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거리의 만찬>의 한 장면.

KBS <거리의 만찬>의 한 장면. ⓒ KBS

 
"아유, 밤새야 하나... 많습니다. 보통 우리가 차별이라고 생각 못할 정도로 많은 일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때문에 그 차별에 대한 생각이 없는 거예요. 남자는 주름이 있으면 멋있다고 해요. 연륜이 느껴진다. 여자가 주름에 흰머리가 나오면, 왜 저렇게 관리 안 해. 왜 저렇게 게을러. 그런 눈빛.

남자 MC들 옆엔 항상 꽃처럼 예쁜 여자, 그런 이미지가 늘 있었고. 그치만 나이든 여자와 젊은 남자, 그런 구성은 정말 없거든요. 이제는 시대가 좋아져서 이영자, 박나래씨가 대상 받고 하지만, 그것도 생색 맞추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런 분위기가) 얼마 안 됐어요."


박미선은 정말 밤이라도 샐 수 있을 것 같은 기세였다. 과거 젊은 시절 청바지에 단발머리,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불렀던 양희은이 연예계에서 당했던 차별의 언어와 경험을 털어 놓자, 박미선이 '요즘' 분위기를 전하던 와중에 나온 토로였다.

그렇다. 진행자인 박미선과 양희은, 이지혜의 마지막 방송이었던 KBS <거리의 만찬> 56회(1월 19일 방송)의 주제는 '지금은 여성시대', 즉 '여성 차별'이었다. 2018년 7월 파일럿 2회 방송 이후 그해 11월 KBS1 정규편성된 <거리의 만찬>이 시즌1 '막방'에서야 '여성 차별'이란 소재를 다룬 것 자체가 놀라울 정도였달까. 이날 출연한 출연자조차 "구태의연"할 거라 짐작한 소재였지만, 막상 자리를 만드니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여성 진행자와 세 여성 출연자의 사연들은 소재의 적절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마지막 방송이라는 걸 예고하듯, 방송 초반 세 진행자는 1회 방송됐던 강서구 장애인 특수학교를 다시 찾았다. 마치 <거리의 만찬>의 출발과 정체성을 재확인하기라도 하듯. 1회 방송 출연자는 강서 장애인 부모연대 회원들이었다. 과거 특수학교 설치를 호소하며 공청회 자리에서 국회의원 앞에서 무릎을 꿇은 영상이 공개돼 국민적 관심을 끌었던 장애인 학생의 부모들 말이다.

<거리의 만찬>이 쌓아올린 가치   
 
 KBS <거리의 만찬>의 한 장면.

KBS <거리의 만찬>의 한 장면. ⓒ KBS

  
여성 진행자들(당시 박미선과 정치학 박사 김지윤, 프리랜서 아나운서 김소영)이 사회적 약자, 소수자, 타자의 '엄마'들의 목소리를 듣고 공감하는 <거리의 만찬>의 형식과 내용은 그간 우리 방송에서 접하지 못했던 신선함과 공감, 그리고 고민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더 놀라운 것은 2회였다. 임신 중단을 경험했던 당사자를 출연시키며 한국사회에서 금기시됐던 '낙태죄'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거리의 만찬>이란 기획에 놀란 것은 그때였다. 파일럿 방송 당시 정의당 이정미 의원과 함께 KTX 해고 여성 승무원들의 천막을 찾았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좀 더 적극적인 기획이었다. 2017년 언론노조 KBS 본부(KBS 새노조)와 KBS 노동조합(KBS 구노조)의 총파업 이후 '양승동 사장 체제'를 맞은 KBS가 변화의 움직임을 시사하는 상징적 프로그램으로 느껴졌달까.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학생 인권(두발 자유화), 맘카페, 홈리스 문제(잡지 빅이슈), 간병 가족과 소화완화 의료, 고 김용균씨와 하청 노동 실태 등을 다뤘고, 이후 정치사회언론 등 사회적 이슈를 망라해 갔다.

이탄희 변호사와 서지현 검사(사법농단과 미투, 검찰개혁), 홍가혜씨와 황상기씨(세월호 참사와 삼성 백혈병 사건과 언론 보도)의 출연은 의외였고, 지만원씨가 지목한 '김군'들이 출연한 5.18 편과 진행자들이 직접 제주를 찾은 제주4.3 편은 익숙한 듯 새로운 접근을 선보였다.

'스쿨 미투'와 같은 소재를 다룬 것 역시 확실히 지상파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이렇게 프로그램 전반에 인권과 평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타자에 대한 고려란 사회적 가치가 유연하게 넘실거렸다. 그 정점은 지난해 8월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시위 현장(35회)을 직접 찾은 바로 그 장면이었다.

이러한 <거리의 만찬>의 기획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공영방송의 방향성과 KBS가 내건 '수신료의 가치'란 구호를 되새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울러 방송 초반 'KBS도 이런 기획을?'이란 노파심은 점차 제작진에 대한 신뢰로 바뀌어 갔다. 이와 관련, 2019년 4월 제작진은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의도를 털어 놓기도 했다.

"KBS 구성원들 각자 '공영방송'이라는 이름을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 같다. 한 프로그램에 모든 것을 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기도 하다. 뒷짐 지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모습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너무나 많은 매체를 동시에 접하고 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만 보고 사안을 판단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미디어에서 소외되는 목소리에 집중하는 게 '공영적'이라고 생각한다."(이승문 PD)

"소위 '각'이 서지 않은 채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것. 이를 테면 명백하게 틀린 말인데도 중립을 지켜야한다며 반대 목소리를 키워주는 것. 그건 몸을 사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루는 이슈가 정치적으로 첨예한 이슈들은 아니어서 가능한 일이지만 시사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찬반을 기계적으로 다루는 태도는 지양하려고 한다. 우선 만날 분들은 자기 목소리를 전할 방법이 없던 사람들이다. 무조건 '중심의 한가운데'에 서는 게 아닌, 기울어진 무게중심을 옮길 수 있는 생각을 던지고 싶다." (박상욱 PD)


"여자 셋이 모이면 사회가 바뀐다"
 
 KBS <거리의 만찬> 포스터.

KBS <거리의 만찬> 포스터. ⓒ KBS

 
그 중심에 박미선을 중심으로 한 여성 진행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성 진행자들이 또 다른 개별 여성들을 호명한, 적지 않은 <거리의 만찬>의 에피소드는 발화의 주체가 여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실로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음을 고스란히 환기시키고 있었다.

이를 테면,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문제.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됐던 '노동자'(라는 표현)가 아닌 '여성 노동자'를 경유해 다시 '노동자' 일반을 재고하게 만드는 힘. 예컨대, 낙태죄 에피소드. 여성 당사자만이 경험할 수 있고 또 처벌까지 감수해야 하지만, 남성들이, 한국사회가 공유를 거부하는 이슈와 진행자가 여성이라 좀 더 자연스레 끌어낼 수 있고 더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경험들.

그러한 다이얼로그 자체가 고스란히 '여성 서사'로 기록될 수 있음을, <아침마당>이나 <동치미> 수준에서 벗어나 여성이 듣고 말하고 현상을 진단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다이얼로그 자체가 발화의 힘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거리의 만찬>이 증명하고 있었던 셈이다. 마지막 방송에서 "이제 여자 셋이 모이면 사회가 바뀐다"라던 박미선의 멘트가 서글픈 건 그래서였다.

"이 프로그램이 사실 조금 변화가 있겠지만 그래도 구석구석 사회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그 곳에 가서 듣고 여러분들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사회에 반영이 된다면, 이 프로그램이 정말 있어야 할 이유가 아닌가. 그건 꼭 우리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우리만큼 잘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할 말은 합시다"라며 웃으며 얘기했지만, 요즘말로 '뼈 때리는' 돌직구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방송의 꽃은 편성이라던가. 이 <거리의 만찬>이 때 아닌 논란에 휩싸였다. 사실 이 논란은 KBS의 편성이 자처한 비극이기도 했다.

논란 자처한 KBS
 
 KBS <거리의 만찬>의 한 장면.

KBS <거리의 만찬>의 한 장면. ⓒ KBS

 
​​​​​​시작은 4일 KBS라디오 <김용민의 라이브>의 진행자 김용민이 본인의 소셜 미디어에 올린 게시글이었다. 그는 <거리의 만찬> 시즌2의 새 진행자로 자신과 배우 신현준이 낙점됐다는 소식을 알렸다. KBS와 제작진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이었다.

이후 KBS 청원 게시판을 중심으로 새 진행자 김용민에 대한 반대가 잇따랐다. 김용민의 과거 여성혐오 발언 등이 문제가 됐다. 여성 진행자들의 하차에 이어 남성 진행자, 그것도 과거 발언이 문제시됐던 인사를 기용한 KBS와 제작진에 대한 비난여론과 진행자 교체 요구가 들끓었다. 수많은 매체가 이를 기사화하면서 급기야 6일 양희은이 직접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이런 글을 남겼다.

"KBS 2TV '거리의 만찬' 우리 여자 셋은 MC 자리에서 잘렸다! 그 후 좀 시끄럽다. 청원이 장난 아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은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진행자 교체에 유보적인 모습을 보였다. 비난 여론을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러자 같은 날 김용민이 재차 '사의'를 표명하는 글을 게재했다.

"존경하는 양희은 선생께서 '거리의 만찬'에서 하차하신 과정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어받을 수 없는 법입니다. '거리의 만찬'의 가치와 명성에 누가 될 수 없기에 어제 제작진께 사의를 표했습니다만, 오늘 여러분께 확정지어 알리게 됐습니다. 앞으로 '거리의 만찬'으로 인해 세상이 더욱 밝고 아름답게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사태는 이미 예고돼 있었다. 52회 방송에서 양희은은 "유감스러운 것은, 시청료를 받고 그 가치를 알려준 채널에서 7번으로 옮기면서 여러 가지가..."라며 "편성의 실수"라는 일침을 놓기도 했다. "난 두려울 게 없는 사람이야"란 부연과 함께.

양희은이 언급한 그 실수는 오롯이 KBS의 몫이었다. 애초 <거리의 만찬>은 매주 금요일 KBS1 오후 10시에 방송되며 평균 4~5%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9월 개편 이후 KBS2로 채널을 옮겼고, 시간대도 최초 오후 10시에서 오후 11시대로 변경됐다. 이후 실제 시청률 하락이 현실화됐던 걸까. 지난해 9월 이후 포털 사이트에선 <거리의 만찬>의 시청률을 확인할 수 없다. 김용민의 사의 표명 직후 입장을 밝힌 제작진(위에서 소개한 PD들은 이미  역시 이를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시청률 경쟁을 비롯한 대내외적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저희 프로그램에도 새로운 시도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에 제작진은 오랜 고심 끝에 자체적인 개편안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제작진은 "<거리의 만찬>에 보내주신 관심과 비판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시즌2 제작 논의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되는 만큼, 구체적인 내용은 향후 진행 상황에 따라 다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정리해 보자. 일각에선 제작진이 김용민 기용으로 그의 팬덤에 의한 시청률 상승을 고려한 것 아니었겠냐는 의구심을 보내기도 했다. 결국 시청률을 고려했다는 KBS의 그 '결정'이 세 진행자의 하차로부터 수 주 후 논란을 불러온 셈이 됐다. 가장 큰 문제는 그 결정이 시청률을 담보하지도 않을 뿐 더러 그간 <거리의 만찬>이 쌓아올린 정체성과 명성을 퇴보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리라.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경청하고 공감하며 <거리의 만찬>을 진행하면서 스스로 변화했다고 고백하는 여성 진행자(특히 이지혜는 보호종료아동단체에, 양희은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돕는 단체에 기부했다고 한다)들을 하차시키며 (보장되지 않은 시청률 상승을 제외하고) <거리의 만찬>이 얻을 실질적 이익이 무엇인지 의문이다. 

원점에서 다시 고민하겠다는 제작진이 취해야 할 '액션'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거리의 만찬>을 진행하는 박미선과 양희은, 이지혜가 나란히 선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거리의 만찬>이 KBS 내에서도 드문 방송이었던 만큼, '드문' 결정으로 시청자들의 비판과 그에 따른 요구에 부응하는 것, 원점은 그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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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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