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엇 때문에 내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걸까?"

교사들의 세계를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담담하게 담아냈던 tvN 드라마 <블랙독>. 주인공 고하늘(서현진)이 첫 회 던졌던 질문이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버스가 전복되는 사고를 겪은 하늘. 하늘은 그 사고에서 자신을 구해준 선생님을 잃는다. 그리고 마음 깊이 위의 질문을 품는다.

아마도 하늘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사범대학에 진학했을 것이며, 교사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분주한 학교현장은 하늘에게 질문을 떠올릴 겨를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기간제 교사임에 자괴감을 느끼게 할 뿐이다. 이에 하늘은 정교사가 되겠다는 목표로 이를 악문다. 여느 드라마라면, 주인공이 각고의 노력 끝에 목표를 달성하며 끝을 맺었을 것이다. 그런데 <블랙독>은 달랐다. 대치고등학교에서 1년을 버틴 하늘이 내린 결론은 '정교사에 연연하지 않겠다'였다. 신기하게도 목표에 대한 집념을 내려놓은 후에 하늘은 임용고사에 합격을 한다.

어떻게 하늘은 모두가 꿈꾸는 안정적인 일자리, 당연한 듯 추구하는 '정규직'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정교사'라는 목표에 매진할 땐 이루어지지 않았던 그녀의 꿈이 왜 연연하지 않았을 때 이루어진 걸까?
 
 일의 의미와 현실적 목표 사이에서 갈등하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려낸 tvN <블랙독>

일의 의미와 현실적 목표 사이에서 갈등하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려낸 tvN <블랙독> ⓒ tvN

정교사, 목표를 향해 달렸던 하늘

기간제 자리이긴 하지만,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대치고등학교에 부임한 하늘. 학기가 시작되기 전 하늘은 텅 빈 교실에서 주먹을 쥔 채 눈물을 흘린다. 아마도 교단에 섰다는 감격과 잘해내겠다는 다짐이 어우러진 눈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학기가 시작되고 하늘이 겪은 학교는 '눈물 속 다짐'을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곳이다. 각종 편 가르기와 줄타기가 만연하고, 각자 자신의 실익을 추구하며 경쟁하는 작은 사회나 다름없다. 게다가 동료들은 기간제 교사임을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드러내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는 정교사와 똑같은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기간제 교사라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려는 하늘에게 동료 기간제 교사는 이렇게 충고한다. "샘 이렇게 열심히 안 하셔도 돼요. 딱 중간. 그 정도만 해도 되지 않겠어요? 어차피 우린 떠날 건데." 다른 정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그 쌤한테 좀 적당히 하라 그래. 우리 다 같이 피곤해지니까"라고 수군거린다. 그러던 중 유일하게 하늘에게 지지를 보냈던 동료 기간제 교사가 그만두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하늘은 이모부가 교무부장으로 있다는 이유로 새겨진 '낙하산'이라는 누명에 '동료의 자리를 꿰찼다'는 오명까지 쓰게 된다.

이런 현실들은 질문에 답을 찾고자 했던 하늘의 마음을 흔들었을 것이다. 이제 하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답을 찾기보단 분명히 보이는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교사 되기'라는 목표에 매진하기로 다짐한다. 때문에 하늘은 4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교무부장이자 삼촌에게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정교사 그거 되려면". 그리고 5회 이카루스 반을 맡으며 이렇게 다짐한다. "이제부턴 이런 거 생각 안 하고 저부터 생각하려구요. 지금 전 제가 더 걱정되고 제가 더 보란 듯이 잘됐음 좋겠어요."

목표와 의미 사이에서 갈등했던 날들

이후 하늘은 교사로서의 사명과 '정교사 되기'라는 목표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입시 실적이 중요한 학교를 위해 이카루스 반을 담당하고, 입시 설명회 등의 학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좋은 성과를 낸다. 각종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 하늘은 6년차 기간제 교사인 지해원(유민규)과 함께 정교사 채용 1순위 후보가 된다.

하지만, 학교 곳곳에서는 성과 위주의 운영에 상처받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최상위권 아이들만을 위한 이카루스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은 '우유테러'를 저지르며 반발한다. 학생 자신의 노력보다는 학부모의 지원과 정보가 더 중요해져 버린 입시풍토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유라(이은샘)의 눈물은 하늘의 마음을 울린다. 학생들이 시험문제에 이의를 제기했던 일명 '바나나 사건'을 겪으며 하늘은 학교의 편의주의적 일처리에 저항하기도 한다.

이렇게 1년을 보낸 하늘이 선택한 것은 "애들한텐 다 똑같은 선생님이에요. 나나 고하늘 쌤이나" 박성순(라미란)의 말이다. 결국 '정교사 되기'보다 '좋은 교사'되기. 즉 교사라는 직업의 의미를 실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같은 일을 겪고도 드라마 속 상당수의 교사들은 여전히 실적과 성과, 자신의 안위를 우선으로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늘은 실질적인 목표보다 의미를 추구하겠다 다짐할 수 있었을까?

답은 하늘의 책상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하늘의 책상엔 자신을 희생하고 하늘을 구했던 고교시절 교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 있었다. 하늘이 정교사라는 목표에 매진하는 동안 이 사진은 카메라에 잘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 후반부로 가면서 이 사진은 다시 화면에 등장한다. 이는 하늘의 시선이 이 사진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다.

아픔 뒤에 더 간절해지는 의미 추구
 
 진학부 부장인 박성순(라미란)과의 대화는 하늘(서현진)이 교사로서 성장하는데 자양분이 되어준다.

진학부 부장인 박성순(라미란)과의 대화는 하늘(서현진)이 교사로서 성장하는데 자양분이 되어준다. ⓒ tvN

  
하늘이 다시금 이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은, 자신의 심리적 외상, 즉 트라우마를 마주한다는 의미다. 자신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교사와 함께 찍은 이 사진은 분명 하늘에게 악몽 같았던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늘은 이 사진을 바라보며 '의미'를 생각했을 것이다.

심리적 외상을 겪은 사람들이 외상에 대처하는 방식은 참 다양하다. 그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때 사람은 어떤 극한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고 했다. 외상을 겪은 사람들의 대처방법을 연구한 심리학자 테일러도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중요한 기제 중 하나가 트라우마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라 했다.

아마도 하늘은 이 사진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 만큼 바빴을 땐 의미를 추구하는 것을 잊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갈등을 겪어내며 교사로서 업무에 익숙해지자 다시 그 날이 떠오른다. 그 날의 기억들은 하늘에게 외상이 남긴 의미가 무엇인지 찾도록 이끈다. 때문에 하늘은 드라마 후반부, 정교사가 되겠다는 목표보다 교사라는 직업이 가진 의미에 더 우선순위를 둘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자 하는 심리적 기제로서의 의미찾기 작업인 것이다. 교사로서의 본질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박성순(라미란)과 같은 선배교사가 좋은 영향을 줬음은 물론이다.

의미를 추구할 때 달성되는 목표

이를 깨달은 하늘은 2년 차 기간제 교사로 일하면서는 교사의 본질에 더욱 충실히 임한다. 상위권 아이들만 지원하려는 학교의 정책에 반발해 '보통'의 아이들을 위해 강의를 열고, 자퇴를 결심한 아이의 미래를  진심으로 응원해준다. 기간제 교사 합격자 명단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사진 찍은 후 미안해 하는 학생에겐 "선생님 그런 거 진짜 신경 안 써"라고 말할 만큼 당당해진다. 그러자 마침내 오랫동안 준비한 꿈이 이루어진다. 정교사가 되고자 열망했던 때에는 매번 고배를 마셨던 임용시험에 합격하게 된 것이다.

'의미'를 추구한 하늘의 임용시험 합격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삶의 의미'를 심리학적 개념으로 연구한 스티거 등에 따르면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의미를 발견할 때 정서적으로 안정되며, 심리적인 안녕감 역시 높아진다. 심리적 안녕감이 높을 때 업무의 효율도 오르고 공부의 성과도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보다 본질적인 의미를 추구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당당해진 하늘은 '정교사 되기'라는 목표에 매진했을 때보다 더 자신 있고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에 임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는 좋은 결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선생님 저는 여전히 즐겁게 그 답을 찾고 있습니다."
 
하늘의 마지막 대사다. 하늘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그 답을 명쾌하게 찾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픈 기억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하늘의 노력은 본질에서 멀어져 부당한 현실과 타협하려 할 때 하늘을 붙잡아 줄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 눈앞에 보이는 목표에만 매달리기보다는,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는 의미를 한 번쯤 돌아보면 어떨까? 심리학자들이 밝혀냈듯 보다 본질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어려움을 이겨낼 힘이 되어 주고, 보다 당당하고 유연한 나 자신으로 살도록 이끈다. 그럴 때 실질적인 '목표' 역시 자연스레 달성될 것이다. <블랙독> 하늘이 보여줬듯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