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푸케, <거름 위의 욥>(부분), 1450, 콩데 미술관

장 푸케, <거름 위의 욥>(부분), 1450, 콩데 미술관 ⓒ public domain


성밖 거름 더미에 헐벗은 남자 하나가 비스듬히 누워 있다. 낯빛을 보니 죽음이 기다리는 듯하다. 화려한 의상의 세 남자가 그 곁을 지키고 있다. 그를 비난하는지 염려하는지 아리송하다. 남자는 그들을 올려다볼 뿐이다. 그는 '동방의 의인'이라 불리며 부와 명예를 누리던 족장으로서, 얼마 전 갑작스러운 폭풍우와 도적떼의 습격으로 전 재산을 잃었고, 가족의 잔칫날 자식들을 한꺼번에 잃었다. 설상가상 온몸에 종기가 퍼져 그릇 조각으로 긁어대며 피딱지 마를 날 없는 나날이다.

비보를 접한 세 친구가 찾아와 칠 일 밤낮을 침묵 속에 곁을 지켰다. 친구들의 동참에 말문이 트였는지 남자가 신세한탄을 하자 세 친구는 그 재앙이 그가 지은 죄로 인함이니 신께 용서를 구하라고 한다. '동방의 의인'은 자신의 '죄 없음'을 주장하고, 세 친구는 '까닭 없는 재앙은 없다'라고 하면서 죄의 자복과 회개를 촉구한다.

남자의 이름은 욥이다. 고난의 이유에 대한 긴 설전은 총 42장의 욥기가 된다. 도대체 욥이 고난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질문에 답하기 전에 극심한 양극화 사회의 비극을 다룬 블랙코미디 <기생충>의 세상에 가보자. 
 
 새로 온 과외교사에게 남편 박사장(이선균)을 소개하는 연교(조여정)

새로 온 과외교사에게 남편 박사장(이선균)을 소개하는 연교(조여정) ⓒ CJ엔터테인먼트

 
봉준호 감독의 블랙코미디 <기생충>은 지난해 5월 제72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골든 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를 거쳐 지난 10일(한국시각) 열린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구 외국어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하면서 전 세계에 <기생충> 대 이변을 일으키고 있다. 도대체 영화 <기생충>의 어떤 힘이 언어와 국경을 초월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기생충>에는 상반된 두 가족이 등장한다. 성공한 IT 기업가인 젊은 박사장네 가족과 두 번의 자영업 실패로 폭망하고 고정수입 없는 기택네 가족이다. 만날 일이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른 두 가족이 만나게 되었다. 바로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 물론 수많은 비밀과 거짓말과 함께 말이다. 

먼저 연교의 눈으로 상황을 보자. 성공한 남편(이선균)과 착하고 예쁜 딸 다혜(정지소), 엉뚱한 아들 다송(정현준)과 대저택에서 일상을 보내는 젊고 아름다운 '사모님' 연교(조여정)에게 작은 변화가 생겼다. '딸의 성적과 관계없이' 수능까지 정주행할 민혁쌤(박서준)이 갑자기 유학을 가고 대신 추천받은 케빈쌤(최우식)이 왔다. 또 케빈쌤의 추천으로 유학파 미술 담당 제시카쌤(박소담)이 왔다. 제시카쌤의 파워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행실이 의심스러운 운전기사를 내보내고, 제시카쌤 추천의 베테랑 김기사(송강호)를 들였다. 모든 것이 연교의 아름다운 '믿음의 벨트' 덕이었고, 벨트는 김기사가 추천한 업체 '더 케어'가 보장한 가사도우미(장혜진)의 채용으로까지 이어졌으니, 드디어 연교 가족을 위한 '특급' 서포터 세팅이 완료된 것이다. 

모처럼 맘먹고 떠난 캠핑이 갑작스러운 폭우로 취소되어 돌아왔지만,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간밤 폭우로 미세먼지가 싹 씻겨나간 개운한 날씨에 기분이 좋아져 번개 파티를 감행한다. 갑작스러운 초대에도 친구들과 특급 서포터들 모두 참석해주었다. 음식, 연주, 지인들, 모든 것이 완벽했고, 이제 연교가 준비한 인디언 퍼포먼스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고 있었는데 그 순간,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연교는 기절하고야 만다. 

지금부터는 기절 후 눈을 뜬 연교에 대한 '가상' 에피소드다. 상 복 터진 <기생충> 제작진의 축제 분위기와 달리, 가상의 인물임에도 '연교'가 어디선가 눈을 뜨고 그날의 참극을 떠올리며 울고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들이 그녀를 위로하러 방문했을 것만 같다. 그들의 가상대화는 아마도 이렇게 펼쳐질 것이다.

친구들은 입이 떨어지지 않는 연교의 옆을 묵묵히 지키며 등을 토닥거리거나 함께 울어주었을 것이다. 친구들의 위로에 슬픔을 조금 내려놓은 연교는 내게 왜 이런 일이 닥쳤는지 한탄을 시작할 것이며, 분명 자신이 착하게 친절하게 살아왔음을 강조했을 것이다. 실제로 연교의 언행을 통해 맑고 착한 심성의 소유자임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너 정도면 너무 착하지' 하는 친구들의 호응에 더 억울해지면서 발언이 더 격해질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가 '너 혹시 뭐 짚이는 거 없니'하며 '연교가 당한 비극'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친구라고 다 아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러면 연교는 더 답답해진 마음에 격한 반응을 할 것이며, 연교에 앙금이 있는 친구라면 비아냥대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결국 모두가 격해져 말실수를 하거나 다시는 못 볼 만큼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뜰 수도 있다. 실제로 연교가 뭘 잘못해서 비극을 당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한 자가 당하는 고난의 원인에 대해서는 글의 말미에 다시 다뤄보자.

이제 기우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자. 기우는 오늘도 반지하에서 와이파이 터지는 곳을 찾아헤맨다. 핸드폰 요금도 감당 못 할 정도로 기우네 가족은 전원 백수다. 어느 날 구세주처럼 친구 민혁이 나타나 고액 과외 자리를 물려주고 간다. 일자리가 급한 기우는 명문대 재학생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박 사장네 대저택에 발에 들인다. 안주인 연교의 순진함을 이용해 동생 기정은 아들 다송의 미술치료 교사로 취업시킨다. 치밀한 계획의 성공으로 운전기사와 가사도우미까지 저택의 모든 일자리를 장악한 기우네가 주인 없는 저택에서 자축을 하는데, 울리는 벨 소리가 불길하다.

한때 투포환 유망주였던 충숙과 기택 부부. 기택도 치킨 집과 대만 카스텔라점을 개업할 정도면 최소 중소기업 부장 퇴직쯤 했을,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산층이었을 것이다. 차분한 언행을 통해 망하기 전에는 제법 경우도 차리고 식견도 있었을 옛 기택의 모습을 떠올려볼 수 있다. 치킨집은 그렇다 쳐도 '대만 카스텔라점'은 부도덕한 프랜차이즈와 창업 컨설턴트, 그리고 무책임한 방송사와 '만들기 쉽다'라는 유혹이 '화룡점정'을 찍어 이뤄낸 대재앙이었다. 그 많던 점주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의 노후비용이자 전 재산이었던 그 돈은 다 어디로 흘러 들어갔을까.

하루아침에 폭망한 기택은 도대체 자신이 뭘 잘못했기에 이렇게 전재산을 날리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돈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법적 대응도 시도해봤을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구제받지 못한 채, 생계가 급해 대리운전과 대리주차로 연명했으나 그마저도 끊겨 백수가 됐을 터, 덕분에 학생 때 지원이 끊긴 기우와 기정은 고졸 신분에 단기 일자리를 찾는 신세가 된 것이다. 남매라고 갑작스러운 폭망에 대해 좌절이 없었겠는가.
 
 전원 백수인 기우 가족이 피자박스를 접고 있다.

전원 백수인 기우 가족이 피자박스를 접고 있다. ⓒ CJ엔터테인먼트

 
동네 무명한 피자집 점원 자리에 취직하는 것도 그렇게 빡빡할 수가 없는데, 박 사장 집 일자리는 거짓말 한 번 하니 그렇게 쉬울 수가 없다. 어차피 주고받는 게 서비스와 월급이니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운전기사와 가사도우미가 영문도 모르고 모함을 당해 직장을 잃었다. 해고된 운전기사는 아직 어떤 움직임도 없다. 하지만 해고된 가사도우미 문광(이정은)은 움직였다. 그리고 비극이 이어졌다. 

세상은 욕망으로 얽힌 복잡계다. 수많은 사람들이 욕망하고 계획한다. 욕망의 꼭대기에는 그가 아는 가장 좋은 것이 놓여 있을 것. 세계적인 건축가 남궁현자가 지었다는 대저택을 누구나 자기 것으로 여기고 수복하고 싶어 한다. 아마 연교의 반려견도 집을 자기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모두가 욕망하는, 건축가 남궁현자의 역작 "성북동 박사장 집"

모두가 욕망하는, 건축가 남궁현자의 역작 "성북동 박사장 집" ⓒ CJ엔터테인먼트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네가 어디서 왔느냐"라는 여호와의 질문에 대한 사탄의 대답이다.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니는 이유가 무엇이며, 뭘 하는지는 다음 구절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여호와는 욥의 정직함과 경건함을 보았냐고 자랑하고, 사탄은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소유를 치시면 주를 욕하지 않겠나이까'하며 도발한다. 욥의 온전함을 아는 하나님은 사탄에게 시험을 허락하고, 사탄은 실행한다. 모든 것을 잃었으나, 욥은 주신 이도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라면서 원망하지 않았다. 사탄은 욥의 몸을 치고, 욥은 비록 신세 한탄과 기나긴 썰전을 치르긴 했지만, 끝까지 신을 욕하지 않았다. 사탄의 시험은 실패하고, 욥은 더 큰 복을 받고 장수했다. 단지, 욥은 끝까지 '이 모든 고난이 사탄의 시험'으로 시작되었음을 알지 못했다. 욥도 그것을 몰랐는데, 욥의 세 친구는 더욱 모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선하게, 성실하게 살다가 누군가의 배신으로, 혹은 아주 작은 욕심이나 실수로 일상이 부서진다. 부서진 일상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깊은 수렁에서 사투하다가 결국 양심에 눈을 감아야 겨우 맨땅이다. 아는가? 양심에 눈을 감을 때 또 다른 누군가가 수렁에 빠짐을. 그가 양심에 눈을 감고 수렁을 빠져나와 자신을 빠뜨린 바로 그 상대를 찾아가지만, 그는 모르고 있다. 자신 역시 자기가 빠질 수렁을 파왔음을 말이다.

기우가 정직하게 그 집을 사려면 500년 넘는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가 살아서 그 집을 사려면 부정한 돈이어야 한다. 갖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가서 기생해 뭐 어때. 너는 어차피 내년에 그 대학에 입학할 거잖아. 가서 기생해. 어차피 걔네들 필요한 서비스만 해 주면 돼. 뭐 어때. 잘린 애들보다 네가 더 불쌍해. 뭐 어때 카스텔라 하나로 돈 벌려고 덜컥 가게 낸 자영업자들이 잘못이지. 뭐 어때 아무도 모르는데, 돈 안 갚아도 돼. 감옥 안 가도 돼. 뭐 어때. 모른 척해.

온 땅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렁에 빠진 인간들을 찾아 귓가에 속삭이는 사탄의 달콤한 유혹은 죄책감을 덜어주고 숙주를 향해 돌진하게 만든다. 약한 숙주는 쓰러지고, 살아남은 숙주는 이제 결정해야 한다. 고통스러운 숙주로 살거나 쉬운 기생충이 되거나. 대부분 버티다가 한계에 이르면 사탄의 속삭임이 당도해 귓전에 맴돌고, 속삭임은 점점 기생충의 온몸을 공명하여 그를 지배한다. 불의한 세상에서 나 홀로 의롭기는 쉽지가 않다. 기택의 소신이 한 번 등장한다. "애초부터 계획이 없으니까 뭐가 터져도 다 상관없어. 사람을 죽이건 나라를 팔아먹던 다 상관없다 이거야."

욥기를 통해 우리가 배울 것은 고난에 대한 인내뿐만이 아니다. 욥이 자신이 지었을 죄뿐만 아니라, 자식이 지었을 죄를 대비해 항상 번제를 드리며 살아왔음에 주목해야 한다.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뭐든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기 위해 나의 죄를, 나아가 가족의 죄까지도 돌아보는 삶의 자세를 지켜야 함이다.

<기생충>은 한국 사회의 지독한 양극화뿐 아니라 전 세계를 침투한 신자본주의의 폐해를 실감 나게 담아내었기에 세계 영화제를 휩쓸고 있는 것 같다. <기생충>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가진 자든 못 가진 자든 깊은 심연을 건드리고 있다. 성경이 보는 고난의 이유는 인간에 내재한 죄에의 취약성인 듯하다.

정책과 제도의 보완은 물론 사회 인식 개선이 중요하지만, 선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두 자신이, 또는 자식이 지었을 죄까지 경계하는 자세를 지녀야 하겠다. 만약 평소 먼저 나서서 노른자를 차지하는 삶을 사는 신도라면, 자신이 바로 사탄이 말한 '까닭이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인 것은 아닌지, 깨어 경계해야 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도서출판 참서림의 블로그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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