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리그 일정을 치르는 프로스포츠에서 감독들은 한 경기, 한 경기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사실 길게 보면 아무리 큰 스코어, 일방적인 내용으로 패한 경기도 긴 시즌의 한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관중이 모이는 개막전이나 그 해의 마지막 홈경기, 지역 라이벌과의 더비 경기, 순위가 붙어 있는 경쟁 구단과의 맞대결 등은 팬들에게는 물론 구단에게도 한 경기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핫스퍼FC에게는 22일(이하 한국시각) 스탬퍼드 브릿지에서 열린 첼시FC와의 원정 경기가 그런 의미를 가진 경기였다. 첼시는 토트넘과 같은 런던을 연고지로 쓰고 있고 이날 경기 전까지 리그 4위와 5위로 순위가 붙어 있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리그 4위는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로 가고 5위는 유로파리그로 간다. 따라서 22일 토트넘과 첼시의 27라운드 경기는 실질적으로 승점 6점의 가치를 가진 경기였다.

하지만 토트넘은 첼시와의 중요한 경기에서 1-2로 패하며 승점을 챙기지 못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한 골 차의 아쉬운 패배였지만 내용은 토트넘이 일발적으로 끌려 다닌 경기나 다름없었다. 사실 첼시전은 토트넘이 애초에 승리하기 쉽지 않은 경기였다. 해리 케인과 손흥민이 차례로 부상으로 이탈한 토트넘이 제대로 된 스트라이커 없이 경기를 치렀기 때문이다.
 
  토트넘은 18일(한국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손흥민이 지난 일요일 애스턴 빌라와 경기 도중 오른쪽 팔이 부러져 이번 주에 수술을 받게 됐다"라며 "수술 이후에는 재활 때문에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된다"라고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6월 카타르 원정에서 오른팔 골절상을 당한 뒤 깁스를 하고 귀국하는 손흥민.

토트넘은 18일(한국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손흥민이 지난 일요일 애스턴 빌라와 경기 도중 오른쪽 팔이 부러져 이번 주에 수술을 받게 됐다"라며 "수술 이후에는 재활 때문에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된다"라고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6월 카타르 원정에서 오른팔 골절상을 당한 뒤 깁스를 하고 귀국하는 손흥민. ⓒ 연합뉴스

 
지난 시즌 61득점 합작한 최고의 원투펀치 잃은 토트넘

토트넘을 이끄는 조제 모리뉴 감독은 2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한 번의 유로파리그 우승, 8번의 리그 우승을 이끈 유럽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으로 꼽힌다. 2003-2004 시즌 포르투FC를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끈 모리뉴 감독은 프리미어리그의 첼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세리에A의 인터밀란,프리메라 리가의 레알 마드리드를 거치며 언제나 빅클럽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실제로 모리뉴 감독은 첼시 사령탑으로 부임한 2004년부터 한 번도 스트라이커 부재에 시달려 본 적이 없다. 첼시 시절에는 '전쟁을 멈춘 사나이' 디디에 드로그바와 세르비아 출신 스트라이커 마테아 케즈만이 있었고 인터밀란 시절에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AC밀란), 사무엘 에투, 디에고 밀리토가 있었다. 심지어 '흑역사'로 꼽히는 맨유 시절에도 즐라탄을 비롯해 로멜로 루카쿠, 알렉시스 산체스(이상 인터밀란) 같은 쟁쟁한 공격수들과 함께 했다.

토트넘 감독 부임 후에도 모리뉴 감독에게 주어진 공격수 카드는 매우 훌륭했다. 일단 최전방에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주장이자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꾸준한 득점원으로 꼽히는 케인이 있었고 폭발적인 스피드와 깔끔한 마무리 능력으로 측면과 최전방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손흥민도 든든했다. 여기에 공격형 미드필더와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나무랄 데 없는 기량을 가진 델레 알리와 뛰어난 개인기를 자랑하는 루카스 모라가 뒤를 받쳤다.

하지만 아무리 구슬이 서 말이라도 제대로 꿸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토트넘은 지난 1월 2일 사우스햄튼FC와의 21라운드 경기에서 케인이 햄스트링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당초 우려했던 '시즌 아웃'까지는 가지 않을 거라는 진단이 나왔지만 아직 복귀 시점이 정확히 나온 것도 아니라 토트넘 팬들은 하루하루 애만 태우고 있다.

토트넘은 설상가상으로 케인 부상 이후 5경기에서 6골을 기록하며 토트넘 공격을 이끌었던 손흥민마저 16일 아스톤빌라FC전에서 오른팔 골절 부상을 입으면서 지난 21일 수술을 받았다. 손흥민 역시 빨라야 시즌 막판 2~3경기를 뛸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시즌 아웃까지 각오해야 한다. 이렇게 토트넘은 지난 시즌 61골을 합작한 팀의 듬직한 원투펀치를 모두 잃고 말았다.

라이프치히전 무득점에 이어 첼시전 자책골로 1득점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196cm의 장신 스트라이커 페르난도 요렌테(SSC 나폴리)가 케인의 백업으로 두 시즌 동안 13골을 기록하며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이번 시즌 토트넘에 케인을 제외하면 전문 스트라이커 자원은 찾기 힘들다. 여기에 스피드와 골 결정력을 앞세워 케인의 빈자리를 메워주던 손흥민마저 부상을 당했으니 토트넘은 스트라이커 없이 잔여 시즌을 치러야 하는 힘든 상황에 놓였다. 

모리뉴 감독은 손흥민이 부상을 당한 후 첫 경기였던 20일 RB라이프치히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경기에서 모라를 원톱으로 배치했다. 하지만 토트넘은 후반13분 라이프치히의 간판 공격수 티모 베르너에게 페널티킥으로 골을 허용하면서 안방에서 0-1로 패하고 말았다. 한 골을 뒤진 채 오는 3월 11일 라이프치히 원정을 떠나야 하는 만큼 토트넘의 8강 진출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

모리뉴 감독은 22일 첼시와의 리그 경기에서도 뾰족한 수를 들고 나오지 못했다. 토트넘은 첼시를 맞아 모라와 새로 영입한 스티븐 베르흐베인을 투톱으로 배치하고 중앙수비수 3명과 측면에 윙백 2명을 배치하는 실질적인 5백을 들고 나왔다. 첼시 시절 제자였던 프랭크 램파드 감독과 맞대결을 펼치면서도 정면승부를 하기 보다는 다소 수비적인 포메이션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축구에서 자신감이 떨어진 소극적인 경기 운영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토트넘은 이날 볼 점유율(50.8%-49.2%)과 터치(776-760), 패스(561-547), 코너킥(5-3)에서 모두 찰시에게 앞섰음에도 슈팅 숫자에서 5-17, 유효슈팅에서 3-7이라는 일방적인 차이를 보이며 1-2로 패하고 말았다. 후반 44분에 나온 만회골 역시 토트넘 선수가 아닌 첼시 수비수 안토니오 뤼디거가 기록한 자책골이었다.

첼시와의 27라운드 원정경기에서 승점을 추가하지 못한 토트넘은 4위 첼시(44점)와의 승점 차이가 4점으로 벌어졌다. 여기에 23일 맨유가 왓포드FC를 3-0으로 제압하면서 토트넘은 6위로 밀려났다. 앞으로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FA컵 등 중요한 경기들을 많이 남겨두고 있는 토트넘은 공격수 없이 힘든 시즌을 견뎌내야 한다. 아무래도 공격수가 없어 슬픈 토트넘의 '비극'은 이제 시작에 불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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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축구 2019-2020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핫스퍼 FC 조제 모리뉴 감독 공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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