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오스카의 주인공은 단연 <기생충>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최고의 영예인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 국제영화상과 각본상을 한 손에 거머쥐었다. 92년의 아카데미 역사에서 한국영화가 수상을 한 것도 처음이었고,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 역시 처음이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를 보면서 공부를 한 봉준호 감독이 마틴 스코세이지의 박수를 받고, 또 스코세이지에게 영광을 돌린 것은 이 시상식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제인 폰다가 기생충을 수상작으로 호명할 때, 흘러나온 곡은 '믿음의 벨트(The Belt of Faith)'였다. 바로크 양식을 차용한 정재일의 음악은 <기생충>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상승과 하강'을 표현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했다. <기생충>이 그랬듯, 좋은 영화는 대개 음악과 함께 기억되기 마련이다.
 
 영화 <조커>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앨범.

영화 <조커>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앨범. ⓒ 워터타워뮤직

 
'아서 플렉'의 세계를 완성한 것은 음악.

음악상은 영화 <조커>의 음악 감독 힐뒤르 그뷔드나도티르에게 돌아갔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불안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데에 공헌했다. 아이슬란드 출신인 힐뒤르는 드니 빌뇌브의 <프리즈너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알레한드로 이냐리투의 <레버넌트> 등 굵직한 작품들의 음악에서 첼로를 연주했으며, HBO 드라마 '체르노빌'의 음악을 총괄하기도 했다.

힐뒤르는 여성 음악감독으로서 수상을 하게 된 감동을 표현하기도 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역사상 최초로 시상식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여성에게 맡겼다.) <결혼 이야기>의 담백한 서사를 뒷받침한 랜디 뉴먼의 음악 역시 훌륭했다. 랜디 뉴먼은 '주제가상(토이스토리 4)'과 '음악상(결혼 이야기)'에 함께 이름을 올리는 위업을 달성했다. 거장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맡은 <작은 아씨들>의 오리지널 스코어 역시 집중해서 들어볼 가치가 있다.
 
주제가상의 경우, 엘튼 존의 전기 영화 <로켓맨>의 OST 'I'm Gonna Love Me Again(엘튼 존, 태런 에저튼)에 돌아갔다. 엘튼 존의 전성기를 연상케 하는 로큰롤 음악에, 영원한 동반자 버니 토핀이 가사를 얹었다. 1994년, 라이온킹의 OST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이후 26년 만의 수상이었다.최근 투어 은퇴를 선언한 전설은 직접 시상식 무대에 올라 건재함을 과시하기까지 했다.
 
<겨울왕국2>은 장편 애니메이션 후보에 오르지 못했지만, 이디나 멘젤의 'Into The Unkown'이 최우수 주제가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체면을 살렸다. 시상식에서는 '엘사'의 목소리를 연기하고 노래한 이디나 멘젤은 물론, 덴마크, 일본, 노르웨이, 스페인, 태국 등 총 더빙 버전을 연기한 배우들이 등장해 'Into The Unknown'을 불렀다. 아름다운 허밍의 주인공 오로라(AURORA) 역시 얼굴을 내비쳤다. 70명의 흑인 노예를 구출했던 여성 운동가 해리엇 터브만의 삶을 그린 영화 '해리엇'의 주연 배우 신시아 에리보의 노래 'Stand Up'도 장엄한 울림을 선사했다. 이 노래는 위대한 흑인 여성 운동가에 대한 헌정인 동시에, 여전히 미국 사회에 잔존하고 있는 인종 차별에 울리는 경종이기도 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문을 연 가수 자넬 모네, 그리고 비틀즈의 'Yesterday'를 커버한 빌리 아일리시 등, 여러 공연들로 꾸며졌다. 이 중 <기생충>의 쾌거만큼이나 놀라운 순간이 있었다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 했던 에미넴의 등장이었다. 그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영화 < 8마일 >의 주제가 'Lose yourself'를 부르며 무대 밑에서 등장했다.

그는 2003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제가상 수상자였으나, 정작 아카데미 무대에 오르는 것은 17년만에 이루어졌다. 예기치 못한 슈퍼스타의 등장에 수많은 배우들이 그의 노래를 따라하며 화답했다. 얼굴에 주름이 지고, 수염이 덥수룩해진 모습이었지만 한껏 날이 선 영화 속 래빗의 모습은 다르지 않았다. 그의 랩을 듣고 있으니,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 8 마일 >의 명장면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어떤 순간이든 단숨에 소환할 수 있는 음악의 힘이란 이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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