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이, 젝시> 스틸컷

영화 <하이, 젝시> 스틸컷 ⓒ 씨나몬(주)홈초이스

 
인류 앞에 스마트폰이 등장한지는 10여 년 밖에 되지 않았다. 2007년 아이폰 탄생 후 신인류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폰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네 번째 혁명은 그동안의 인류 혁명의 시간은 초스피드로 단축하는가 하면 놀라운 발전을 거듭했다. 급기야 2011년부터는 스마트폰을 들고 변한 새로운 인류를 '포노 사피엔스'로 명했다. 스마트폰이 뇌이고 손인 사람들이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가고 있다. 폰에서 시작해 폰으로 끝나는 하루. 당신은 얼마나 스마트폰에서 자유로운가.

스마트폰의 폭발적인 인기는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삶의 일부가 되고 있다. 어쩌면 당신을 잠식하고 있는 무서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몇 년 전부터 인공지능이 대세다. 아이폰 시리, 삼성 빅스비, 아마존 알렉사 등으로 편리함을 배가 되었다. 당신은 핸드폰 없이 5분도 못 버틴다고 장담한다. 어떻게 아냐고? 이 영화를 보고 내 이야기인 줄 알았다면 과분할까. 스마트폰과 하루를 사는 당신이라면 공감과 재미,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영화 <하이, 젝시> 스틸컷

영화 <하이, 젝시> 스틸컷 ⓒ 씨나몬(주)홈초이스

 
영화 <하이, 젝시>는 일분 일초도 스마트폰과 떨어질 줄 모르는 한 남자의 인생역전기다. 핸드폰 없이 살 수 없는 필(아담 드바인)은 뼛속까지 완벽한 집돌이다. 집-회사, 집-회사를 무한 반복할 뿐 한 번도 직장 동료와 퇴근 후 커피 한잔 마신 적 없는 소심왕이다. 회사 끝나면 집에 가기 바쁘다. 집에 꿀단지라도 숨겨 놓은 걸까. 저녁은 배달앱으로 시켜 먹고, 밀린 넷플릭스 돌려보고 잠자리 들기 전 성공적인 하루를 기념하는 가식적인 SNS까지 업로드하면 오늘 할 일 끝이다. 아~ 오늘도 참 행복한 날이었다고 자부하며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전혀 걱정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필은 기자가 되고 싶지만 현실은 바이럴 마케팅 담당 에디터다. 업무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지만 학자금 대출 때문에 그만둘 수도 없다. 회사에서도 친구 하나 없는 오로지 시리와 평생 친구가 될 것 같은 찌질이다. 이런 필에게도 볕들 날이 있을까. 인생은 길고 우연은 언제나 주인공에게 일어난다.

그러던 어느 날 필은 시리의 사망 소식에 재빨리 새 폰을 구매한다. 드디어 새 폰을 개봉함과 동시에 만나게 된 새로운 AI 젝시(로즈 번). 젝시는 좀 거칠기는 하지만 루저 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필은 스마트폰 인공지능에게 의존도가 과하다. 스마트폰 과의존증은 현대인의 고질병이다.

스마트폰은 편리하고 간편하지만 현실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고립을 자초하기도 한다. 내비게이션 없이는 약속 장소를 도착할 수 없고, 알람부터 자기 전 SNS까지 핸드폰의 노예가 되기 쉽다. 영화 속 필을 보는 동안 혹시 누가 내 이야기를 썼나 싶을 정도로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필의 행동 하나하나가 일상의 순간과 유사했다.
 
 영화 <하이, 젝시> 스틸컷

영화 <하이, 젝시> 스틸컷 ⓒ 씨나몬(주)홈초이스

 
그러나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너무나 솔직한 발언 탓에 상처받는 일도 종종 일어나지만 필은 스마트폰을 통해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제시의 거친 입담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짝사랑하던 여성에게 고백할 용기를 주고, 일어나지도 않을 일 때문에 지레 겁부터 먹는 우려 또한 종식시킨다. 자신감은 상승하고 타인관의 관계도 진척된다. 네모난창을 나와 세상을 보았더니 엄청나게 기대되는 일들이 필을 기다리고 있다. 진짜 세상은 스마트폰 세상(가짜)보다 훨씬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영화 <하이, 젝시>는 <그녀>의 코믹 버전 혹은 호러 버전 같다. 코믹 버전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시종일관 젝시의 손아귀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는 필이 황당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모든 세상은 폰과 연결된 탓에 새 폰을 사도 젝시와 이별할 수 없다. 인공지능의 장악력은 <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의 '할(HAL)' 뺨칠 공포감을 조성한다.
 
 영화 <하이, 젝시> 스틸컷

영화 <하이, 젝시> 스틸컷 ⓒ 씨나몬(주)홈초이스

 
스마트폰 과의존, 인공지능의 폐해, '스몸비'(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며 길을 걷는 사람을 가리키는 신조어) 사고, 개인 사진 유출 등 기술의 발달이 불러올 부정적인 측면은 잠시 접어둔다면 즐길 수 있다. B급 코미디가 갖출 수 있는 미덕과 로맨틱 코미디의 유쾌함(?)이 적절히 담겨 있는 영화다. 오직 재미만을 위해 즐길 수 있는 팝콘무비로 손색없다. 황석희 번역가의 찰진 번역은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소다. 다만 미국식 성인 유머가 눈살을 찌푸리게 할지도 모른다. 화장실 유머와 B급 개그는 물론 15세 관람가가 맞나 싶을 정도의 표현 수위, 욕설 등도 한 몫한다.
하이 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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