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의 흰 지팡이> 포스터

<산티아고의 흰 지팡이> 포스터 ⓒ 제이리미디어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의 수호성인인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로 약 800km에 이른다. 국내에서는 tvN 예능 프로그램 <스페인 하숙>을 통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부엔 카미노(Buen Camino·좋은 순례길 되시길)”라는 인사를 통해 서로에게 힘을 전해주는 이 길은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로망이 있다.
 
<산티아고의 흰 지팡이>는 50대 시각장애인 재한과 대안학교에 다니는 18세 소녀 다희의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스페인으로 떠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이유로 순례길에 오른다. 재한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끝이란 걸 찾기 위해 다희는 시작이란 걸 경험하기 위해 동행을 결정한다.
 
재한의 인생은 말 그대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쉽지 않은 돈벌이와 예기치 못한 시력상실, 여기에 연속된 수술로 심신이 지쳐 있었다. 여기에 그녀를 더 힘들게 하는 생각은 ‘이런 고난과 시련의 삶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고단한 삶을 어떻게든 견뎌야 한다는 무게감에 미래마저 불안했고 이 순례길을 통해 처음으로 ‘끝’이 있는 길을 가보고자 결심한다.
 
 <산티아고의 흰 지팡이> 스틸컷

<산티아고의 흰 지팡이> 스틸컷 ⓒ 제이리미디어

 
재한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끝에서 해보고 싶은 건 플라멩코다. 콤포스텔라 대성당 광장에서 자신만의 플라멩코를 선보이는 꿈을 지니고 있다. 플라멩코는 재한이 지닌 다양한 모습 중 자신을 기억해줬으면 하는 모습이다. 열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본인의 내면 그 자체를 플라멩코의 춤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다희는 아직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 학교가 끝나면 사회로 나가야 되지만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길이기에 호기심과 기대, 두려움과 불안이 공존한다. 그녀는 순례길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끝을 경험해보고자 한다. 한 번도 목적지에 도달해보지 못한 사람과 한 번이라도 도달해 본 사람은 삶에 있어 문제를 대하는 자세에 차이를 보인다. 두려움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인내를 배우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동행은 매 순간 희망과 우정으로 가득하지 않다. 대표적인 장면은 재한이 플라멩코를 출 기대로 웃음꽃이 가득 피운 후 다음 날 울음을 터뜨리며 푸념을 하는 장면이다. 외국에서 맞이한 친절함에 기대를 품었으나 빨래를 제대로 말리지 않았다는 문제로 한 소리를 듣자 울분을 느낀 것이다. 재한은 자신과 같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마음 속에 울분을 지니고 있고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도 자극을 받는다고 말한다.
 
 <산티아고의 흰 지팡이> 스틸컷

<산티아고의 흰 지팡이> 스틸컷 ⓒ 제이리미디어

 
이런 재한을 때론 도우미로 때론 동행인으로 대해야만 하는 다희는 순례길 못지 않은 힘겨움을 느낀다. 다희와 더 친해지고 싶은데 걷기만 하는 게 아쉽다는 재한에게 다희는 걷는게 좋다고 말한다. 이내 말을 해봤자 다툼만 나니 차라리 걷는게 더 좋다며 울음을 터뜨리는 다희의 모습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며 어설픈 우정보다는 이해의 과정을 보여준다.
 
작품은 도입부에서 메이크업을 전공한 다희에 의해 화려하게 화장을 하고 플라멩코 의상을 입은 재한의 모습을 담아낸다. 재한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삶만큼이나 힘든 길을 한걸음씩 밟아나가며 진정한 자신을 만들어간다. 다희는 누군가와 함께하며 그 사람의 삶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는 동행의 의미를 실천하며 특별한 경험을 얻게 된다.
 
<산티아고의 흰 지팡이>는 한 폭의 회화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스페인의 풍경을 통해 시각적인 매력을 준다. 여기에 서로 다른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힘겨운 여정 끝에 동질감과 자아를 찾아낸 두 사람의 동행은 묘한 감동을 준다. <시인 할매>를 통해 잔잔함 속에 진한 감동을 담아낸 이종은 감독은 더 동적인 카메라의 시선으로 종착역을 향하는 두 사람의 마음을 따스히 어루만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산티아고의 흰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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