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작은 아씨들>

영화 <작은 아씨들> ⓒ 소니픽쳐스

 
*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음

미국 뉴잉글랜드의 한 마을, 제각기 다른 꿈을 꾸는 네 자매가 살아간다. 배우가 되고 싶은 '메그(엠마 왓슨)', 작가를 꿈꾸는 '조(시얼샤 로넌)', 음악가의 길을 가려는 '베스(엘리자 스캔런)', 그리고 화가 지망생 '에이미(플로렌스 퓨)'. 네 자매는 서로 다투고 싸우기도 하지만 '엄마(로라 던)'를 도우며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조는 한 연회에서 우연히 이웃집에 사는 소년 '로리(티모시 샬라메)'를 알게 되고 그는 곧 네 자매 모두의 친구가 된다. 그러나 행복하고 즐거운 유년시절은 곧 끝나고, 7년이 지난 후 어른이 된 그들은 사랑과 꿈을 둘러싼 현실의 벽을 마주한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작은 아씨들>은 인상적인 문장을 하나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나는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썼다." 

원작자 루이자 메이 올컷이 남긴 이 문장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작은 아씨들>의 스토리, 구성과 연출 등 영화의 모든 부분에는 이 문장이 스며들어 있다. 

<작은 아씨들>은 서로 다른 꿈을 지니고 각각의 개성을 자랑하는 네 자매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여성을 제약하는 현실의 벽을 넘어서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묘사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조'가 어떻게 시련을 밑거름으로 삼아 당당히 작가로 거듭나는지가 이 스토리의 핵심이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면서 그녀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시점만 교차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주로 행복하고 희망찬 순간을 중심으로 과거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반대로 현재 시점에서는 대부분 불행하고 어두운 순간만을 보여주면서 인물들의 불행과 행복을 극적으로 대조한다. 이를 통해 과거의 행복은 더 아름답고, 현실의 불행은 더 날카롭고 고통스럽게 묘사된다. 
 
 영화 <작은 아씨들>

영화 <작은 아씨들> ⓒ 소니픽쳐스

 
이러한 스토리텔링 방식은 오프닝에 등장한 루이자의 문장과 일맥상통한다.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썼다"는 말은 곧 '불행했기에 행복한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고, 바꿔 말해 '불행했기에 행복할 수 있었고, 불행을 경험할 때 행복이 더 뜻깊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 즉 불행과 행복을 오가는 전개 방식은 원작자가 남긴 메시지를 고스란히 품어낸 모범적인 스토리텔링인 셈이다.

대조와 대비의 스토리텔링은 영화 속 조명을 통해 더 확실히 전달된다. 작중 조명은 과거와 현재, 행복과 불행의 대립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낸다. 과거의 사건들은 오렌지 느낌의 밝은 조명 아래에서 묘사되어 밝고 따뜻하며 훈훈한 이미지로 포장된다. 반면에 현재 시점에서 네 자매가 겪는 어려움과 시련은 푸른빛의 조명이 비추며, 이러한 조명은 건조하고 차가우며 꾸밈없는 이미지를 만든다. 

시각적 이미지의 대립은 각 에피소드마다 미처 사건의 전말이 다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관객들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또 벌어질지 직관적으로 알려준다. 과거의 네 자매, 현재의 조와 베스가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시다. 이 장면들 속 조명은 같은 해변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극명하게 다른 분위기를 전해주며, 이후 전개를 암시한다. 

영리한 편집도 도움을 준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카메라에 담긴 구도가 혹은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가장 비슷한 순간을 기점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함으로, 이어지는 스토리의 괴리감과 비극성을 가장 강렬하게 제시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같아 보이는 한 에피소드의 시작이 전혀 다른 결말로 마무리되는 과정을 곧바로 대조시키면서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의 조가 베스 병간호를 하던 중 잠깐 잠에 들었다가 깨는 순간은 영화의 스토리텔링, 조명, 그리고 편집이 가장 잘 맞아떨어진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베스의 침대 옆에서 잠깐 잠에 든 조가 일어나는 순간은 과거와 현재 시점 모두 동일한 구도로 카메라에 담기고 과거 시점의 이야기가 펼쳐진 후 바로 이어서 현재의 이야기가 제시된다. 이때 상반된 조명이 만들어 낸 이미지는 조가 잠에서 깬 이후 전개될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이 장면은 조가 결혼을 하지 않고 작가가 되려고, 또한 진짜 자신만의 글을 쓰기로 결심하며 성장하게 되는 계기로써 스토리 전개 상 가장 결정적인 분기점의 역할도 한다. 
 
 영화 <작은 아씨들>

영화 <작은 아씨들> ⓒ 소니픽쳐스

 
이처럼 상반된 이미지를 활용해 의미를 만들어내려면 행복과 불행의 기준점을 찾아야만 한다. 그래야 영화가 의도하는 불행과 행복의 대조가 명확해진다. 또한 인물들이 겪는 불행과 행복은 단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들의 것도 되어야 한다. 그때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가 주는 울림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작은 아씨들>은 여성들을 제약하는 시대적 현실과 네 자매가 그 현실을 극복하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위 조건들을 충족시킨다. 

<작은 아씨들>의 배경은 미국의 남북전쟁 전후로, 여성들의 이상적인 삶이 결혼해서 가정을 유지하는 것에 국한되어 있던 시기다. 여성이 돈을 벌려면 배우가 되거나 사창가로 가야 하기 때문에 결혼을 잘해야 한다는 '대고모(메릴 스트립)'의 말은 당시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에 반해 네 자매는 결혼을 하든 안 하든 각자가 꿈꾸는 방식으로 여성의 한계를 깰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7년이 흐른 후 그들은 이내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가정교사 존과의 결혼을 선택한 메그는 가난한 삶을 살아간다. 뉴욕으로 떠난 조의 글은 쉽게 인정받지 못한다. 유학을 떠나는 에이미는 자신이 생각한 만큼 그림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조와 에이미는 본인이 선택한 사랑과 결혼이 옳은 선택인지 혼란스러워한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그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도, 혹은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경력을 쌓아가더라도 모두 응원을 보낸다. 결혼을 말리는 조에게 너의 꿈이 나의 꿈과 다를 수 있다고 말하는 메그의 대사처럼, 서로 다른 선택 안에서 각각 얻을 수 있는 행복을 모두 보여주며 모든 여성들의 선택 그 자체를 존중한다. 그리고 현재에도 많은 여성들이 네 자매처럼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불행, 좌절, 시련, 극복, 선택은 영화를 보는 관객 자신의 모습과도 쉽게 동일시된다.

<작은 아씨들>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과 각색상 등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서 의상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숱한 시상식들에서 여러 부문에 걸쳐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직접 만난 <작은 아씨들>은 자신에게 쏟아진 호평이 결코 과장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대조의 스토리텔링과 편집, 그리고 시각적인 이미지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조명을 활용한 연출은 "나는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썼다"는 문장에 담긴 원작자의 메시지를 적절히 작품 내에서 환기시켜준다. 관객들로 하여금 150여 년 전 네 자매의 이야기를, 자신의 행복과 불행에 일치시키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도 인상적이다. 여기에 더해 당당한 표정과 주관이 매력적인 시얼샤 로넌, 시간에 따라 변화한 인물에 완전히 녹아든 플로렌스 퓨, 그리고 능청스러운 매력을 뽐내는 티모시 샬라메 등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겸비한 영화, <작은 아씨들>이다. 
 
 영화 <작은 아씨들>

영화 <작은 아씨들> ⓒ 소니픽쳐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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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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