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조조 래빗 > 스틸컷.

영화 < 조조 래빗 >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영화인들에게 '평화의 시대'보다 선호되는 것은 비극의 시대 아닐까. 나치와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이 자행한 집단 학살)가 바로 그런 예다. 비극의 시대를 다룬 영화들 중엔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등 지금까지 거론되고 있는 명작들이 많다. 그러나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조조 래빗>처럼 유쾌한 템포로 비참한 역사를 다룬 영화는 없었다.

<토르 : 라그나로크>(2017) 를 통해 시리즈의 명예를 회복시킨 와이티티는 나치즘이 종말로 달려가던 1940년대 중반으로 시계추를 돌렸다. 비틀스의 명곡 'I Want To Hold Your Hand'로 문을 여는, 밝은 색감의 나치 영화. 그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상상한 적 없는 나치 영화
 
 영화 < 조조 래빗 > 스틸컷.

영화 < 조조 래빗 >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영화에는 코믹한 인물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주인공의 친구 요키(아치 예이츠)는 사랑스럽고, 클렌젠도르프 대위(샘 록웰)나 람 교관(레벨 윌슨) 역시 나사가 하나는 풀린 듯한 인물이다. 그러나 현실이 어두울수록 코미디는 설득력을 얻기 마련인 법. 종전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이 시대는 광기의 시대다. 열살 아이들에게 단검과 총을 쥐여 주는 시대는 얼마나 비참한가. 

히틀러 유겐트에서 활동하는 주인공 '조조(로먼 그리핀 데이비스)'는 히틀러와 나치의 완장을 동경하는 열살 소년이다. 물론 나치즘이 무엇인지 이해했을 리 없다. 조조는 유대인을 '뿔 달린 악마'라고 여기며, 아리아족은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친구 요키는 '유대인이 왜 그렇게 유별난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저 어른들이 하는 말을 따르기로 한다. 어른들에 의해 철저히 학습된 혐오다. 

혐오는 전시에만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다. 얼마 전 대한민국에서 트랜스젠더는 군대에도, 여대에도 가지 못 하는 존재가 되었고(대학엔 합격했지만, 결국 입학을 포기), 특정 국가 관광객의 출입을 거부하는 식당들이 등장했으며, 영국에서는 한국인 축구 선수가 바이러스의 매개체인 것마냥 유희거리가 되지 않았는가.
 
"사랑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것이란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혐오만을 그리지 않는다. 보편적인 키워드, 어머니와 아들의 유대 관계는 이 영화에서 관객들을 가장 감정적으로 자극한다. 사랑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어머니 로지(스칼렛 요한슨)는 이념에 경도되는 아들을 걱정한다. 특히 로지는 자신의 집에 유대인 소녀 엘사(토마신 맥켄지)를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  

이후 협소했던 조조의 세계관은 변화하게 된다. 조조가 대면한 엘사는 결코 뿔이 달린 악마도, 마법을 부리는 존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조는 인간을 집단과 소속이 아닌 존재 자체로 대하는 방법을 알아가게 된다.

한편, 조조가 내적인 혼란을 겪을 때마다 상상 속의 친구 '아돌프 히틀러'가 등장한다. 조조에게 있어 히틀러는 우상화된 존재지만,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다. '상상 속 히틀러'를 연기한 장본인은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다. 폴리네시아계 유대인인 타이카 와이티티가 히틀러를 연기했다는 것 자체도 훌륭한 코미디다.

혐오보다 크고 강한 것
 
 영화 < 조조 래빗 > 스틸컷.

영화 < 조조 래빗 >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열살 조조는 사랑보다 '혐오'와 '배제'를 먼저 배운 소년이다. 그러나 조조는 토끼를 죽이라는 명령에 따를 수 없는, 착한 아이이기도 하다. 군인들은 토끼를 죽이지 못하는 조조를 보고 겁쟁이라며 '조조 래빗'이라 조롱한다. 그러나 조조의 그런 모습은 파시즘조차 억누를 수 없는 개인주의적 숭고함의 발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조조는 그 숭고함을 점점 펼쳐 나갈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사랑은 그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우선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 의식이다. <조조래빗>은 야만과 광기의 시대에 태어난 아이가 '사랑'과 '자유', 그리고 '춤'으로 회귀하는 성장의 서사를 그린다.

인간성이 말살되었던 시대를 다루면서도, 이토록 사랑스러운 영화가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레드 제플린의 명곡 'Immigrant Song'을 근사하게 활용했던 전작이 그랬듯, 이 영화는 록음악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Heroes'가 흘러나오는 순간, 복잡미묘한 눈물을 멈추기란 어렵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춤을 출 수 있다는 스칼렛 요한슨의 대사처럼, 우리는 '춤'을 추기 위해 태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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