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생각할수록 궁금하다. 죽은 사람은 왜 다시 볼 수 없을까. 유치한 질문이다. 죽었으니까 당연한 것이라는 뻔한 대답 외에는 생각해낼 수 없다. 왜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걸까.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삶과 죽음의 영역은 냉정하고 엄연하니까.
 
말은 이렇게 이성적으로 하지만, 내가 막상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다면 어떨까. 특히나 어린 자식을 일찍 황망하게 보냈다면?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자식의 모습을 한 번 더 보고싶다는 생각은 누구라도 하지 않을까. 하지만 죽은 사람과의 재회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VR로 죽은 사람과의 만남을 재연한다? 지난 6일 MBC에서 방영한 VR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이야기다. VR의 기술을 통해 죽은 사람과의 만남을 재연한다는 프로그램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했을 때, 반응은 다양했다. 죽은 사람은 빨리 잊는 게 상책인데 '부질없는 짓'이라는 냉정파가 있었고, 아이디어 자체가 꽤 흥미롭다는 호기심파도 있었다. 생각만해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벌써부터 눈물이 난다는 감성파도 있었다.

VR기술로 죽은 딸아이와의 만남을 재연한 다큐멘터리
 
 VR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중 한 장면

VR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중 한 장면 ⓒ MBC


나는 호기심파였다. VR이라는 신기술과 '추모'라는 방식을 접목시킨 그 아이디어가 신선하고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VR로 얼마나 실감나게 구현할 수 있을지도 궁금했고, 정말 죽은 사람이 돌아온 것도 아닌데 그게 얼마나 산사람에게 위로가 될지도 의아했다. 이런저런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MBC VR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를 보았다.
 
이 다큐의 주인공은 4년 전 희귀난치병으로 세상을 떠난 나연이(당시 7세)와 엄마 장지성씨다. 다큐 맨 마지막에 이르러 엄마와 나연이는 VR기술을 통해 만나게 된다. 그 전까지는 살아생전 나연이의 모습과 남은 형제들의 이야기, 엄마의 그리움과 술픔 그리고 VR로 구현해내기까지 제작진의 모습 등이 담겨있다.
 
어쨌든 나는 작품의 중간까지도 VR의 결과물이 궁금했다. 어디 얼마나 잘 구현했는지 볼까, 라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 엄마와 나연이는 만났을 때, 나는 눈물만 났다. VR로 표현된 나연이의 모습이 조금 어설퍼보이긴 했어도, 사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그 완성도 여부만을 관심에 둔 사람은 없지 않았을까 싶다(물론 VR 관계자들은 예외일 듯).
 
제작진은 동영상과 사진을 통해 나연이의 외모, 말투, 습관 등을 면밀히 분석해 가상현실로 재연해냈다. 비록 나연이를 아는 사람의 눈에는 그 모습이 조금은 어설퍼 보일 수도 있지만 아이의 말투나 몸짓, 이야기를 보다보면 VR속 나연이가 아닌,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나연이에게 몰입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라고 왜 그러지 않았을까. 엄마는 VR속 나연이의 모습을 보고 어루만지며 울먹이지만, 그 아이가 정말 나연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아직 마음 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한 딸 아이와 이별을 할 시간을 갖고 싶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그것은 스스로에게 주는 기회였는지 모른다.
 
다른 가족들도 방송국으로 와서 엄마와 나연이의 VR 재연을 지켜본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보던 다른 형제들과 끝까지 냉정을 유지하겠다던 아빠도 이내 눈시울을 붉힌다. 그 중 제일 막내딸(나연이의 동생)이 했던 말이 기가 막힌다. 펑펑 우는 엄마를 보고 막내는 이런 말을 한다.

"엄마는 좋겠다. 울 수 있어서. 나는 아직 울지 못했는데."
 
막내딸이 이 휴먼다큐멘터리의 의도를 가장 잘 짚어낸 것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VR 기술을 통해 죽은 사람과의 만남을 재연한다는 이 다큐멘터리는 어쩌면 산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고 위로하는 프로그램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하루 아침에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과 황망한 이별을 했던 사람들. 특히 꽃다운 나이의 자식을 떠나보내야했던 엄마들 생각. 그리고 그들의 죽은 자식들. 죽은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만 그들은 아직 무덤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죽은 사람은 빨리 잊으라'는 무례한 말 
 
 VR 기술과 인간의 감성을 접목한 VR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VR 기술과 인간의 감성을 접목한 VR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 MBC


'죽은 자식이 한 번만 왔다간다면... 자식 얼굴을 한번만 보고 떠나보낼 수 있다면...'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피나는 그리움을 꾸역꾸역 삼키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런 생각들이 다 부질없는 것이라고 섣불리 말하지 않겠다. 그들에게 위로랍시고 '산 사람은 사는 법이니, 어차피 죽은 사람은 빨리 잊으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이 얼마나 무례함이며, 폭력인가.
 
남은 사람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고통스런 시간을 함께 나눌 사람도 필요하다. 어차피 고통은 각자의 몫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되도록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아파하지는 못한다 해도, 그들의 고통에 조금 귀기울이고 한순간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그 고통을 조금은 경감해줄 수도 있을테니까.
 
VR이라는 기술이 사람의 마음에 얼마나 와닿을 수 있을까. 제작진은 처음에 이런 의문으로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답은 없다. 시각도 다양하고 가치도 제각각이니까.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고 관심사도 천차만별이다. 다큐멘터리를 다 본 뒤에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적어도 나연이 엄마에겐 큰 위로가 되었다는 것.
 
호기심으로 보았지만, 역시나 많은 눈물을 쏟았다. 나연이 엄마도 울고 나도 울었다. VR 재연이 끝난 뒤, 고글을 벗은 나연이 엄마의 얼굴은 도리어 담담하고 평온해 보였다. 첨단 기술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엄마도 뻔히 알지만 엄마의 세계엔 진심 나연이가 다녀간 듯 보였다. VR을 이용한 진혼제라고나 할까. 나연이 엄마의 얼굴을 보며 앞으로 나연이 엄마가 예전처럼 많이 울지는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엄마 앞으로 많이 울지마'라는 나연이의 마지막 위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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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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