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인터뷰 사진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인터뷰 사진 ⓒ (주)쇼박스

 
"좋게 봐주시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제가 만든 영화 중에서는 평론가와 영화 관계자들의 (이번 작품) 평가가 가장 좋아서 기분 좋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13일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430만 관객을 돌파했다. 관객뿐만 아니라 평단에서도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던 10.26 사태를 다루면서, 정치적 색깔은 배제하고 인물들의 심리에 집중해 냉정하고도 사실적으로 재현했기 때문. 개봉을 앞둔 지난 1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모처에서 우민호 감독을 만났다. 

<남산의 부장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시점으로 1979년 10.26사태를 다시 그린 작품이다. 1990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김충식 전 기자의 취재록이 원작이며, 우민호 감독이 직접 판권을 구입해 각색을 거쳤다. 원작은 당시 제2의 권력이라 불렸던 중앙정보부의 18년 역사를 담은 방대한 논픽션인 반면, 영화는 그 중 10.26사태 직전의 40일 만을 집중해서 보여준다. 우 감독은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밝혔다.

"(10.26사태는) 우리 근현대사에 가장 큰 변곡점이니까, 그 사건에 거대한 인과관계나 뚜렷한 대의가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작을 보니) 그게 희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오히려 인간의 감정, 관계의 균열에서 10.26이 비롯되지 않았을까. 한때 동지였고 군인이었고 5.16쿠데타를 함께 도모했던 이들이 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었나. 이들이 느낀 감정은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도 느끼는 존중, 배신, 충성, 모멸, 집착, 시기 질투... 이런 감정들이었을 거다. 

정치적인 대의나 거시적인 그림으로 10.26을 재조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보편적인 감정을 많이 다루고 싶었다. 그 시대에 살았던 그들의 내면과 심리를 쫓아가면서 그 사건을 다시 조명하고 싶었다. 10.26 사건이 과거에 머무는 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되돌아보자는 의미다."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인터뷰 사진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인터뷰 사진 ⓒ (주)쇼박스

 
김재규를 모티브로 한 김규평(이병헌 분)은 극 중에서 부마항쟁을 무력 진압하는 것에 반대하고 김영삼 총재 의원 제명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당시 남산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고문했던 중앙정보부장이 했던 말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실제로 김재규는 법정 최후진술에서 10.26사태를 스스로 혁명으로 규정하며 "자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우 감독 역시 "원작에 근거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저도 원작을 보면서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최후 진술이) 완전히 거짓말일까. 진심이 들어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재규는) 유신 독재의 부역자였다. 하지만 (유신 체제가) 너무 갔다고 생각한 거지. 그것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은 있지 않았을까 싶다. (박통에게)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쇼'라고 하지 않나. 정치를 대국적으로 풀어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움켜쥐고 강압적으로만 해서는 안 된다. 그 분의 입장은 그랬던 것 같다. 그러면 부러진다는 거다. 최후진술에서처럼 정말 민주투사였을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대신 (박 대통령에게) 조금 더 유연성이 필요하고 우리가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화의 가장 큰 축은 김규평 중정부장과 곽상천(이희준 분) 대통령 경호실장의 대립이다. 차지철을 모티브로 한 곽상천은 부마항쟁에 참여한 시민들을 "탱크로 다 밀어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인물. 극 중에서 박통(이성민 분)은 김규평과 곽상천 사이를 저울질 하며 두 사람의 충성 경쟁을 부추긴다. 우민호 감독은 박 대통령의 용인술이 실제로 그러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용인술은 정말 유명하다.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싶다. 2인자를 키우지 않는다는 것. 2인자끼리 충성 경쟁을 시키고, 한 명이 올라온다 싶으면 다른 이유로 쳐냈을 것이다. 또 다른 2인자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췄다. 말년에 그 저울이 기울기 시작했다. 경호실장과 정보부장 사이에서 (차지철 쪽으로) 치우치게 된 거다.

그렇게 용인술에 뛰어났던 사람이 왜 마지막 순간에는 흔들렸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에는 자기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위태위태함을 느꼈겠지. 공포과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 이야기만 듣고 듣기 싫은 이야기는 차단한 거다. 그래서 10.26사태가 나왔다고 본다."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인터뷰 사진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인터뷰 사진 ⓒ (주)쇼박스

 
박용각(곽도원 분) 전 중정부장과 김규평 현 부장의 갈등은 영화의 또 다른 축이다. 김형욱을 모티브로 한 박용각은 정권에서 실각당한 뒤 미국으로 망명해 전 세계에 유신 체제의 실체를 폭로한다. 실제로는 1977년 발생한 프레이저 청문회와 코리아 게이트를 영화는 1979년 10.26사태 직전으로 설정했다. 우 감독은 "그 사건이 10.26사태의 단초가 됐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그렇게 바꿨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재규와 김형욱은 실제로 육사 선후배 사이였지만 영화에서는 친구로 등장한다. 우 감독은 이에 대해 "두 사람이 한 인물처럼 보이길 바랐다"고 밝혔다.

"김규평 중정부장과 박용각 전 부장이 영화에서는 친구 사이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선후배 사이다. 이걸 친구 사이로 바꾼 이유는 영화를 통해서 두 부장이 한 인물처럼 보이길 바랐다. 1인자에게 쓰임을 당하다가, 결국은 버려질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운명을 타고난 2인자들이지 않나. (영화를) 찍을 때도 둘이 대구로 찍었다. 마치 포개면 같은 인물인 것처럼 보이게. 마지막에 그들의 어떤 최후의 모습도 비슷하게 연출했다. 구두를 잃어버린 채 바라보는 장면, 피 묻은 양말을 바라보는 장면이라든지."

극 중에서 박용각은 프랑스 파리 방돔광장에서 김규평이 보낸 요원들에게 납치돼 실종된다. 실제로 김형욱이 실종됐던 장소와 동일한 장소다. 한국, 미국, 프랑스까지 3개국 대규모 로케이션으로 진행된 <남산의 부장들> 촬영 중 우 감독은 "방돔광장 섭외가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를 재연하기가 너무 힘들다. 하지만 유럽은 그대로 다 보존돼 있지 않나. 오히려 촬영은 (해외가) 수월했다. 옥외 광고판만 CG로 지우면 되니까. 단지 섭외가 좀 어려운 곳들이 있었다. 미국 워싱턴 메모리얼 파크도 어려웠고, 특히 방돔 광장은 쉽게 내주지 않더라. 굉장히 화려한 광장인데 프랑스 자국 영화도 거기서 찍은 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저는 거기서 꼭 찍고 싶었다. 왜냐면 실제로 사건(김형욱 실종사건)이 거기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파리 시청, 경찰청에서 모두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촬영 허가가 났다. 당시 프랑스 현지 스태프들도 60~70명 있었는데 그들도 모두 놀라더라. 자기들도 방돔 광장에서 못 찍었다고. 현지 프로덕션 로케이션 매니저에게 물어봤더니 일단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무지하게 뜨겁고, 1979년에 실제로 사건이 여기서 일어났다는 게 상당히 흥미롭고 거기에 의의를 뒀다고 하더라."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인터뷰 사진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인터뷰 사진 ⓒ (주)쇼박스

 
10.26사태 직후 김재규는 중앙정보부가 있는 남산이 아닌 육군본부로 향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밝혀진 게 없다. 추측만 무수히 많을 뿐이다. <남산의 부장들> 역시 그 부분은 상상력을 더하지 않고 그저 미스터리로만 남겨뒀다. 

"저한테도 (그 선택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왜 그가 자신의 본거지인 중정으로 가지 않고 육본으로 차를 돌렸을까. 여러 가지 추측이 있다. 영화에서 어느 하나로 방점을 찍고 싶지 않더라. 그런 의문도 들었다. 만약 원래 계획대로 중정으로 갔다면 역사가 바뀌었을까. 원작자에게도 물어봤는데 바뀌지 못했을 거라는 사람도 있고 바뀌었을 거라는 사람도 있다더라. 영화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딱 거기까지다. 그 이후는 중장년층분들 중에서는 아시는 분들도 많지 않겠나."

<내부자들> <마약왕>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이 그동안 연출한 영화들은 대부분 남자 인물들의 욕망이나 권력 다툼을 그리는, 이른바 '남자 영화'들이었다. 이번 <남산의 부장들>에서 역시 대사가 있는 여성 인물은 박용각을 돕는 로비스트 데보라 심(김소진 분)이 전부다. 그 역시도 주변 역할에 그친다. 우 감독은 "그런 부분에 대해 비판하는 건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100% 그 비판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면서도 "언젠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를 즐겨본다. 나는 그런 게 재밌다. 와이프가 본 거 또 보고 있냐고 타박할 정도다. 그 드라마가 되게 리얼하다. 그런데 보는 것이랑 만드는 건 다를 수도 있으니까. 내 안에도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면이 있다. 그동안은 남자 영화를 주로 했다면 언젠가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방향을 옮겨서 여자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사실 되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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