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페인 앤 글로리>

영화 <페인 앤 글로리> ⓒ ?조이앤시네마

 
페드로 알모도바르, 현대 스페인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1980년에 데뷔해 40년 동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선명하고 세련된 색감과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스토리로 전 세계 평단과 대중을 사로잡았으며 1980년대부터 꾸준히 매 10년을 대표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왔다. 1980년대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1990년대 <내 어머니의 모든 것>, 2000년대 <그녀에게>, 2010년대 <페인 앤 글로리>까지. 

그에겐 1980~1990년대와 1990~2000년대 확고한 페르소나로 누구나 알 만한 두 남녀 배우가 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페넬로페 크루즈가 그들이다. 그들은 알모도바르와 작업하여 '연기'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후, 할리우드에 진출해 흥행에 성공했다. 그리고는 스페인으로 돌아와 2010년대에는 셋이서 함께 작업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최고의 조합임에 분명하다. 

2010년대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페인 앤 글로리> 역시 알모도바르 감독에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페넬로페 크루즈가 함께 했다. 전 세계 수많은 영화 시상식에서 <페인 앤 글로리>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외국영화상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였다. 그 정점이라 할 만한 제92회 아카데미에서 <기생충>이 국제장편상을 수상하며, <페인 앤 글로리>가 판정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칸을 비롯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남우주연상을 접수하며, 배우의 진가를 잘 끄집어내는 알모도바르 감독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고통뿐인 과거의 거장, 그에게 찾아온 영감
 
 <페인 앤 글로리> 스틸컷

<페인 앤 글로리> 스틸컷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걸작들을 탄생시키며 거장 반열에 올랐던 살바도르 말로(안토니오 반데라스 분) 감독, 하지만 지금은 온몸에 아프지 않은 곳 없이 진통제에 의존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노인일 뿐이다. 어느날 32년 전 영화 <향취>를 보게 되었고 마음속에 무언가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런 와중 우연히 <향취>의 여주인공을 만났고, 그녀에게서 남주인공 알베르토의 소식과 함께 영화박물관에서 특별전을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영화를 찍었을 당시, 좋지 않았던 사이로 좋지 않을 후문을 남겼던 바 30여 년 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살바도르가 알베르토를 찾아간다. 

실로 오랜만에 만난 그들, 알베르토가 살바도르에게 헤로인을 권한다. 헤로인으로 줄어든 고통, 살바도르는 헤로인에 중독되어 가며 엄마와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가진 것 하나 없었지만 아주 똑똑했던 살바도르, 엄마 하신타(페넬로페 크루즈 분)는 장학금을 대준다는 신학교에 그를 보내려 한다. 그런가 하면, 글도 모르고 산수도 모르는 벽돌공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며 그로 하여금 아무것도 없는 동굴 집을 개조하게 한다. 

알베르토는 우연히 살바도르의 컴퓨터를 열어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글 중 하나를 본다. <중독>이라는 작품, 알베르토는 장르를 알 수 없는 이 작품으로 뭐라도 하고 싶어하지만 살바도르는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 아무것도 하기 싫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와중에도 그는 계속해서 헤로인을 하며 옛날로 돌아가, 잊고 살았던 또는 떨쳐내지 못했던 친구와 첫사랑과 어머니를 만나 자신도 모르게 영감을 얻는다. 그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게 영화밖에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다시 매달릴 수 있을까?

영광에의 고통의 승화,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여러 번 인터뷰를 통해 부인했지만, 영화 <페인 앤 글로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분 그의 자전적 이야기로 비친다. 그는 실제로 어린 시절 궁핍한 곳으로 이사를 했고 수도원 생활을 했으나 맞지 않아 영화관 가는 일을 낙으로 삼았다. 10대 중반에 마드리드로 상경해 노동자로 돈을 벌며 단편영화를 찍었고, 30대 초반에 장편영화로 정식 데뷔 후 승승장구하여 지금까지 왔다. 영화와 같은 듯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영화는 고통과 영광, 예술을 상징하는 듯하다. 오직 예술만이 끔찍한 고통을 영광으로 승화할 수 있다. 예술적인 결과물을 내놓기까지 창작자에게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닥쳐온다. 그 끝에 영광이 올지, 오지 않을지는 알 수 없다. 더욱이 고통 자체를 수단으로 하겠다는 건 어불성설과도 같다. 그리 한다면, 영광은 반드시 따라와야 하고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 영화 속 살바도르는 그런 과정을 따르고 있는 것 같다. 끔찍한 육체적 고통을 마주하지 못해 도망갔을 때 영감을 얻었고, 과정에서 영감의 주체들을 돌아보고 또 만났다. 결국 모든 종류의 고통을 직시해야 한다고 깨닫고는, 다시 시작한다. 그동안의 알모도바르 감독 필모를 들여다봤을 때,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남 모를 고통들의 면면이 다시 보인다. 이 영화는 알모도바르 감독에게서 시작했지만, 모든 예술가들을 향한 헌사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당신네들이 겪었고 겪고 있고 겪을 고통들에 반드시 영광이 뒤따를 거라고 말이다. 

그런가 하면, 영광이 고통의 결과 아닌 과정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친구와 첫사랑과 어머니를 되새기고 만나는 것 자체가 영광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들과 다시 조우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랄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예술가는 주관적이기 짝이 없는 다사다난의 느낌들을 제3자적 입장에서 잡아낼 수 있어야 한다. 

알모도바르 감독의 장기, 색감과 스토리
 
 <페인 앤 글로리> 스틸컷

<페인 앤 글로리> 스틸컷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영화는 여지없이 알모도바르 감독의 장기가 발휘된다. 그의 인장(印章)이라고 해도 무방한, 화려하고 세련된 색감과 센세이셔널한 스토리 말이다. 주로 외부 아닌 내부에서, 액션 없이 대사와 표정으로 이루어지는 영화인 만큼 배경이 중요하다. 화려하지만 쨍하지 않고 포근한 감정을 유발하는 빨간색을 중심으로 다양한 원색을 추구한다. 화려한 색감에 한없이 눈을 빼앗길 것 같지만, 인물들의 압도적인 대사와 표정과 잘 어울린다. 하여 관객들은 화면 자체에 오감이 쏠리는 것이다. 

이번에는 스토리 자체에 파격적 요소가 짙게 깔리진 않은 듯하지만, 끝없이 나오는 마약(헤로인) 섭취와 무심한 듯 툭툭 튀어나오는 예상치 못한 사실들이 마음을 요동치게 하기에 충분하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잘 보여준 건 살바도르 역의 안토니오 반데라스이다. 그 덕분에 우린 파격을 파격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절제 속에서 안정된 파격이라는 모순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살바도르의 믿을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질 때면 치를 떨었고 과거와 조우하며 복잡한 감정이 전해질 때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예술과 예술가의 고통과 영광을 집대성하고, 페르도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인생을 집대성하며, 안토니오 반데라스 배우의 다시 없을 인생 최고 연기를 선보인 바, <페인 앤 글로리>는 여러 모로 두고두고 회자될 게 분명하다. 나와 내가 속한 곳의 역사를 다른 누군가의 손에 넘기기 싫다면, 내가 직접 들여다봐야 한다. 그곳에 마주하기 싫은 고통이 있을지라도, 자연스레 따라올 영광은 기대하지 말고.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와 <프리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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