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테러리스트> 포스터

영화 <더 테러리스트> 포스터 ⓒ (주)스톰픽쳐스 코리아


징역 20년을 구형 받은 카디르(메멧 오즈구르 분)는 형기 만료를 2년 앞두고 테러 조직을 찾는 정보원 임무를 맡는 조건으로 가석방된다. 출소 후 카디르는 막냇동생 아흐메트(베르카이 아테스 분)와 재회한다. 그런데 둘째 동생인 벨리는 오래전에 사라졌고 아흐메트는 카디르를 낯설게 대한다.

카디르는 테러 조직의 폭발물 제조가 의심되는 물건을 찾기 위해 매일 마을의 쓰레기통을 뒤진다. 아흐메트는 떠돌이 개들을 없애는 일을 하면서 산다. 그는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 형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럽고 도망간 아내와 아이들이 그리워 죽음까지 생각한다. 그런 찰나에 우연히 떠돌이 개 조니를 만나 애정을 쏟는다. 카디르는 자신을 피해 다니는 아흐메트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터키 영화 <더 테러리스트>는 테러리스트와 전쟁이 계속되는 도시, 점점 심각해지는 국가의 탄압과 감시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인물들을 소재로 담았다. 연출을 맡은 예민 엘퍼 감독은 "현대 사회에 만연한 수많은 폭력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초안을 구성했는데, 당시 터키에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민족 분리 운동 등이 빈번했다"고 부연한다.
 
 영화 <더 테러리스트>의 한 장면

영화 <더 테러리스트>의 한 장면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더 테러리스트>는 다른 영화와 다른 몇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모호한 시간과 배경이다. 각본은 현실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영화 속엔 실제 사건이나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구체적인 시간과 배경도 표시하지 않았다. 그저 터키, 이스탄불 정도만 나온다.

예민 엘퍼 감독은 "허구적으로 다가갈 수도 있지만, 영화 속 사건들은 과거, 현재, 미래가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다룬 시간과 배경을 통해 영화는 어느 시기, 어느 장소에서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는, 혹은 일어날 이야기란 보편성을 얻는다. 이것이 터키만의 이야기가 아니란 소리다.

둘째,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불확실하다. <더 테러리스트>는 어느 순간부터 카디르 또는 아흐메트가 꾸는 악몽과 머릿속 망상을 겹쳐놓아 극의 현실성을 무너뜨린다. 관객은 무엇이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후반으로 갈수록 카디르와 아흐메트의 집착과 분열은 점차 심해진다. 바꾸어 말하면 '혼란스러운 이야기' 내지 '광기로 가득한 인물'이라기 보단 '혼란스러운', '광기로 가득한'을 경험한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영화 <더 테러리스트>의 한 장면

영화 <더 테러리스트>의 한 장면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셋째, 도시는 심리와 정서가 투영된 공간으로 기능한다. <더 테러리스트>는 정치적 혼란이 가득한 터키의 어느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주변으로부터 봉쇄된 판자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테러리스트들은 국가 권력에 대항하여 싸우지만, 형세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영화는 이런 마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몸부림치는 형제의 이야기를 통해 한 사회의 시스템이 사람들에게 권위와 폭력으로 작용하여 내면을 변하게 하는지를 그린다.

정부는 테러를 막는다는 목적 아래 개인의 권리를 마음껏 짓밟는다. 이것은 카디르와 아흐메트의 일을 통해 묘사된다. 카디르는 매일 쓰레기통을 뒤지고 주위를 감시한 후 그 결과를 보고서를 작성하여 상부에 알린다. 그는 권위와 폭력의 명령을 충실히 따른다. 교도소를 나왔으나 지내는 마을, 나아가 국가는 거대한 감옥과 다름이 없는 상황이다. 어느 날 밤, 마을의 모든 쓰레기통이 불타는 장면은 마을 사람들의 저항 심리를 묘사한 대목이다.

사랑과 믿음으로 지탱하는 가족과 공동체는 해체되었다. 국가는 서로를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의심하길 강요할 따름이다. 카디르가 아흐메트의 사랑을 얻기 위한 노력, 잃어버린 둘째 동생 벨리에 대한 부러움, 여인 메랄(툴린 오젠 분)을 향한 질투로 정신 분열을 일으킨다. 그는 감시 사회 속에서 끝없는 의심이 낳는 편집증을 극대화한 인물이자 국가 권력의 억압이 잉태한 비극을 상징한다.
 
 영화 <더 테러리스트>의 한 장면

영화 <더 테러리스트>의 한 장면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아흐메트는 마을을 떠도는 개를 죽이는 일을 한다. 그가 죽이는 개는 테러리스트 내지 국가 권력에 저항한 인물을 뜻한다. 국가 권력이 유린하는 자유, 가치, 권리이기도 하다. 아흐메트는 떠돌이 개 조니를 집에 들여 정을 붙인다. 개를 잃게 될까 두려움에 떨다 피해망상에 이르게 되는 아흐메트의 모습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국가 권력에 맞서는 인물을 파멸의 형태로 그린 형상이다.

매일 밤 어디선가 터지는 폭탄, 뒤쫓는 듯한 누군가의 그림자, 어디선가 나타난 군인들의 모습, 안개가 자욱한 풍경 등은 인물들의 불안감을 더한다. 특히 영화 내내 환청처럼 들리는 사이렌 소리와 노크 소리는 카디르와 아흐메트를 구석까지 몰아붙이는 효과를 준다. 빛과 어둠을 활용한 연출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아흐메트의 숨죽인 얼굴과 카디르의 의심스러운 표정을 비출 때 조명은 영화의 불안과 광기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영화 <더 테러리스트>의 한 장면

영화 <더 테러리스트>의 한 장면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더 테러리스트>의 터키 원제는 < Abluka >로 "봉쇄"란 뜻을 지닌다. 마을 바깥의 국가 권력은 테러리스트를 없애기 위해 공권력을 사용하여 마을을 봉쇄한다. '봉쇄'는 다른 말로 바꾸면 '경계'가 된다. 어느 선을 경계선으로 하여 지역과 지역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경계는 곧 분열이다.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은 분열되었다. 분열의 범위를 넓힌다면 민족, 계급, 종교로 볼 수 있다. 오늘날 세계는 이런 분열에 시달리고 있다.

<더 테러리스트>의 영어 제목 < Frenzy >로 "광란"을 의미한다. 이것은 흥미로운 제목이다.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는 카디르와 아흐메트의 광란을 말하는가, 아니면 감시와 폭력에 중독된 국가 권력의 광란을 뜻하는가?

<더 테러리스트>는 "이 시대의 '봉쇄'와 '광란'은 무엇인가?"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한 가지를 세계 영화계에 각인시켰다. <우작>(2002),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2011), <윈터 슬립>(2014)의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을 잇는 터키의 다음 감독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말이다. 제7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작품상, 감독상 수상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