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 CJ ENM

 
시작은 2015년 4월이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 4관왕 등 연일 화제의 중심이 된 <기생충>은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15장 분량의 시놉시스에서 출발했다. 영화사업본부장을 거쳐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로 사업을 끌고 가던 곽신애 대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봉준호 감독은 노란색 봉투를 그에게 건넸다. 그 자리에서 다 읽은 곽 대표에게 봉준호 감독이 웃으며 건넨 말은 "안 하셔도 돼요"였다고 한다.

"재밌어요. 할 건데요. 해야죠." 

장장 6개월의 오스카 캠페인(아카데미 시상식을 위한 홍보 기간)를 마치고 돌아온 곽신애 대표를 최근 다시 만났다. 믿기지 않았던 아카데미 수상의 뒷이야기와 현지 분위기를 제법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상상 이상이었던 봉준호의 인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배우 송강호와 악수하려 기다리고, 노아 바움백 감독 등 할리우드 유명 감독과 봉준호 감독이 영화 얘기를 나누는 등 아카데미 시상식 직전까지 진행된 여러 행사에서 <기생충> 팀은 단연 주목 1순위였다고 한다. 현지 언론에서도 <기생충>의 본상 수상 가능성을 높게 보도하는 분위기였다. 정작 곽신애 대표를 비롯한 스태프들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칸영화제 때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곽신애 대표는 "본상 하나는 뭐라도 받겠지 싶었다"고 운을 뗐다. 

"현지에서 여러 예측 기사가 있었고 수시로 바뀌었다. 감독상과 작품상은 < 1917 >이 받을 것으로 보였는데 아무도 확신할 순 없었다. 다만 <기생충> 테이블이 정말 핫하긴 했다. 송강호 선배랑 전 내심 작품상을 받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은 것에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제가 주관적으로 느낀 건 공식석상에서 관계자들이 보인 뜨거운 반응이었다. 봉준호라는 예술가를 매우 좋아하시더라.

돌아보면 트로피에 '봉준호'라는 이름이 써있는 건 다 받았다. 감독상과 각본상, 작품상, 국제영화상에 모두 감독님 이름이 들어가 있거든. 제가 투표하는 사람이었어도 몰아줬을 것 같다.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표가 갈리면 응원하는 감독들이 아무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 <기생충>이 상을 받는다면 아카데미의 변화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고 < 1917 >이 받으면 전통에 맞는 결과일 것이라 생각했다. 모 작품의 프로듀서가 우리 쪽으로 와서 마지막 상(작품상)은 <기생충>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가기도 했다(웃음)." 


결과론적으로 4관왕에 대한 여러 이유를 댈 수 있다. 이미경 CJ 그룹 부회장의 활약을 비롯해 대기업 차원의 지원 덕이라는 얘기도 충분히 가능하다. 곽 대표는 제법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작품이 애매한데 이미경 부회장, CJ가 지원한다고 표를 줄까. 물론 그분들이 목표를 높게 잡은 건 있다. CJ 실무진이 미국 현지 배급사와 상의하면서 잡은 목표가 국제영화상 수상이랑 주요 부문 노미네이션(후보)이었다. 비용을 얼마나 썼냐는 얘기도 나오는데 국내와 달리 미국에선 일단 작품을 상영하면서 그때그때 판단한다. 그래서 캠페인 비용을 어디서부터 기준으로 잡아야 하는지 모호한 면이 있다.

LA 거리를 걸으면 전광판 광고가 < 1917 >아니면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다. <기생충>은 아주 가끔 보이고. <조조 래빗>과 우리가 가장 가난한 영화였다(웃음). 이런 조건에서 경쟁한 거지. 이미경 부회장의 기여가 없다는 게 아니다. LA에 사시니 영화계 지인들도 많으실 거고, 그분들의 마음 자체를 바꿀 수는 없어도 <기생충>의 확산을 유연하게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됐을 거다. 너무 한쪽 면만 강조하는 기사들이 나와 좀 갑갑했다. 여러 잡지나 파워블로거 등이 만든 리스트에도 <기생충>이 들어가 있곤 했다. 그만큼 전반적으로 좋은 분위기였다."


제작자 개성 사라지는 시대... 제작자의 몫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 기자회견' 봉준호, 감사합니다! 배우 봉준호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 기자회견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기생충>은 한국영화 최초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 종려상,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제7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데 이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 영화상 등 4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수상했다.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 기자회견' 봉준호, 감사합니다! ⓒ 이정민

 
정작 봉준호 감독 본인은 오스카 캠페인 초반 꽤 힘들어 했다는 후문이다. 본인 역시 "되게 낯설었다"며 "(시간이 좀 지나서야) 영화를 이렇게 세밀하게 검증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감독님의 예전 모습을 보면 사교에 시간을 그리 많이 쓰는 분은 아니다. 영화 보고, 만들고, 같이 한 사람들을 만나는 수준이지. 사교는 최소한의 것만 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엔 되게 스트레스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중엔 영화 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시간에서 나름 위안을 찾은 듯하다. 노아 바움백 감독 등과 점점 가까워지면서 말이다. 수상 자체에 대한 부담도 있으셨던 것 같다. 칸영화제 때 '아무것도 못 받으면 욕먹겠죠?' 이런 말씀은 하셨다. 국가대표선수가 나가서 못하면 달걀 맞는 일에 비유하며 (수상 후엔) '계란은 안 맞겠군요' 이런 말씀은 하셨다(웃음).

저도 이게 무엇을 위한 과정일까 고민하게 됐다. 나름 정리한 건 아카데미 시상식은 나름 미국 영화 산업을 선순환시키고, 붐업(boom up) 시키는 시스템이지 않을까다. 여름엔 대형 블록버스터 같은 텐트폴 시장을 노린 영화가 있다면 영화의 미래를 위해 힘을 실어줘야 하는 작품을 검증해서 소개하는 게 아카데미의 역할 같다. 우린 아직 그런 시스템이 없는 것 같다. 연말에 시상식 잠깐 하는 정도지. 다양한 영화를 붐업시켜서 선순환되는 구조는 아니잖나. 미국 스스로 영화 산업 종주국의 위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굳이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곽신애 대표는 제작자로서 큰 경력을 쌓게 됐다. 일각에선 봉준호 감독이니까 앞뒤 가리지 않고 제작을 맡은 거 아니냐, 지금 봉준호 감독이 신인이라면 과연 <플란다스의 개> 같은 영화가 만들어나 질까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대기업 3사가 극장의 95%를 갖고 있고, 투자 및 제작업까지 하는 수직계열화 독과점이 심해진 한국영화산업이다. 이 때문에 십수 년, 많게는 수십 년 역사가 있는 제작사들이 문을 닫거나 개성을 담은 영화 제작을 포기하는 일도 자주 생긴다. 이에 곽신애 대표의 생각이 궁금했다. 

"봉준호 감독이기에 지원도 받고 체계가 갖춰졌다는 건 인정한다. 지난 작품을 통해 봉준호가 만들면 돈도 벌고, 작품도 인정받는다는 걸 증명해왔잖나. 그런 신뢰는 감독 본인이 쌓아온 것이다. 저 역시 (신인인) 엄태화 감독의 <가려진 시간>을 제작했다. 상업적으론 실패했는데 그 이후도 함께 하는 중이다. 신인 감독이 <기생충> 같은 시나리오를 들고 왔다면? 전 했을 거다. 투자사를 설득했을 거고. 

그런 생각이 든다. 투자사와 배급사를 한 덩어리로 보며 특정 회사만 떠올리면 안 풀리는 문제가 많을 것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도 영화광이 많다. 제게 여러 신인 감독을 소개해 달라고 하기도 한다. 물론 <가려진 시간> 주인공이 강동원씨가 아닌 무명이었으면 투자받기 어렵겠지. 제작자로서 시장도 고민해야 하니까. 영화도 망하고 작품적으로도 평가 못 받으면 그 감독을 살릴 수가 없다. 답이 없는 것이지."


"매 작품이 시험대"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 CJ ENM


곽신애 대표는 이 대목에서 상호 노력을 강조했다. 봉준호 감독의 유명세, 신뢰감이 큰 건 맞지만 그 역시 걸맞게 자신의 힘과 능력을 발휘한다고 말이다.  

"권력이라면 권력이겠지만 그걸 잘못 쓸 때 나쁜 거지. 감독님은 일단 너무 사람이 좋으시다. 저와 일할 때도 월권한 적이 없다. 기택(송강호) 동네에 홍수가 나는 장면을 만들 여러 방법이 있었는데 감독님이 먼저 예산을 줄여 합리적 방법을 제시했다. 박 사장(이선균) 저택 정원도 앞줄만 풀을 심자고 하셨다. 제작비를 높여 손익분기점을 높이는 것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신 거다. 보통 프로듀서와 감독은 스토리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지만 비용은 엄청 드는 장면에서 많이 싸우는데 봉 감독님과는 그럴 일이 없다는 거지. CG도 잘 아시고. 그만큼 이런 상황을 책임지고 감당하기 위해 봉 감독님도 그간 공부를 해온 거라 생각한다."

이처럼 좋은 감독을 만나는 건 제작자의 복이기도 하다. <기생충>의 업적을 달성했지만 곽신애 대표는 "모든 영화는 작품마다 운명이 달라서 겪어봐야 알 수 있다"는 영화계 격언을 전했다. 

"경험이 있든 없든 모든 작품은 다 0에서부터 시작한다. 신뢰 관계가 이미 있다면 의리로 좀 더 도움을 주는 일은 있겠지만 작품의 완성도 자체는 감독과 작가의 몫이다. 영화는 그 과정만 넘으면 쭉 간다. 창작자들이 불필요한 검열을 받지 않게 여건을 잘 만들어주는 게 제작자의 몫 아닌가 싶다. 저 역시 <기생충> 전엔 과연 내가 제작자의 역량이 되나 의심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번 일로 좀 더 해봐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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