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령화 가족> 포스터. ?

영화 <고령화 가족> 포스터. ? ⓒ CJ엔터테인먼트?

 
쫄딱 망한 영화감독, 아내와 이혼 위기에 혼자 사는 마흔 살 인모(박해일)는 자살하려던 찰나 칠순을 눈앞에 둔 엄마(윤여정)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향한다. 엄마는 별말 없이 인모를 받아주었고 이후에도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묵묵히 챙겨줄 뿐이다. 엄마는 그 연세에도 화장품을 팔러 밖으로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없다.  

엄마 집에는 마흔넷의 형 '오한모'(윤제문), 일명 '오함마'가 이미 얹혀살고 있었다. 그는 교도소를 오가고 사업을 말아먹은 후 엄마 집에 몇 년째 눌어붙어 있는 인간말종 같은 인간이다. 얼마 안 가 셋째 미연(공효진)까지 딸 민경(진지희)을 데리고 들어온다. 두 번째 남편이 툭하면 술을 처먹고 들어와 개 패듯 하여 집을 나와버렸다는 것이다. 

몇 십 년 만에 다시 모인 삼 남매는 평균 나이 사십에 엄마 집으로 기어 들어오게 되었다. 막장 가족이자 콩가루 집안임에 분명해 보인다. 와중에 그들은 믿기 힘들고 믿기 싫은 집안의 과거사와 속사정을 하나하나 알게 된다. 매일 저녁이면 둘러앉아 함께 엄마가 극구 차려놓은 고기 반찬과 함께 저녁을 먹는 건 다르지 않지만 말이다. 삼 남매와 엄마 그리고 민경이는 어떻게 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천명관 작가와 송해성 감독

영화 <고령화 가족>은 이 시대 대표적 이야기꾼 천명관 작가가 지난 2010년에 두 번째로 내놓은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서른 줄에 이르러 영화판에 뛰어들어 몇몇 시나리오는 영화화되었지만 마흔 줄까지 메가폰을 잡지 못해 문학판으로 와 지금에 이른 천명관 작가의 파란만장 인생이 담겨 있는 듯하다. 
 
 고령화가족

고령화가족 ⓒ 문학동네

 
한편, 각본과 연출로 분한 송해성 감독은 <파이란> <역도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 2000년대 굵직한 족적을 남긴 영화들로 유명하다. 그의 영화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캐릭터가 상황을 이끄는데, <고령화 가족> 또한 그럴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소재와 캐릭터가 던지는 막강한 재미와 함께 어쩔 수 없는 듯한 신파적 감동이 뒤를 따른다. 

이 영화는 누구나의 가족 이야기이지만, 웃지 않고 못 배길 요소들이 곳곳에 깔려 있지다. 그렇다고 개인의 인생이나 사회를 관통하는 감당 못할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선뜻 '아끼는' 영화라고 말하기 힘들 수 있지만, '아껴 본'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막연히 흥미를 가지게 되는 몇 안 되는 영화인 것이다. 언젠가 또 보고 싶게 될 텐데, 또 봐도 큰 무리 없이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막장 가족

영화는 '막장' 가족의 의미와 '밑바닥' 인생들을 말하고 있을 테다. '가족'과 '인생'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을 이루는 가장 큰 개념들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공을 들이는 대상이다. 하지만 제대로 꾸려나가기가 가장 힘들기도 하다. 가족과 인생은 필연적으로 이 '세상'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막장이 되어버린, 아니 이미 되어버렸던 이 가족은 다시 모여 콩가루가 되어버린다. 도무지 답이 없는 구제불능의 가족이지만, 주요 구성원 삼 남매는 서로를 쉽게 저버리지 못한다. 이 세상에 나를 받아줄 곳은 여기뿐이니 말이다. 그리고 쉽게 저버려지지도 않는다. 이 세상에서 이들을 받아줄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가족의 의미는 더 이상 혈연에 의한 천륜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기대는 데 있지 않다. 가족에 있어 '관계'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보이는 막장 콩가루 가족의 모습은 혈연에 의한 천륜이 아닌 관계로 비춰지기에 충분하다. 서로에 대한 의무와 책임보다 노력과 학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막장 가족과 콩가루 집안이라는 표현은, 이들이 더 이상 '가족'이 아니라는 말과 다름 아니다. 그것도 서로 폭로하고 욕하고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니 가족보다 못한 사이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한 자리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다. 가족 아닌 식구, 식구가 가족으로 수렴하는 게 아닌 가족이 식구로 수렴한다. 

밑바닥 인생

일본의 나오키상 수상자 나카지마 교코의 장편소설 <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를 보면 사회에서 낙오된 밑바닥 인생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와 대가족을 이뤄 살게 되는데, <고령화 가족>과 비슷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가족은 조금 다르다. 마냥 받아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갈 때 나간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세상에 둘도 없는 따뜻한 보금자리도 아니거니와 한 번 발 디디면 절대 나갈 수 없는 감옥 같은 곳도 아니다. 어찌 보면 굉장히 이성적이다 못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들의 집합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족은 다시 쓰여져야 한다.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고령화 가족'의 '고령화'는 가족 구성원의 나이가 고령화되었다는 말도 되겠지만 가족이라는 단어가 갖는 함의가 고령화되었다는 말도 되겠다. 재정립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분명 그에 일조했다. 

영화는 그런 메시지를 한 축에 놓고 '밑바닥 인생'을 한 축에 놓아 나아간다. 이 '비정상적인' 이들이 아니었다면 사실은 비정상적일 수 있는 작금의 '정상적인' 가족의 행태에 따끔한 일침을 놓지 못했을 것이 자명하다. 참으로 건들기 힘든 부분을 이토록 예리하면서도 수려하게 돌리고 돌려서 말할 수 있는 능력에 정녕 감탄의 박수를 보낸다.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든 낙오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건, 옛날 대가족 시절에의 회기처럼 일면 나쁠 것 없이 보여질 수도 있지만 사회가 하지 못한 케어를 가정에게 돌리는 행태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다. 다 큰 삼 남매를 홀로 먹여 살리는 엄마의 모습이 감정적으로 짠해 보일 수 있을 망정 이성적으론 차마 보고 있기 힘든 처참한 광경이라는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밑바닥 인생들의 모임은 회복의 시간이라고 보여지지만 절망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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