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디> 스틸컷

영화 <주디> 스틸컷 ⓒ (주)퍼스트런

 
어떤 영화는 영화 자체가 그 배우로 보이는 까닭에 도무지 떼어놓고 말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배우 르네 젤위거는 영화 <주디>를 통해 또 한 번 자신의 연기 필모그래피를 갱신했다. 기구하고 슬픈 삶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르네 젤위거의 연기 변신이다. 주디 갈랜드가 살아 돌아온 듯 완벽했다. 영화<시카고>에서 보여준 노래 실력은 물론 외모와 말투, 표정까지 메소드 연기를 펼친다. <주디>로 르네 젤위거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 <주디>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 '주디 갈랜드'의 전기 영화다. 전기 영화가 주는 전형적인 시간 구성을 깬 주디의 끝과 시작을 담았다. 어릴 적부터 철저히 스타로 만들어진 주디는 그 나이에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아왔다. 한마디로 영화 같은 삶을 살다간 일생은 40대 요절이라는 믿을 수 없는 사실과 맞닿는다.
 
 영화 <주디> 스틸컷

영화 <주디> 스틸컷 ⓒ (주)퍼스트런

 
오프닝에 등장하는 어린 주디와 반강제적인 세뇌는 앞으로 펼쳐질 주디의 인생을 대변한다. 평범한 사람과 특별한 사람을 나누고 어떤 사람이 될 거냐고 묻는 장면은 소름 끼치듯 잔인하다. 대중의 관심과 사랑에 이미 중독된 주디는 새장 밖을 나가지 못하고 갇히게 된다. '소박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으면 나가도 좋지만 넌 그들과 다른 세상에 있다'는 말은 설득이라기보다 공공연한 협박이다. 사람이 어찌 되든 상관없이, 일종의 상품으로 취급한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의 폐해다. 태평양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너도 그저 그런 빗물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냐고 되묻는다. 그렇게 만인이 원하는 도로시를 위해 주디는 목줄을 바투 잡았다.

미국의 친근한 10대 소녀, 불경기에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어야 한다는 믿음은 생각보다 위험했다. 철저히 도로시가 되기 위해 주디의 모습을 지워야 했던 업계의 희생자다. 수면욕, 식욕을 완벽히 저당 잡히고 영화 공장 할리우드의 시스템에 끼워 맞춘 스케줄은 살인적이었다. 몸부터 영혼까지 도로시 자체가 되어야만 했다. 반짝이는 별이 되기 위해 마음속의 별을 잃어버린 성장과정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온갖 불안 증세와 불면증으로 약을 달고 사는 것은 물론, 술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가까스로 찾아온 기회마저 박탈될 위기에 처한다.
 
 영화 <주디> 스틸컷

영화 <주디> 스틸컷 ⓒ (주)퍼스트런

 
사람들은 쉽게 열광하고 쉽게 잊는다. 하지만 화려한 무대와 인기를 경험한 왕년의 스타는 비루한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 간극의 차이만큼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2살 때부터 노래를 부르던 바쁜 삶은 세월과 함께 퇴색한다. 중년이 된 주디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졌고, 아이들과 호텔을 전전하며 지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무대 위의 스타만 보고 마음대로 상상할 뿐 평범한 인간 주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매니저도 없이 빚만 잔뜩 진 주디에게 누가 기대를 할까. 자신과 다르면 비난하기 바쁜 통에 상처받은 마음을 수습하기란 어려웠다.

4번의 결혼 실패와 우울증, 무대공포증까지 겹쳐 재기하기 쉽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싶은 마음은 주디를 영국으로 이끈다. 탐탁지는 않은 제안이나 빚도 갚고 아이들을 데리고 와야 한다는 절박함은 다시 무대 위로 불러냈다. 그러나 불안감이 엄습했다. 항상 피곤하고 몽롱했다. 어릴 때부터 중독된 약들은 내성이 생겨 들어먹지도 않았다. 그럴수록 더욱 많은 양을 복용하고 술에 의지했다. 영국에 와서도 제대로 된 무대를 선보이지 못할 때가 많았고 힘겨운 날들이 계속된다.
 
 영화 <주디> 스틸컷

영화 <주디> 스틸컷 ⓒ (주)퍼스트런

 
주디 갈랜드는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완벽한 엔터테이너로 살았던 전설적인 스타였다. 그녀가 무대에서 부르는 '오버 더 레인보우'가 이토록 슬픈 노래였나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 노래를 들을 때 희망을 떠올릴 수 없을 것 같다. 노래 가사와는 다르게 구슬픈 노랫가락이 안타까운 삶과 오버랩 된다. 주디는 무지개 넘어 희망을 노래하는 가사와는 판이한 굴곡진 삶을 온몸으로 노래한다. 쇼 엔터테인먼트의 희생자기도 했지만 누구보다도 쇼 엔터테인먼트의 적임자이기도 했다. 화려한 무대매너와 쇼맨십, 가창력까지 갖춘 만능 엔터테이너였기 때문이다.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희극적인 엔터테이너의 최후는 영화를 본 각자의 마음속에 다양한 상념들이 들어설 것이다. 화려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이면에는 아동노동착취, 인권침해 등 어두운 상황도 분명히 존재한다. 어쩌면 21세기 한국 아이돌 시스템의 명과 암도 이와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면 과분할 걸까. 누구를 얼마나 사랑하는 가보다 얼마나 사랑받는지가 중요했던 사람, 객석을 향해 잊지 말라달라고 말하는 약속처럼 영화로 남아 영원히 각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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