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동>

영화 <시동> ⓒ (주)외유내강

 
"어른이 되면 하기 싫어도 일해서 벌어먹고 살아야 돼. 어떻게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어. 너 이렇게 살면 사람 대접도 못 받어."(윤정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뭔 잘못이야. 그냥 나를 믿어주면 안 돼? 엄마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나 때문에 엄마 인생 포기하지 말고."(고택일)


영화 <시동>에서 갓 고등학교를 자퇴한 고택일(박정민 분)과 엄마 윤정혜(염정아 분)의 대화다. 당신은 누구를 지지하고 싶은가. 혹 지지하지만 현실은 다르다고 역설하고 싶은가. 

질문을 달리해 보자. 나는 스스로 진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그런 삶을 잇고자 애쓰고 있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맞춰 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까. 택일은 자신의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며 질타를 하는, 그래서 매일같이 싸워야 하는 엄마가 싫고 버겁다. 그리고 한때 열정적인 배구 선수였지만 지금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홀로 고된 노동에 찌들어 사는 엄마가 가엾기도 하다.    

한편 엄마는 제 멋대로 고등학교를 관두고 검정고시 학원비로 준 돈으로 중고 오토바이, 그것도 판매자에 속아서 폐기 직전의 고물을 사서는 밤거리를 질주하다 사고까지 치는 아들이 못미덥기만 하다.

엄마의 심정이 상당 부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나는 택일을 응원하고 싶다. 지금 당장의 겉모습보다 스스로 하고 싶지 않은 것을 거부하고 원하는 것을 찾아 모험할 줄 아는, 그렇듯 강단 있게 계속해 개척해나갈 그다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
 
"만 원으로 갈 수 있는 데 하나요."(고택일)
"만 원으로 갈 수 있는 데 엄청 많은데요."(고속버스터미널 매표원)


택일이 달랑 1만 원으로 가출길에 올라 터미널 매표소 직원과 나눈 대화다. 이 짧은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누구나 현재 자신이 가진 것을 밑천 삼아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매 순간 어디로 어떻게 갈 지는 역시 자신의 선택이다. '고(go, 가다) 택일'이란 이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영화 <시동>에서 '고택일'

영화 <시동>에서 '고택일' ⓒ (주)외유내강

   
이미 어른이 된 수많은 사람들도 과거 언젠가까지는 택일처럼 자기 삶에서 남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당연하고도 옳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런 삶이 진짜라고.

나 역시도 그랬다. 지금도 노력 중이고. 그런데 어른으로 20년쯤 살아보니 내가 원하는 대로 살기가 결코 쉽지 않다. 늘 좋지도 않고. 되레 무척 곤란할 때가 많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쉬울 것 같은 이 질문의 답이 늘 확실하진 않다. 마침내 원하는 무엇을 찾아 짜릿한 행복을 느낄지라도 그것엔 각각이 다른 유효기간이 있고, 그래서 계속 마음과 세상이란 거대한 탄광에서 내 영혼을 매료시킬 보석을 찾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어렵고 외롭고 고단한 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택일을 지지하면서 한편으로 택일에게 자꾸만 "안 된다", "틀렸다"고 하는 택일의 엄마에게 묻고 싶다. 그와 같은 어른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택일을 지지하면서 한편으로 택일에게 자꾸만 "안 된다", "틀렸다"고 하는 택일의 엄마에게 묻고 싶다. 그와 같은 어른들에게도 묻고 싶다. 정말로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지, 무한하기에 정해진 답도 없는 인생에서 이렇게 살면 잘못되고 저렇게 살면 잘 된다고 말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말이다.

혹 안 된다고 하는 이유가, 본인이 진짜 원하는 삶을 끈덕지게 용기있게 살아가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은 아닌지. 대신에 안주한 삶이 그래도 자식이나 늙은 부모, 소중한 그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 믿고 싶은 건 아닌지. 
 
 영화 <시동>에서 '택일 엄마'

영화 <시동>에서 '택일 엄마' ⓒ (주)외유내강

 
"학교가 그렇게 중요해? 어디 가서 이상한 짓 안 하고 그냥 사람답게 살면 되는 거 아니야? 그냥 나를 믿어주면 안 돼?"

만 18세 택일의 인생관은 그릇됨이나 비겁함 없이 순수하고 멋지다. 사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말은 맞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라거나 아예 '말도 안 돼'라고 한다면 그건 당신의 믿음이나 변명일 순 있어도 정답은 아니다. 

택일은 가출 하루 만에 베일에 가려진 '장풍반점'에 당당히 취직해 별의 별 일을 다 겪는다. 그러나 기어이 한 달을 성실하게 일해서 생애 첫 월급을 받는다. 그리고 그렇게 고생해 번 돈을 엄마에게 봉투째 갖다준다. 부도덕한 일로 큰 돈을 벌려는 절친에게는 '너다운 걸 하라'며 묵직한 조언도 할 줄 안다. 이 정도면 이미 훌륭하지 않은가. 이 정도면 그를 믿고 스스로 자기 삶의 방향을 결정하도록 지켜봐주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영화 <시동>에서 '고택일'

영화 <시동>에서 '고택일' ⓒ 이명주


만약 부모로서, 스승으로서, 어른으로서 삶이란 여행을 갓 시작한 이들에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면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식의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참견은 하지 말자. '내가 못 했으니 너도 못 해' 따위 맥빠지는 비관 말고, 우선 본인 삶부터 돌아보자. 그동안 어떤 길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지금의 자리는 어떠한지 말이다.

그리고 남(자식도 남이다)에게 잔소리 대신 나에게 다짐을, 남이 좋아할 것 같은 일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남이 됐으면 하는 거 말고 스스로 되고 싶은 그 무엇을 위해 '나의 삶'을 사는 거다. 그 과정에 진짜 행복과 그것을 거듭 찾는 과정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 인생 멘토로서 최상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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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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