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페인 앤 글로리> 포스터

영화 <페인 앤 글로리> 포스터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페인 앤 글로리(2020)>에는 많은 걸작을 만들었던 영화감독 '살바도르 말로'가 등장한다. 그는 몸이 많이 약해져서 영화를 못 찍는 상태에서 즐거울 것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까지 돌아가신 터라 마음도 울적한 상태이다. 그러던 찰나 32년 만에 재개봉되는 자신의 영화 <맛>을 다시 보게 되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원하던 영화제작도 더 이상 하기 힘들어지고, 사랑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는 요즈음 혼자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헛헛한 감정은 동시에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살바도르(안토니오 반데라스)는 과거를 돌이켜보며 떠오른 사람들을 기준으로 켜켜이 쌓인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하나둘 풀어놓는다. 관객들은 그가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된다.
 
처음에 그가 떠올린 것은 32년 전 자신의 영화를 망쳐놓았다고 생각한 배우 알베르토(에시어 엑센디아)이다. 시간이라는 건 가끔은 고마울 때가 있다. 자신이 생각한 캐릭터에 분해 연기를 하지 않은 터라 알베르토와 절연한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 그를 보니 그런 앙금일랑 없다. 덕분에 32년 전 영화가 재개봉하는 날 함께 질의응답을 하기로 했다.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속 장면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속 장면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알베르토는 살바도르를 거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영화 <맛> 상영 후 질의응답하는 것을 상의한다는 명목으로 살바도르의 집에 약속도 없이 들이닥친다. 이후 알베로토는 살바도르가 낮잠을 자는 사이 그의 컴퓨터에서 단편 <중독>을 발견하고 금세 읽어버린다. 그리고 깨어난 살바도르에게 자신이 아는 극단에서 연극을 올리려고 하는 데 그 원고를 달라고 요청한다.
 
알베르토와의 실랑이 끝에 살바도르가 떠올린 사람은 어릴 적 뜨겁게 사랑했던 페데리코(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다. 원고 <중독>은 페데리코와의 사랑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사랑했지만 마약 중독에 걸린 페데리코를 자신이 치유해줄 수 없다는 절망감에 헤어지게 되었다.
 
첫사랑을 떠올리게 된 계기 또한 따로 있다. 살바도르는 평소 명화를 소장하는 취미를 지니고 있었는데 우연히 좋은 그림을 보게 된 지인 덕분에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을 그려준 첫사랑 에두아르도를 기억해냈다. 가난하고 힘든 시절, 페인트공 에두아르도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쳐주었는데 그가 고맙다며 보내준 그림이 우연히 어느 작은 미술관에 걸리게 된 것이다.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속 장면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속 장면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살바도르가 떠올린 과거에는 아련함이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연극 <중독> 곳곳에 스며들어갔다. 연극 <중독>을 보는 내내 유독 배우 알베르토가 전하는 이야기에 눈가가 촉촉해지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우연히 연극 <중독>을 관람하게 된 살바도르의 옛 연인인 페데리코는 사랑했지만 헤어졌던 하지만 사랑했던 순간 만큼은 좋은 추억을 함께 나누던 자신의 순수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마약 중독 때문에 살바도르를 힘들게 했다는 죄책감을 지녀 왔었다. 그런 그가 몇 십년을 훌쩍 넘어 본 연극에서 살바도르가 그 시절, 자신의 연인 페데리코 덕분에 행복했다는 답을 듣고 눈물을 흘린다. 안도감이었을까,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연극을 매개로 사랑했던 사람의 마음을 전달받는 게 이토록 아련한 일인지 페데리코의 그 벅찬 마음이 또다른 관객인 나에게조차 전달되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훔치는 건 찰나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첫사랑 에두아르도에 대한 살바도르의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영어를 알지 못해 편지를 쓰지 못하고 수학을 배우지 못해 계산조차 못하는 남자 에두아르도의 부족한 점을 알아주고 채워주는 것, 그리고 그런 마음 씀씀이에 에두아르도가 마음을 열게 되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사랑이라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니라 이렇듯 스며들 듯 내 마음에 오롯이 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리라. 그래서 에두아르도는 살바도르의 첫사랑으로서 기억 속에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일 테고 말이다.
 
언젠가 내 인생을 살아내고 살바도르처럼 나의 인생을 돌아보는 때가 오면 그때 나의 인생들은 어떻게 기억될까, 기대가 된다. 살바도르처럼 순간 순간에 있는 힘껏 사랑한다면 후회와 안타까움보다는 이렇듯 아련하게 기억되지 않을까.
 
영화 <페인 앤 글로리>는 거장 감독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풀어놓은 아련함 가득한 이야기를 묵직하면서도 진솔하게 해석한 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의 설득력 있는 연기에 그는 제72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지현 시민 기자의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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