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이번 겨울을 뜨겁게 달궜던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가 최근 막을 내렸다. 프로야구 비시즌에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를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다루었던 <스토브리그>.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박진감 있고 재미있었지만, 너무나 많은 사건이 벌어져 과연 16부작으로 마무리 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도 했었다. 하지만 마지막 회 마무리는 깔끔했다.

그 깔끔한 마무리의 일등공신은 백승수 단장(남궁민)이 아닌 재송그룹 권경민 상무(오정세)였다. '스토브리그' 내내 백 단장을 괴롭혔던 경민은 마지막 회 백 단장이 추진하는 드림즈 매각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그리고 늘 호감을 사기 위해 애썼던 재송그룹 회장(전국환)을 찾아가 마음 속에 품어둔 말들을 쏟아낸다. 경민은 어떻게 용기를 내어 변화할 수 있었을까?

열등감으로 똘똘 뭉쳤던 권경민

경민은 등장할 때부터 오만방자했다. 드림즈 구단의 사장실을 마치 자기 사무실인양 수시로 드나들고 사장의 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지시를 해댄다.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을 대할 때면 늘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한다. 반면 모그룹인 재송그룹 권 회장 앞에서는 지나칠 만큼 깍듯하다. 회장이 시키는 일이라면 무조건 '예스'고 "한번만 믿고 맡겨주십시오"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재송그룹 화장실에서는 늘 절도 있는 자세로 서 있고, 예의바르게 인사한다.

11회에 사사건건 드림즈를 방해하는 권경민에게 백 단장이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물었을 때 경민은 아주 당당하게 이렇게 답한다. "이래도 되니까. 그냥 나처럼 해. 위에 들이받는 것보다는 아랫사람 찍어 누르는 게 편하니까."

경민의 이런 태도는 개인심리학을 주창한 심리학자 아들러가 말한 '개인적 열등감'을 가진 사람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아들러는 사람은 누구나 열등감을 가지고 있고 우월을 추구하려는 성향을 타고난다고 했다. 그는 열등감을 생물학적 열등감, 실존적 열등감, 개인적 열등감으로 구분했는데 이 중 생물학적 열등감(생존을 위해 집단을 형성하고자 하는데 바탕을 둠)과 실존적 열등감(인간의 한계를 인지하는 데서 오는 열등감)은 사회적 관심을 증진시키고 개인의 성장을 돕는 유익한 열등감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개인적 열등감'은 심리적 문제의 원인이 된다. '개인적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타인이 자신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고 이를 상쇄하기 위해 권력과 성공을 지나치게 추구하게 된다. 이는 '열등감 콤플렉스'로 이어져 약자에게 군림하고, 강자에게 아첨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아들러 학파는 설명한다.

아버지가 형이 회장으로 있는 재송그룹에 충성했을 땐 부유했으나 그렇지 않았을 땐 궁핍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경민. 그의 마음속엔 권력과 부가 없을 땐 무가치하다는 열등감이 쌓였을 것이다. 그리고 경민은 권력과 부를 추구함으로써 이를 극복하려 한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의 다른 욕구들은 돌보지 않고 오직 힘만을 추구하는 이런 태도는 오히려 공허하게 만들 뿐이다. 이 공허함은 열등감을 더욱 부추기고 다시금 무자비하게 권력을 추구하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만든다.
 
 <스토브리그> 권경민(오정세)는 자신의 열등감을 권력과 부를 추구함으로써 보상하려 한다.

<스토브리그> 권경민(오정세)는 자신의 열등감을 권력과 부를 추구함으로써 보상하려 한다. ⓒ SBS

 
백 단장이 경민에게 던진 메시지

아들러 학파는 이런 '개인적 열등감'에 빠진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는 '평등한 관계' 속에서 '사회적 관심'을 주관적으로 경험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평등한 관계'란 말 그대로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대하는 태도를, '사회적 관심'이란 타인과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감정인 동시에 공동체와 타인과 협력함으로써 발전한다는 느낌을 의미한다.

드라마에서 백 단장은 경민에게 이런 조건들을 제공한다. 우선 백 단장은 경민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태도로 대한다. 이전까지 경민의 대인관계에 '평등'은 없었다. 윗사람들은 경민을 함부로 대했고, 아랫사람들은 경민의 눈치를 봤다. 이런 경민에게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서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백 단장의 태도는 '평등한 관계' 경험이었을 것이다. 경민은 이런 백 단장에게 매번 "싸가지 없다"고 나무라지만, 아마도 백 단장을 통해 자신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봤을 것이다.

또한 백 단장은 '사회적 관심'의 모범을 보인다. 자신의 이익보다는 구단의 앞날을 먼저 생각하고, 심지어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까지 수긍하며 대의를 위해 일하는 백 단장. 경민은 이런 백 단장을 경멸하듯 대한다. 하지만 백 단장이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점차 경민을 각성시킨다. 10회 경민이 백 단장을 포장마차로 불러내었을 때 이미 그는 백 단장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후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말을 잘 들으면 부당한 일을 계속 시킵니다"라는 백단장의 말에 뜨끔한다. 그리고 10회 마지막 장면, 자신이 억눌러 놓았던 분노를 사촌 동생 경준(홍인, 재송그룹 회장 친아들)에게 터뜨린다. 물론, 경민은 곧바로 후회하고 다음 회 권 회장 앞에 무릎을 꿇는다. 하지만, 10회 벌어진 사건들은 경민에게 변화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용기'를 낸 권경민
 
 자신을 대등하게 대하며,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백단장(남궁민)의 태도는 경민(오정세)에게 변화의 계기가 되어준다.

자신을 대등하게 대하며,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백단장(남궁민)의 태도는 경민(오정세)에게 변화의 계기가 되어준다. ⓒ SBS

  
백단장이 제공한 '평등한 관계' 경험, 그리고 '사회적 관심'에 대한 태도는 경민을 흔든다. 그러자 아버지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드림즈의 사장이었지만 구단의 궂은 일에 앞장섰던 아버지, 순수하게 야구를 좋아했던 자신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간다. 열등감 속에 파묻어 놓았던 자신의 진실한 내면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드라마 후반부, 경민이 자주 꺼내보는 서랍 속 야구공은 경민의 순수한 열정을 상징한다. 하지만 경민에게 평생을 추구해 왔던 권력과 부에 관한 욕망을 내려놓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경민은 이 야구공을 버리고 내면의 울림을 외면하려 한다.

그런데 경민이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겼던 장우석 차장(김기무)은 이 공을 다시 찾아 경민에게 가져다 준다. 그리고는 이렇게 요청한다. "스카우트 팀으로 다시 보내달라"고. "망치는 일 말고 제대로 일하고 싶다"면서 말이다. 자신의 편에 있는 줄 알았던 우석의 변화된 태도는 경민에겐 또 하나의 울림이었을 것이다. 이제 경민은 진짜 용기를 낸다. 용기는 아들러학파에서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핵심적 기제다.

마지막회에서 경민은 회장을 찾아가 백 단장에게 구단을 매각할 시간을 주라고 설득하고, 밤을 새워가며 백 단장을 돕는다. 처음으로 구단이라는 공동체를 위해 일을 한다. 즉 아들러가 말한 '사회적 관심'을 실천한 것이다. 아마도 이 경험은 경민에게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에 경민은 더욱 용기를 낸다. 늘 굽신거리기만 했던 권 회장에게 "난 그 자존심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싶어서, 독하게 공부도 하고 등록금도 빌리고 싶어서, 아버지랑 같이 무릎까지 꿇었지 뭡니까. 아버지가 그 때 알았던 걸 이제 알았습니다"라며 빚을 청산하고 재송그룹과의 연을 끊는다. 권력과 부가 아닌, 자신의 자존감을 지켜낸다. 이제 경민은 궁핍했던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받아들이며 '사회적 관심'을 실천하는 용기를 가진 인물로 거듭난 것이다.

백 단장으로부터 시작한 '드림즈'의 스토브리그는 정말 특별했다. 싸우기만 했던 코칭 스태프들은 화합했고, '양아치'같았던 선수들은 예의를 갖췄으며,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은 자신감을 얻었다. 드림즈 스태프들의 신뢰 덕에 백 단장의 휴대폰엔 다시 사람의 이름들이 저장되기 시작했다. 모두가 따뜻하고도 소중한 성과다.하지만 그 중 최고의 수혜자는 권경민 사장 (전 재송그룹 상무) 아니었을까? 평생토록 자신을 괴롭혀온, '개인적 열등감'에서 벗어나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진실된 삶을 살게 됐으니 말이다.

드라마는 드림즈의 우승 여부를 알려주지 않고 끝을 맺었다. 하지만 드라마 속 인물들이 성장한 모습들, 특히 권경민 사장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드림즈의 우승 못지않게 뿌듯함을 안겼다. 이 뿌듯함을 우리 각자가 품은 열등감을 극복하는 용기로 이어갈 수 있기를!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