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은 지난 1월 29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영화제를 찾아 <기생충> 흑백판 월드 프리미어 후 '관객과의 대화'(Q & A)를 진행했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 1월 29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영화제를 찾아 <기생충> 흑백판 월드 프리미어 후 '관객과의 대화'(Q & A)를 진행했다. ⓒ 클레어 함

 
미국에 머물며 오스카 경선에 참가중인 봉준호 감독은 올해로 49회를 맞는 네덜란드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도 짧은 일정으로 다녀갔다. 지난달 29일에는 <기생충> 흑백판의 월드 프리미어를 마치고 현지 시네필들과 '감독과의 대화 (Q & A)' 시간을 가져 큰 호응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당일 오후에는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하기도 했다.

도심에 자리한 힐튼호텔에서 열린 마스터클래스는 2004년부터 로테르담영화제에서 한국영화를 소개해온 헤르윈 탐스마 (Gerwin Tamsma) 프로그래머와 봉 감독과의 대담으로 시작되어 관객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 마스터클래스에서 봉준호 감독은 특유의 입담을 선보이며 시종일관 참가자들에게 큰 웃음을 안겨 주었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 한 해 동안 독일 뮌헨국제영화제, 스위스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프랑스 뤼미에르영화제의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해 자신의 영화 세계 및 한국영화사를 소개한 바 있다. 하지만 '진지한 예술영화, 독립영화, 도전적인 실험영화 (cutting-edgy)'를 기치로 하는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는 제목 '기생충'과 주제의식 등 그간의 논쟁을 잠재우는 좀 더 직설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그동안 국내외 시네필들은 '누가 기생충이냐' 내지는 결국 현실에 안주한 주인공 기우의 선택에 대해 '봉 감독의 세계관이 변화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19년 전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로 로테르담영화제를 처음 찾았던 봉준호 감독은 당시의 기억을 묻는 프로그래머의 질문에 엄청난 규모의 스크린과 좌석수를 보유한 극장에 놀랐다며 "블랙코미디인 제 영화는 흥행에 참패했었는데 여기 관객들에겐 호응이 좋았던 유쾌한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탐스마 프로그래머가 <기생충> 흑백판을 만들게 된 동기를 묻자 그는 이전에도 <마더>의 흑백판이 재개봉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본인이 지닌 영화적 욕심 및 흑백영화에 대한 동경을 전했다. 

"영화의 탄생시점부터, 모든 영화가 다 흑백영화였던 시절이 있었다. 구로자와 아키라, 장 르누아르, 존 포드, 알프레드 히치콕 같은 거장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흑백영화 시절과 칼러영화 시절 두 시기로 나뉜다. 우리 세대는 흑백영화를 만들 기회가 없었다. 디지털 기술 덕분에 아주 적은 예산으로 흑백버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제 영화도 클래식이 되었으면 하는 그런 헛된 꿈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우리 세대가 생각하는 클래식(명작 고전영화)은 흑백이 많다보니까, 괜히 저도 제 영화를 흑백으로 바꿔놓으면 저도 클래식을 만든 것처럼 되는 그런 허세, 착각, 환상 뭐 이런 것이겠죠."
 
또한 봉 감독은 가정에서 흑백 TV를 보고 자라며 영화문화를 흡수한 배경도 함께 전했다.

"한국에서 컬러TV가 대중에게 보급된 것은 88올림픽경이었다. 80년대 중반에 점차 흑백에서 컬러TV로 변화되었는데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TV는 제가 어렸을 때 저의 '시네마테크'였다. 저의 어머니가 극장은 일 년 내내 햇볕이 안 드는 곳이기 때문에 세균이 많다고 못 가게 했다. (웃음) 1970년대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고 비디오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영화들을 TV방송으로 시청했다."   
 
 봉준호 감독이 로테르담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헤르윈 탐스마 (Gerwin Tamsma)씨 (오른쪽)와 마스터클래스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이 네덜란드 박스오피스에서 아시아영화중 최대 흥행 기록을 세웠다고 하자 봉준호 감독이 V자 포즈를 취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로테르담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헤르윈 탐스마 (Gerwin Tamsma)씨 (오른쪽)와 마스터클래스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이 네덜란드 박스오피스에서 아시아영화중 최대 흥행 기록을 세웠다고 하자 봉준호 감독이 V자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로테르담영화제

 
탐스마 프로그래머는 "봉 감독이 칸영화제 이후 약 570 차례의 언론 인터뷰를 했다"며 "되도록이면 새로운 질문을 해달라"고 관객들에게 요청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논의의 초점은 주제의식과 연출의도였다. 

사회자는 어느 좌파성향의 웹사이트에서는 "전반적으로 영화 '기생충'을 좋아하지만 가난한 등장인물들이 너무 계급의식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봉 감독은 "맞다. 기택과 부인이 벙커에 사는 남자를 만날 때 '나는 너희처럼 불우하지 않아'라며 자신들이 마치 중산층인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화합하지 못하고 서로 싸운다. 이게 슬픈 블랙코미디"라고 답했다. 또한 "이것이 상징적인 것이냐"는 사회자의 질문에는 "아마 현실적인 것이 아닐까"라며 "가난한 자들끼리 서로 뭉쳐서 연대를 하고 돕고, 명확한 적에 맞서서 싸우면 아주 좋은 상황일 텐데 현실에선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고, 가난한 자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상황으로 예상치 않게 전개된다. 그게 이 영화가 보여주는 독특하고 특이한 지점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빈부로 양극화된 사회현실 뿐만 아니라, 을을간의 갈등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토론이 벌어졌다. 사회자가 "가난한 이들이 서로 동정하지만 연대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하자, 봉 감독은 "제일 똑똑한 막내 기정이 엄마의 동의를 얻어 지하실 벙커에 사는 이들에게 미트볼을 전해주며 화해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 마지막 연대의 기회를 놓치고 영화는 비극으로 치닫는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2013-2014년경 첫 아이디어를 10페이지 정도의 간단한 줄거리(treatment)로 구상했을 땐 지하실의 제3의 가족은 없었다. 벙커에 사는 이 가족은 영화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가난한 자와 더 가난한 자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포르투갈의 철학과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어느 시네필은 지인이 영화 <기생충>에 관한 논문도 쓰고 있다고 언급하며 "영화를 보면 기택 (송강호)가족이 기생충이라는 암시가 자주 보인다. 하지만 더 깊이 고민해보면, 장대비가 올 당시 빈곤한 계층의 (힘든)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박사장의 가족도 기생충이 아니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봉감독은 "정확한 지적이다. 우리는 부유한 박사장 가족도 기생충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그들은 운전, 가사일 등 가난한 이들의 노동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산다"고 답변했다. 

또한, 어느 여성팬이 "봉 감독의 영화세계를 보면 항상 사회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다. 그런데 <기생충>으로 오면서 점점 더 어두워진 것 같다. 본인의 세계관이 점점 더 비관적이 되고 있는 것인가"라고 묻자, 봉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마더>도 무척 어두운 영화였다. 밝고 어둡다는 기준으로 영화를 만들지는 않는 것 같다. <기생충> 전반부는 코미디가 많았기 때문에 결말 부분이 대조적으로 어둡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의 대본을 쓸때 전 정말 정직하고 진솔하고 싶었다. 특히 결말부분은 더 그렇다. 아들역의 기우는 자신이 그 호화저택을 사겠다고 선언하는데, 제가 직접 계산해보니 (평균) 월급을 사용하지 않고 전부 모아도 547년이 걸린다. 솔직하게 끝내고 싶었다. 애매한 어거지로 희망적인 무언가를 우겨 넣어서 영화를 마무리했을 때 그게 오히려 관객입장에서는 더 화가 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있었다. 감독으로서 마지막 결말에 25% 정도의 희망을 넣는 것, sweet decoration (달콤한 장식)을 만드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건 솔직하지 않다고 여겼다. 누군가는 가장 어둡고 낮은 자리를 채워야한다는 게 이 시스템이고, 가장 공포스럽고 슬픈 지점이다. 그게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지점 같기도 하다."

로테르담시에서 일하는 한 여성관객은 "1만4천명이 되는 시 공무원 중 2천명이 <기생충> 단체 관람을 하며 가족, 직장, 일상생활에서의 정직과 진정성같은 덕목에 대해 흥미로운 논의를 했다"고 언급한 뒤, "이런 토론을 유도하도록 연출했냐"고 질문했다. 봉 감독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영화를 완성할 쯤엔 이거 그렇게 되겠다 싶었다.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중산층, 부자, 가난한 이들, 또는 남성/여성- 관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었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들어보고 싶다"며 관심을 표했다.    
 
헤르윈 탐스마 (Gerwin Tamsma) 프로그래머  로테르담영화제애서  봉준호 감독과 마스터클래스를 진행중인 헤르윈 탐스마 (Gerwin Tamsma)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 헤르윈 탐스마 (Gerwin Tamsma) 프로그래머 로테르담영화제애서 봉준호 감독과 마스터클래스를 진행중인 헤르윈 탐스마 (Gerwin Tamsma)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 로테르담영화제


한편, 탐스마 프로그래머는 <기생충>에서 부자 가족이 갑자기 영어로 이야기하곤 한다며, 한국에 존재하는 미국문화 및 한미간의 복잡한 애증관계에 대한 봉 감독의 의견을 묻기도 했다.

봉 감독은 "한국과 미국은 복잡하고 오래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양국은 오래된 친구이기도 하고 동시에 많은 압박을 받기도 하는 복합적인 관계"라며 전작 <괴물>의 예를 들었다.

"<괴물>의 오프닝 시퀀스를 보면 미 군의관이 한강에 포름알데하이드 독약을 방류하도록 지시한다. 2000년 실제사건인 맥팔랜드 사건에 기반했고 한국에서는 큰 스캔들이었다. 아이러니한 지점은 <괴물>에 컴퓨터 그래픽 회사를 포함, 미국 스태프가 많았는데 그들도 그런 풍자에 대해 재미있어했다. 미국 관련한 정치적 스트레스와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영화적 예술적 매혹이 공존하는 것 같다. 저도 많은 미국의 영화감독들을 우상으로 여기며 자랐다."
 
봉 감독은 <기생충>의 남성 캐릭터(기우)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사회자의 평가에 대해  "바보같은 과도한 책임감 때문에 그런 것 같다"며 오히려 "불쌍하다"고 표현했다. 또한 "봉 감독의 작품세계를 관찰하면 여성 캐릭터들이 남성에 비해 더 똑똑한 것 같다"고 하자 그는 "그게 현실이다. (웃음) <괴물>에서도 보면 두 세대에 걸쳐 여성 캐릭터가 없다. 그러다보니 그 가족 전체가 바보같은 결정을 많이 하고 좌충우돌 헤맨다. 엄마같은 여성 캐릭터가 있었다면 그렇게 한심하게 한강변을 돌아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복수극 3부작 및 <설국열차>를 제작한 한국을 대표하는 박찬욱 감독은 <기생충>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냐, 질투하는지 기뻐하는지 묻는 한 관객의 짓궂은 질문에는 
"저는 박찬욱 감독을 아주 사랑하며,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그의 작품들 모두 존경한다"라며 "그는 영화광팬으로 영화평론가를 할 당시 훌륭한 영화평을 많이 남겼다. 박찬욱 감독님은 제 <기생충> 시사회에도 오셔서 축하도 많이 해주셨고, '완벽하다'는 칭찬도 해주셔서 무척 쑥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이어 "선배감독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 것은 무척 기쁜 일이다. 감사하게도 배우들과 함께 다음날 아침까지 술을 마시며 축하해주셨다. 박찬욱 감독은 술을 아주 느리게 마시지만 잘 마신다 (very slow but strong drinker) 항상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다. (웃음)"라고 마지막 질문에 답했다.   

한편, 영화 <기생충>은 현재 네덜란드 극장에서 20여만 관객을 동원하며 아시아 영화 중 역대 최고 흥행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마스터클래스를 마치고 저녁에 열린 <기생충> 흑백판 월드 프리미어 상영회에는 1500여명이 넘는 관객이 좌석을 꽉 채웠고 영화제 관객들이 투표로 선정하는 관객상도 수상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젊은 영화감독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냐"는 물음에 먼저 "지금 많이 힘들어요?"라고 되물은 뒤 "저도 그랬어요"라고 답했다. 그런 후, "자신을 만족시키려고 애써보세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봉준호 감독은 관객의 쏟아지는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를 떠났다. 
 

[현장-로카르노영화제] 봉준호-송강호, 현지 시네필과 함께한 '토론회'
http://omn.kr/1kgau 

[현장] 훈훈했던 독일 뮌헨국제영화제 '봉준호 회고전'
http://omn.kr/1jyya

[인터뷰] 봉준호 영화 메이킹 만든, 오르테가 감독과 플뤼숑 프로듀서http://omn.kr/1lgly


네덜란드 간 봉준호 "'부재의 기억', 훌륭한 영화"
http://omn.kr/1mfc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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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함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칼럼니스트및 인권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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