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게 된 한국 여자농구의 새로운 사령탑이 과연 누가 될지에 농구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자대표팀은 최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최종예선에서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다.

하지만 최종예선을 끝으로 계약기간이 만료된 이문규 감독이 혹사 논란 등 대회 기간 벌어진 여러 가지 구설수로 농구협회로부터 최종 불신임 판정을 받으면서 계약연장에 실패했다. 이로써 여자농구대표팀은 올림픽 본선을 앞두고 새로운 감독을 구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농구협회는 이번에도 '공개모집' 형식을 통해 도쿄올림픽에서 여자대표팀을 지휘할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현실적으로 본선까지 5개월밖에 남지 않아 시간이 촉박한 데다 여자농구계에 감독을 맡을만한 인재 풀이 넓지 않아서 어려움이 예상된다. 새로운 감독 체제로 자칫 본선에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올림픽 무대에 나갈 수 있다는 명예가 자칫하면 독이 든 성배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WKBL 사령탑의 대표팀 감독 겸임체제로 보인다. 남녀농구 모두 전임감독체제가 도입되기 전까지 프로팀 감독들이 국제대회가 있을때마다 일시적으로 대표팀을 겸임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아무래도 현역 감독들의 현장감각기 살아있고 국가대표 주축인 프로 선수들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프로 감독들 입장에서는 대표팀 겸임에 대한 동기부여가 크지 않다. 아무래도 한 명이 2개의 팀을 동시에 겸임하는 만큼 대표팀에 온전히 책임감을 갖고 집중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사실상 대표팀에 가 있는 동안은 자신의 소속팀을 사실상 손 놓고 방치해야 한다는 부담도 크다. 더구나 현역 프로 감독이라고 해도 대표팀을 맡을 만큼 능력과 성과가 검증된 인물도 많지 않다.

현역 프로 감독 중에서 대표팀을 맡을만한 적임자로는 역시 위성우 아산 우리은행 감독이 1순위다. WKBL 최초의 200승을 달성한 위 감독은 우리은행의 통합 6연패를 이끌었으며 국가대표팀에서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끈 경험이 있어서 가장 적임자로 꼽힌다. 그러나 위 감독 정도의 커리어를 쌓은 인물이 이제와서 굳이 추대도 아닌 공개모집에 나서면서까지 대표팀 감독을 원할지는 의문이다. 위 감독 외에 다른 여자프로농구 현역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현재 감독직을 맡지 않은 재야로 범위를 넓히면 임달식 전 신한은행 감독이나 신기성 스포티비 해설위원 등도 후보가 될 수 있다. 임달식 감독이나 신기성 위원은 예전에도 여자대표팀 감독직에 공모했으나 당시는 '경력점수'에서 이문규 감독에게 밀린 바 있다. 다만 이 감독이 사퇴하면서 감독 선정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고, 협회도 감독 평가기준을 바꾸겠다고 선언한만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임 감독은 여자농구와 대표팀 경험이 풍부하지만 2016년 중국프로농구 진출을 끝으로 현장을 떠난지 오래됐고, 신기성 위원은 2019년까지 신한은행 감독을 맡았으나 여자농구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게 약점이다.

근본적으로는 여자농구의 감독 선임 기준과 형식부터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엄밀히 말하면 이문규 전 감독도 프로팀과 겸임만 하지 않았을 뿐, 국제대회가 있을 때마다 단기적으로 계약을 연장하는 형식이었지 제대로 된 '전임 감독'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문규 감독의 자질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대표팀 감독에게 확실한 대우와 시간을 보장해주지도 않는 시스템에서 선수발굴이나 장기적인 플랜을 세우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무엇보다 일국의 국가대표팀 감독을 뽑는 일이라면 현재 팀의 상황에 맞는 능력과 비전을 갖춘 인물을 직접 찾아내 '추대'하는 형식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새로운 대표팀 감독이 될 인물도 변화하는 시대적 요구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올림픽 본선행을 이루고도 사실상 불명예스럽게 낙마한 이문규 감독의 비극에서 보듯, 권위주의적 리더십과 결과지상주의만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던 시대는 지났다.

결과못지 않게 중요한 게 과정이고, 권위보다는 소통과 공감으로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는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시대다. 어느 감독이 오든 처음부터 잘 할 수도, 흠이 없기도 어렵겠지만 적어도 눈과 귀를 열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과연 한국농구가 이번에는 제대로 된 대표팀 감독을 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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