기를 구가했던 그룹 쥬얼리 등의 선례가 있다.
 
많은 시청자에게 이수영을 방송에서 보는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을 것이다. 음악적 변화를 모색했던 9집 앨범 < Dazzle > 이후, 이수영은 10년 넘게 정규 앨범을 발표하지 않았다. 소속사와의 분쟁, 결혼과 출산 등을 거치면서 가수로서의 공백은 길어졌다. '나는 가수다 시즌 2'에 출연했고, 라디오 프로그램 등의 진행을 맡기도 했지만, 그녀의 활동은 전성기에 비해 조용한 편이었다.
 
'라라라'를 부르며 등장한 이수영의 모습은 우리 기억 속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히트곡 메들리로 들려준 '휠릴리(2004), 'Grace(2006), 'I Believe(1999)' 등은 모두 그 시대를 향유했던 이들의 추억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정작 그 메들리의 목록에 5집 < This Time >의 타이틀곡 '덩그러니'가 없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이수영에게 처음으로 대상을 안긴 노래는 '덩그러니'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다 비슷했던 모양이다. MC 유재석은 '덩그러니'를 듣고 싶다는 의사를 넌지시 내비쳤다. 이수영은 '이 노래가 더럽게 어렵다'라며 너털웃음을 짓더니, 이 노래를 부르다 몇 차례 실수를 하면서 생긴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용기를 낸 이수영은 과거의 트라우마에 맞서 '덩그러니'를 불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전성기 시절의 모습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수영에게 첫 대상 안긴, 그 노래
 
 이수영 5집 < This Time >

이수영 5집 < This Time > ⓒ 스톰이앤에프

 
이수영이 전성기를 누렸던 2000년대 초중반, 나는 그녀의 수많은 히트곡 중에서도 '덩그러니'를 가장 좋아했다. 이별 후를 곱씹는 이 노래의 정서를,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이해했을 리는 없다. 그저 직관적으로 '좋았다'. 이 곡은 좀처럼 지루하게 들리지 않았는데, 탁월한 편곡의 공이 컸기 때문이다.

MGR(훗날 조용필의 19집 'HELLO'의 프로듀서를 맡게 된다)이 작곡한 이 곡은, 이수영의 노래 중 밴드 음악의 색이 가장 짙다. '잘 들리는' 베이스 사운드와 드러밍이 곡의 중심을 잡고 있다. 하림의 아이리쉬 휘슬 연주는 '오리엔탈 발라드'로 명명된 동양적인 감성을 극대화한다.

작사가 윤종신의 가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별 후 '괜찮지 않으면서도 괜찮은 척 하는 사람'의 모습을 잘 포착했다. 애써 화려한 언어를 쓰지 않고도, 이토록 보편적인 이별 노래를 쓸 수 있는 작사가는 몇 되지 않는다. 이 모든 요소가 모범적인 조화를 이루고, 이수영 특유의 '한'이 가득한 비성의 목소리가 화룡점정을 찍는다. 시간이 오래 흐르고 난 후, 다시 꺼내 들은 '덩그러니'는 생각보다 더 탄탄한 곡이었다. 고민도, 차별점도 없는 '양산형 발라드'들과는 결이 달랐다.
 
"지친 내 하루의 끝에 거울이 비춘
깊이 패인 상처에 난 눈물만 덩그러니"
 
"이제 조금씩 허술해진 가면 흘러 내려 흉한 날 보겠지 
그때쯤엔 조금이라도 아물어져 있어서 널 보면 숨지 않길"
 

시대는 빠르게 바뀌었다. 수십 억을 들인 드라마 타이즈의 뮤직 비디오가 사라져 갔고, 비장한 분위기의 발라드 역시 시장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그리고 시간은 다시 흘러 2020년,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상징되는 이수영표 발라드가 '복고'와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수영의 노래를 전혀 모른다는 10대들을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시절의 대중 가요를 기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새로운 감흥을 느꼈다. 그녀가 꾸준히, 그리고 새로운 노래를 불러 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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