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바리니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가운데)과 한송이 선수... 진천선수촌 훈련 모습 (2019.12.30)

라바리니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가운데)과 한송이 선수... 진천선수촌 훈련 모습 (2019.12.30) ⓒ 박진철 기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라바리니 마법의 위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라바리니(41)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이 이끌고 있는 부스토 아르시치오(Busto Arsizio) 팀이 이탈리아 리그에서 특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부스토 아르시치오는 10일 새벽(아래 한국시간) 열린 2019-2020시즌 이탈리아 리그 정규리그 노바라 팀과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0(25-20, 28-26, 25-17)으로 완승을 거두었다.

노바라는 이모코, 스칸디치와 함께 이탈리아 리그 '빅 3'에 해당하는 강호다. 지난 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 팀이기도 하다. 현재 진행 중인 2019-2020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도 C조에서 4승 1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8강 진출이 유력한 상황이다.

부스토 아르시치오는 10일 경기에서 라바리니 감독 특유의 '토털 배구를 바탕으로 하는 스피드 배구'를 앞세워 강호 노바라를 격침시켰다.

팀 내 득점 분포도 라이트 로위 16득점, 레프트 헤르보츠 13득점, 젠나리 8득점, 센터 위싱턴 13득점, 보니파치오 8득점, 세터 오로 4득점을 각각 기록했다. 가장 이상적인 경기 내용이었다.

부스토 아르시치오는 이날 승리로 리그 2위 자리를 더욱 굳건하게 다졌다. 10일 현재 이탈리아 리그 정규리그 순위는 1위 이모코(16승1패·승점 48점), 2위 부스토 아르시치오(14승3패·승점 42점), 3위 노바라(12승5패·승점 35점), 4위 스칸디치(11승6패·승점 33점), 5위 몬차(9승8패·승점 28점) 순이다. 이탈리아 리그는 총 14개 팀이 경쟁을 펼친다. 정규리그 8위까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

부스토 아르시치오는 지난 3일 끝난 2019-2020시즌 '이탈리아 컵' 대회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전에서 세계 최강 클럽인 이모코에게 0-3으로 패했지만, 준우승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성과였다.

도쿄올림픽 티켓, 이탈리아 2위... 라바리니 마법 '지속'
 
 라바리니 감독의 부스토 아르시치오 '주전 세터' 오로(180cm)... 현 이탈리아 대표팀 세터

라바리니 감독의 부스토 아르시치오 '주전 세터' 오로(180cm)... 현 이탈리아 대표팀 세터 ⓒ 국제배구연맹

부스토 아르시치오의 돌풍은 올 시즌 이탈리아 리그에서 단연 눈에 띄는 대목이다. 초호화 군단인 세계 정상급 클럽 팀들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당당히 2위를 달리고 있고, 이탈리아 컵 대회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했다. 단순히 돌풍을 넘어서 강호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부스토 아르시치오는 지난 시즌 이탈리아 리그에서 최종 순위 6위에 그쳤다. 때문에 올 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출전 자격조차 얻지 못했다. 올 시즌 전망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지난 10월 13일 이탈리아 리그가 개막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부스토 아르시치오는 잘해야 4위권 정도로 평가됐었다.
 
물론 부스토 아르시치오 구단도 올 시즌 이탈리아 리그 우승에 도전하기 위해 지난 시즌 브라질 리그 4관왕을 이끈 라바리니 감독을 야심차게 영입했다. 또한 미국 대표팀의 주전 멤버인 카스타 로위, 할레이 워싱턴 등 수준급 외국인 선수도 일부 영입했다.

그러나 이모코, 노바라, 스칸디치 등 이탈리아 리그 '빅 3'에 비하면 무게감이 크게 떨어진다. 빅 3가 세계 배구 강국의 핵심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초호화 군단과 막강한 전력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모코는 올 시즌 '세계 최강' 클럽 팀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올 시즌 5개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싹쓸이 우승'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이탈리아 리그 최종 우승 팀을 의미하는 포스트시즌 챔피언결정전과 유럽 챔피언스리그도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다.

라바리니 감독도 '무적 함대' 이모코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올 시즌 이모코와 2번 대결에서 모두 패했다. 그러나 이모코를 제외한 다른 팀들과 대결에서는 확실한 우위를 구축해가고 있다.

한국 대표팀-이탈리아 클럽팀 '승승장구'

라바리니 감독의 이탈리아 돌풍은 감독으로서 그의 역량이 세계 정상급 수준임을 증명해주는 징표이기도 하다. 지난 시즌 브라질 리그 4관왕, 지난 1월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의 2020 도쿄 올림픽 출전권 획득도 라바리니 감독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 성과들이다.

라바리니 감독은 현재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의 '전임 감독'이 아니다. 도쿄 올림픽까지만 맡기로 한 '임시 계약직' 감독이다. 때문에 프로구단인 부스토 아르시치오 감독을 병행하고 있다. 당연히 여러모로 어려움과 불리함을 감수해야 한다.

실제로 라비라니 감독은 한국 대표팀을 지휘하느라 소속팀 선수들과 올 시즌 리그 준비를 거의 하지 못했다. 그는 지난해 9월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일본에서 열린 '2019 월드컵 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1일에서야 한국을 떠나 부스토 아르시치오 팀에 합류했다. 이탈리아 정규리그는 10월 13일 개막했다. 고작 10여일 선수들과 리그 준비를 하고 정규리그 개막전을 치른 셈이다. 그러면서 리그 첫 경기인 피렌체와 경기에서도 2-3으로 패했다.

웬만한 감독들 같으면, 이런저런 어려움과 불평을 토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라바리니 감독은 빠르게 팀을 정비했고 경기력도 급상승세를 탔다. 어느덧 세계 최강 클럽인 이모코와 리그 1위 싸움을 벌일 정도로 올라섰다.

스피드 배구, '패러다임'을 바꾸다... 강팀과 대결 '자신감 상승'
 
 라바리니호 여자배구 대표팀 '작전 타임'

라바리니호 여자배구 대표팀 '작전 타임' ⓒ 박진철 기자

 
라바리니 감독은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으로서도 눈부신 성과를 올렸다. 소속팀을 핑계 삼아 대표팀 관리를 대충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탁월한 리더십, 치밀하고 선진적인 훈련 프로그램으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의 국제경쟁력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의 패러다임을 세계 배구 흐름에 맞게 탈바꿈시킨 점이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이다. '서브 리시브를 잘해야 이긴다'는 말만 되풀이해 온 한국 배구의 구식 풍토를 '토털 배구를 바탕으로 하는 공격형 스피드 배구'로 확 변화시켰다. 모든 경기에 주전 선수만 고집하지 않고, 선수 전원을 살려가는 방향으로 운영한 것도 돋보였다.

그러면서 대표팀 선수들에게 '세계 강팀을 만나도 이제는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 결실이 바로 지난해 9월 월드컵 대회 6위와 지난 1월 태국에서 도쿄 올림픽 티켓 획득으로 이어졌다.

라바리니 감독의 성과 중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또 있다. 대표팀 선수들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한 점이다.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은 그동안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감독의 능력과 선수단 운영에 대해 찬사를 쏟아냈다. 선수들은 "라바리니 감독에게 많은 걸 배웠고, 내 실력도 크게 늘었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대표팀 고참으로 경험이 가장 많은 한송이(36세) 선수는 지난달 17일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라바리니 감독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사실 대표팀 합류 전까지 개인적인 궁금증이 있었다. 라바리니 감독님이 대표팀을 이끈 후 선수들이 대표팀에만 다녀오면 한 뼘씩 성장해 있는 모습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해 보니 선수들이 왜 성장하게 됐는지를 깨닫게 됐다. 체력적인 부담은 있지만 선수들 기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지도법을 갖고 계셨다. 그 분을 통해 내가 더 많은 걸 배웠다. 배구를 새롭게 배운 부분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명이 넘는 대표팀 구성원들이 오직 감독님만을 믿고 따르며 한 마음으로 움직이는 과정은 전율이 일 정도였다"고 밝혔다.

선수가 느낀 '전율'... 여자배구 올림픽 메달 '꿈 아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잘 꿰어야 보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팀에 좋은 선수들이 많다고 다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감독의 역량과 리더십이 중요하다.

국제대회에서 똑같은 성과를 거두어도 '희망이 보이는 금자탑'으로 칭송을 받기도 하고, '감독의 전술과 선수 운영 때문에 미래가 어둡다'는 비난에 시달리기도 한다.

올림픽 등 중대한 국제대회를 앞두고 있을수록 선수 못지않게 감독의 '경기 감각' 컨디션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현재 감독으로서 세계적 수준의 '커리어 하이'를 찍고 있는 라바리니를 만난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물론 라바리니 감독을 영입한 대한민국배구협회의 선택도 분명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한국 여자배구에게 올림픽 메달은 그저 꿈으로만 여겨졌다. 여전히 어려운 과제임도 분명하다.

그러나 라바리니 감독 체제가 자리를 잡아가고, 월드컵과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을 거치면서 현직 배구팀 감독 등 전문가들 사이에도 변화가 생겼다. '잘 준비하면, 올림픽 메달도 해볼 만하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 '죽음의 조'를 피한 도쿄 올림픽 본선 조편성도 한국에게 희망적인 부분이다. '라바리니 마법'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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