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지막 게임> 포스터

영화 <마지막 게임> 포스터 ⓒ 넷플릭스

 
미국 CIA와 중남미 지역 친미 반군 세력 간의 무기 밀거래를 취재 중이던 '앨레나 맥맨(앤 해서웨이)'. 그녀는 밀거래의 전모를 파헤칠 결정적인 단서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모리슨(벤 애플렉)'을 위시한 행정부의 압력에 굴복한 데스크의 명령으로 인해 레이건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을 취재하게 된다. 그러던 중 앨리는 병으로 입원한 아버지인 '딕(윌리엄 더포)'으로부터 자기 대신 사업 차 미팅에 나가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아버지 대신 미팅을 나가게 된 앨리는 자신이 CIA와 반군들의 무기 밀거래 현장에 왔음을 알아채고, 목숨을 건 취재에 나선다.  

앤 해서웨이와 벤 에플렉 주연의 넷플릭스 신작 <마지막 게임>은 1980년대 말 발생한 '이란-콘트라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란-콘트라 사건'은 로날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CIA가 니카라과의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란에게 무기를 몰래 판매하고 그 대금으로 니카라과의 우익 반군을 지원한 사건을 말한다. 영화는 레이건 행정부의 비도덕적이고 위선적인 외교정책을 밝히려는 한 기자의 취재 과정을 따라가며 '사지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기자들의 노력과 어려움'을 드라마와 스릴러라는 두 가지 장르 안에 담아낸다.

<마지막 게임>의 드라마는 두 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는 기자라는 직업에 따라올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어려움으로, 특히 가족 관계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멜로드라마다. 작중 엘레나는 중남미 지역 특파원이자 이혼해서 딸을 키우는 싱글맘으로, 경력과 육아를 모두 해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녀는 딸을 기숙학교에 보낸다. 이렇듯 딸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따뜻한 사랑을 마음껏 보낼 수 없는 어려움은 영화 내내 그녀를 괴롭히고 그녀의 선택의 중요한 판단 준거로 작용한다. 

엘레나와 딸의 관계는 엘레나와 딕의 관계와 겹쳐지면서 보편적인 부모와 자녀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도 확장된다. 두 이혼 가정의 모습을 영화는 벽에 빗대어 묘사한다. 엘레나와 그녀의 딸이 첫 장면에서 전화하는 모습이나, 딕의 집에 머무를 때 대화하는 엘레나와 딕 사이에 벽이 있는 순간들이 대표적이다. 이 장면들에서 엘레나와 딸, 엘레나와 딕은 서로 불평을 늘어놓고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관계가 벽으로 막혀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들은 벽을 넘어서 마지막까지 전화나 신문을 통해 서로를 생각하며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애증의 가족관계는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고,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가슴 아프게 만든다.  

언론 안에서 무기력하기만 한 개인

한편 이 영화는 저널리즘 드라마이기도 하다. 개인의 정체성과 노력을 무력화시키고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하는 그 시스템에 대한 환멸과 허망함을 표출한다. 또한 그 와중에 숨어 있을 작은 희망에도 빛을 비춘다. 영화는 공중에서 부감으로 정글 속을 이동하는 엘레나와 숨 가쁘게 움직이는 신문사의 전경을 비추면서 시작한다. 온갖 역경을 겪고 죽을 위기를 마주하며 취재를 하는 기자들과 사력을 다한 그들의 취재 내용이 건조하고 무색무취한 문서가 되어버리는 상황을 비교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언론 내에서 더 이상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함, 언론이 본래 목적을 잃고 표류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곧바로 이어서 등장하는 "여기 비즈니스가 어떤 식인지 알잖아?"라는 편집장의 대사는 언론 안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행정부를 불편하게 만드는, 니카라과 반군에 대한 엘레나의 취재를 일방적으로 막아버린다. 이에 그녀는 명령대로 움직일 뿐 아무런 반항을 하지 못한다. 아무리 투철한 사명의식을 지니고 있어도 언론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기력한 기자일 뿐이라는 점을 정확히 지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허탈함, 무기력함, 환멸만을 남긴 채 끝나지는 않는다. 영화는 저널리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놓지 않기도 한다. <마지막 게임>은 "하지만 우리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모든 역사는 초고라고 말했었다. 역사의 각주. 그럼에도, 여전히(still)..."라는 엘레나의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된다. 이는 영화의 첫 대사이기도 한 "그땐 무중력 모드가 시간과 감정을 모두 이길 것처럼 보였다"라는 그녀의 내레이션에 대응하는 수미상관의 구조를 이루고, 언젠가는 진실과 정의가 드러날 것이라는 희망을 암시한다.  

극과 극의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큰 작품
 
 영화 <마지막 게임> 스틸 컷

영화 <마지막 게임> 스틸 컷 ⓒ 넷플릭스


동시에 <마지막 게임>은 스릴러 영화로서의 정체성도 보여주려고 한다. 영화는 대부분 엘레나의 시점에서 이루어진다. 반면에 '모리슨'이라는 또 다른 주인공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며, 그의 존재 자체를 서스펜스로서 사용하려고 한다. 그의 속셈이 무엇인지, 그가 어디 소속인지,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제한된 정보만을 조금씩 제시하면서 미스터리를 만들어내고, 이러한 미스터리로 또 다른 미스터리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게임>은 스릴러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제대로 조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두 인물이 대척점에 있음을 영화가 시작과 동시에 드러낸다. 이를 통해 아무것도 모르는 주인공인 엘레나와 상황을 파악한 관객 간의 정보의 차이를 만들고, 서스펜스를 조성하려고 시도한다. 

문제는 엘레나 개인의 삶과 기자라는 정체성에서 비롯된 드라마적 요소가 너무나도 강렬해서 스릴러 영화의 정체성까지 감춘다는 점이다. 영화가 끝나면 기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서 오는 허망함, 그리고 가족 관계가 자아내는 애환이 가슴 깊이 남는다. 반면 엘레나가 사건의 실체를 깨닫는 반전은 효과가 크지 않다. 그녀가 목숨을 걸고 뛰어다닌 취재 과정이 스릴러가 아닌 드라마 장르에서 그 의미가 더 중요시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앨리와 모리슨 사이의 관계 속 긴장감은 그다지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고, 벤 애플랙이 연기한 모리슨이라는 인물은 배우의 명성에 비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이처럼 멜로드라마, 저널리즘 드라마, 스릴러를 결합하려던 <마지막 게임>은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반군을 의도적으로 그리고 불법적으로 도와주는 미 행정부를 고발하는 기자의 서사를 그녀와 가족 간의 관계나 기자로서 그녀의 고민과 정체성이 드러나는 서사가 묻어버린 셈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게임>은 뛰어난 드라마와 부족한 스릴러가 만난, 극과 극의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선택과 집중, 말하고 싶은 이야기와 말해야만 했던 이야기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결과로 탄생한 범작, <마지막 게임>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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