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전주 KCC 이지스의 경기. 1쿼터 KCC 라건아(왼쪽 두 번째)가 전자랜드 선수들의 압박 수비에 고전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전주 KCC 이지스의 경기. 1쿼터 KCC 라건아(왼쪽 두 번째)가 전자랜드 선수들의 압박 수비에 고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금은 고인이 된 야구해설가 하일성씨는 생전에 '이래서, 야구 몰라요'라는 어록을 남겼다. 하씨의 이 말은 설사 자신의 예측이나 기대가 완전히 빗나가는 무안한 상황이 오더라도 모든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만능 어록'으로 통했다. 

슈퍼팀을 기대했다가 정작 실패팀이 될 위기에 놓인 프로농구 전주 KCC에 적용하면 '이래서 농구 몰라요'라는 이야기가 절로 나올 법하다. 물론 안 좋은 의미에서다. 올시즌 그야말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던 KCC의 롤러코스터 행보가 결국 '새드 엔딩'으로 끝날 위기에 봉착했다. KCC의 기둥 라건아가 무릎 내측인대 파열로 사실상 시즌 아웃이 되면서 팀에 비상이 걸렸다. 

라건아는 지난 13일 안양 KGC인삼공사와의 경기도중 왼쪽 무릎 부상으로 통증을 호소하며 코트에서 이탈했다. 정밀 검진 결과 재활과 수술에 최소 2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중상이다. 사실상 플레이오프 기간까지도 복귀가 어렵다. KCC로서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다.

KCC는 작년 11월 울산 현대모비스와 2대4 대형 트레이드로 리온 윌리엄스, 박지훈, 김국찬, 김세창을 내주고 국가대표 라건아와 이대성을 영입했다. KCC는 이로써 송교창, 이정현과 함께 KBL판 '판타스틱4'를 결성했다. 일각에서는 '슈퍼팀'이라는 기대와 함께 우승후보로 급부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슈퍼팀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 트레이드 직전까지 8승 5패를 기록했던 KCC는 트레이드 이후로는 14승 14패, 겨우 5할승률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현재 순위는 4위로 7위 모비스와 불과 3.5게임차에 지나지 않아 아직 6강진출도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라건아와 이대성이 기존 선수들과 팀에 녹아드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KCC는 라운드별로 부진과 반등을 오가는 기복 심한 행보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KCC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것은 조직력만 가다듬으면 단기전인 플레이오프에서는 무서운 전력으로 탈바꿈할수 있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KCC는 2008-09시즌과 2010-11시즌에도 정규리그 성적은 3위에 그쳤으나 플레이오프에서 상위팀들을 압도하며 우승을 차지한 전력이 있었다.

그러나 부상이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이미 이대성이 시즌 초반 부상으로 한달 가까이 자리를 비웠다가 겨우 돌아왔건만 이번에는 시즌 막바지에 하필이면 팀내에서 대체불가인 라건아가 큰 부상을 당했다. 라건아는 이번 시즌 평균 31분을 출전하며 20.2득점(4위) 12.5리바운드(1위)로 팀을 이끌고 있었다. 라건아의 부상은 사실상 KCC의 슈퍼팀 우승 프로젝트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절대 위기다.

라건아의 공백이 더 치명적인 또 다른 이유는 그가 귀화 선수라서 특별 규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라건아를 보유한 팀은 외국인선수 두 명에게 최대 42만 달러(기존 70만 달러), 한 명에게 최대 35만 달러(기존 50만 달러) 연봉만을 지급할 수 있다. 라건아의 존재 때문에 사실상 한 팀에 외국인 선수를 3명(라건아 포함)까지 활용할 수 있는 만큼 전력 불균형을 우려한 조치였다.

라건아가 부상당할 경우 오히려 부메랑이 될수도 있는 조항이었지만 지금까지는 라건아가 큰 부상을 당한 경력이 거의 없을만큼 튼튼한 내구성을 보여왔기 때문에 모비스 시절까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이적 첫 시즌에 경기중 상대 선수와의 충돌로 장기 부상을 당했으니 KCC로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다.

현재 KCC는 외국인 선수 찰스 로드 한 명만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에게 지급하는 연봉만 35만 달러에 이른다. 로드는 올시즌 평균 11분 40초, 5.4득점 4리바운드로 부진에 시달리고 있어서 라건아의 공백을 메우기를 기대하기에는 무리다. 로드를 잔류시키자니 다른 외국인 선수에게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이 고작 7만 달러 뿐이고, 로드를 퇴출하고 아예 두 명을 새롭게 영입한다고해도 수준급 외국인 선수를 영입한다는 보장도 없는데다가 조직력을 아예 처음부터 다시 다져야하는 상황이다. 외국인 선수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KBL에서는 국내 선수진이 아무리 화려하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KCC로서는 올시즌에만 '울다 웃다'를 반복하는 게 벌써 몇 번째인지 알 수 없다. KCC는 2019-2020 시즌을 앞두고 유독 큰 폭의 변화가 많았다. 승부조작 파문으로 4년간 농구계를 떠나있었던 전창진 감독이 논란 속에 사령탑에 취임하며 농구계에 복귀했고, 구단의 레전드인 하승진(은퇴)과 전태풍(서울 SK)이 '홀대' 논란 속에 팀을 떠나며 팬들의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리기도 했다.

시즌 초반에는 6강도 힘든 하위권 전력이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젊은 선수들의 성장과 전창진 감독 특유의 모션 오펜스를 앞세워 기대 이상의 호성적을 거두며 선전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대형 트레이드를 통하여 다시 한번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던 것이 혼란의 갈지자 행보를 보인 끝에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돌아갈 위기에 놓였다. 현실적으로 라건아가 건재했더라도 조직력 문제로 우승도전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는데, 라건아마저 없는 KCC는 이제 플레이오프조차 확신하기 어려운 팀이 되어버린다.

농구에서 스타 선수들을 단기간에 한 팀에 끌어모아 많은 기대를 모았던 슈퍼팀 프로젝트가 '용두사미'로 끝난 경우는 드물지 않다. LA 레이커스가 2003-04시즌과 2010년대 초반에 고 코비 브라이언트, 샤킬 오닐, 게리 페이튼, 칼 말론, 드와이트 하워드, 스티브 내쉬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을 끌어모아 우승에 도전했으나 조직력 문제로 엇박자를 드러내며 우승에 실패한 바 있다. 1990년대 중후반 하킴 올라주원과 찰스 바클리가 의기투합한 휴스턴 로케츠는 이미 전성기가 지난 뭉친 주전 선수들의 노쇠화, 포틀랜드 트레이블레이져스는 개인기량은 우수하지만 사고뭉치 일색이었던 선수들의 멘탈 관리 실패로 무너졌다.

KBL에서도 서장훈과 현주엽이 뭉친 98-99시즌 SK, 이승준과 테렌스 레더, 이상민 등 호화멤버들을 끌어모은 2009-10시즌 서울 삼성 등이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정작 플레이오프 진출도 실패하거나 6강에 간신히 턱걸이하는 등 실망스러운 성적을 남긴 바 있다. 농구에서 이름값이 쟁쟁한 호화멤버들만 데리고 있으면 눈감고도 우승할 것 같지만, 조직력과 부상, 천적관계 등 다양한 변수를 극복하고 팀을 정상까지 이끄는 여정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물론 아직 이 순간이 KCC의 끝이 아닐 수도 있다. 위기의 KCC가 다시 한번 극적인 반전을 이뤄내며 긍정적인 의미에서 '농구 몰라요'를 외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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