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만큼은 세계 최고이지만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는 스파이 '랜스 스털링(윌 스미스). 그는 일본에서의 작전 중에 빌런(악당) '킬리언(벤 멘델슨)'을 만나고, 작전의 목표였던 무기를 빼앗긴다. 임무에 실패한 후 랜스는 스파이 에이전트의 적이라는 누명을 쓰고 쫓기는 신세가 되고,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기 연구부에서 일하는 괴짜 '월터(톰 홀랜드)'를 찾아간다. 월터의 도움을 받으려던 랜스는 오히려 실험 중이던 약을 먹고 비둘기로 변해버리고, 킬리언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장은 처음인 괴짜 천재와 동행에 나선다. 

첩보원들의 고뇌를 다루는 에스피오나지 장르는 '제이슨 본', '킹스맨', '미션 임파서블' 등의 시리즈를 포괄하는 장르로, 다양한 매력을 뽐내며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스파이가 등장하는 영화는 필연적으로 007 시리즈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유들유들한 영국 신사 스파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변형하느냐에 따라 각 시리즈의 개성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동료들과의 팀 플레이를 강조하거나(미션 임파서블), 안티테제인 인물을 내세울 수도 있으며(제이슨 본), 적극적인 패러디도 시도된다(킹스맨). 블루스카이의 신작인 <스파이 지니어스>도 예외가 아니다. 

제임스 본드와 Q라는 캐릭터 재해석
 
 애니메이션 영화 <스파이 지니어스> 스틸 컷

애니메이션 영화 <스파이 지니어스> 스틸 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랜스가 깔끔한 턱시도를 고집하는 것, 그의 차가 온갖 무기들로 무장되어 있는 슈퍼카인 것, 그리고 월터가 임무 중에 자신의 코드명을 '하이드로젠 본드'라고 정하는 것만 보더라도 <스파이 지니어스>가 007 시리즈의 영향에 안에 있다는 점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제임스 본드와 Q라는 캐릭터를 재해석한 대목이다. 랜스는 윌 스미스의 능글맞으면서도 유쾌한 이미지가 그대로 묻어져 나오 인물이다. 미국인이자 흑인이라는 점에서 영국 백인 남성 스파이에 대한 미국의 대답처럼 보이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왈터는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너드 캐릭터를 기존의 Q에 투영시킨 인물로, 이 캐릭터 역시 스파이더맨으로서 매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는 톰 홀랜드의 기존 이미지를 활용한 결과다.

이처럼 캐릭터들을 재해석한 방식은 안일한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미 수년간에 걸쳐서 배우들이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통해 형성한 이미지를 그대로 활용하는 것은 신선함과 거리가 멀다. 한편 이러한 선택은 보장된 재미를 만들어내어서 상업적으로는 안정적일지도 모른다. 단지 두 배우가 과거에 맡았던 배역들의 모습이 아른거려서 영화에서 기시감이 느껴진다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스파이스 지니어스>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특징을 백분 활용해 자칫 익숙한 이미지의 버디무비가 될 뻔했던 영화를 흥미로운 모습으로 포장하는 데 성공한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본질적으로 어떤 상상과 환상이든 영상으로 만들 수 있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을 체화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관객들의 몰입도 역시 다른 실사 영화보다 높다. 그렇기에 애니메이션은 다른 장르들과 달리 개연성의 미비 혹은 플롯의 허술함이 폭넓게 허용된다. 

작중 사람이 비둘기로 변하는 기술이 있다거나 비둘기로 변한 후에도 새와 사람 모두와 대화할 수 있다는 설정은 이러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특징을 적절히 활용한 대목이다. 보이는 것 외에 큰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설정들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사람과 동물, 동물과 동물 간의 케미스트리를 더하고 스토리를 다채롭게 변주시키며 큰 웃음을 이끌어낸다. 그 결과 <스파이 지니어스>는 독특한 개성을 갖춘 영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랜스와 월터, 선과 악에 대한 상이한 이해
 
 애니메이션 영화 <스파이 지니어스> 스틸 컷

애니메이션 영화 <스파이 지니어스> 스틸 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종일관 유쾌하고 밝은 <스파이스 지니어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가볍지는 않다. 진중한 영화의 주제가 적절한 무게감을 부여하며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선과 악의 구분에 관한 것이다.

랜스와 월터는 부득이하게 동행하면서도 시종일관 충돌하는데, 이 갈등의 바탕에는 선과 악에 대한 상이한 이해가 있다. 랜스는 세상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바라보며 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악을 이기기 위한 필요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반해 월터는 원래부터 존재하는 악은 없으며, 필요악은 그저 또 다른 악을 만들어 내는 근원적인 원인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랜스와 월터의 갈등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제인 9.11 테러 전후의 정치외교적 현실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미국이 2차 세계 대전 이후 이른바 '세계의 경찰'로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알 카에다와 IS 같은 악이 생겨난 것이지, 그들이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라는 자아반성적 인식이 영화 안에 스며든 것이다.

이러한 주제는 영화 후반부 랜스와 킬리언이 대면하는 장면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다만 이미 수많은 첩보물과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다양한 형태로 보여준 결과, 이 주제는 더 이상 충격을 주지는 못한다. 실제로 워싱턴에 위치한 스파이 에이전트의 본부가 공격당하는 시퀀스를 보면 <스카이폴>에서 MI6의 본부가 공격당하는 시퀀스를 즉시 떠올릴 술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스파이 지니어스> 스틸 컷

애니메이션 영화 <스파이 지니어스> 스틸 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다른 단점도 있다.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는 전개는 주인공들의 왁자지껄한 모험담이라는 목표에 희생된 개연성의 단면이다. 또한 빌런인 킬리언은 외양이나 성격, 특징 모든 면에서 새로울 것이 없으며 기시감이 가득하다. 랜스와 월터, 두 주인공이 배우가 지닌 매력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과 비교되는 측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파이 지니어스>는 괴짜 과학자와 엘리트 스파이의 동행, 이 시끄럽고 유쾌한 여정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팝콘 영화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한국 드라마와 K팝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이처럼 007 시리즈의 캐릭터와 배경을 미국으로 바꾸고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특징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때 완성되는 영화, <스파이 지니어스>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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