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포스터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지난 1월 16일 개봉한 프랑스 여성 퀴어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흥행세가 폭발적이다. 

예술영화로 분류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개봉 첫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예매율 상위권을 기록하며 상업영화에도 밀리지 않은 인기를 과시했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다양성 영화의 침체 속 개봉 16일 만에 10만관객을 돌파하며 2020년대 최고의 아트버스터 탄생을 예고했다.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되는 상업영화 기준에서 10만 관객은 하루 관객 동원 수치이지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처럼 소규모 스크린, 상영 회차를 보장받는 독립, 예술영화 시장에서 10만 관객은 상업영화의 수백만, 천만 그 이상을 상징한다. 특히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2월 1일 기준 개봉 3주차에 접어 들었음에도 하루 평균 관객 5000명 동원 및 예매율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고, 이에 힘입어 기존 독립예술영화관 중심 상영에서 일반 상영관 상영까지 추가 확대 되면서 장기 상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 그린나래미디어(주)


지난해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프리미어 상영 이후 입소문이 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부국제 좌석 전석 매진에 이어 제9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상영 때도 예매 시작과 함께 매진 행렬을 기록하는 등 여성, 퀴어 소재 예술 영화를 찾는 관객들 사이에서 최고의 기대작으로 떠오른 바 있다. 개봉 전 열린 시사회도 전 회차가 매진되는 등 영화를 향한 관객들의 열기가 개봉 후에도 고스란히 이어진 것이다. 

부국제,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등 여러 시사회를 통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이미 본 관객들도 영화를 다시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N차 관람이 많은 것 또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흥행 비결 중 하나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 매료된 관객들은 해당 영화를 두고 여러 번 볼수록 곱씹을 것이 많은 작품이라고 입을 모은다. 표면적으로는 여성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 분)와 귀족 여성 옐로이즈(아델 하에넬 분)의 금기되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보면 볼수록 영화 속 곳곳에 숨겨진 이미지와 의미들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흥행과 함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연출한 셀린 시아마 감독과 공동 주연으로 참여한 노에미 메를랑, 아델 하에넬에 대한 국내 영화팬들의 관심 또한 높아졌다. 2007년 연출 각본을 겸한 <워터 릴리스>로 입봉한 셀린 시아마 감독은 데뷔작부터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되고 두 번째 연출작 <톰보이>(2011)는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선정되는, 영화계의 떠오르는 혜성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만 소개되었다. 하지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흥행과 함께 한국에 정식으로 개봉되지 않았던 셀린 시아마 감독의 기획전 요청이 쇄도하는 등 관심을 받고 있다. 

<언노운 걸>, < 120BPM >, <원 네이션>을 통해 한국 예술영화 관객에게도 잘 알려진 프랑스 대세 배우 아델 하에넬, 프랑스에서 제작되는 영화의 주조연으로 꾸준히 참여했던 노에미 메를랑 또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후 전세계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배우, 감독 뿐만 아니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촬영 감독을 맡아 현재 각종 영화제의 촬영상을 휩쓸고 있는 클레어 마손 또한 앞날이 기대되는 여성 영화인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감독, 프로듀서, 배우, 촬영 포함 주요 제작진 80%가 여성 스태프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비중 있는 주요 캐릭터는 전부 여성으로 채워져있고, 남성 배우에게 주어진 대사는 고작 몇 마디 뿐이다. 그간 예술가의 생애를 다룬 영화, 소설에서 남성 예술가를 위한 뮤즈 정도로만 대상화 되었던 여성 모델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창작자와 모델의 동등한 시선을 요구하고 관철시키는 주체적인 협업자로 전복된다. 그리고 이 여성과 함께 그림을 완성하는 이 또한 18세기 유럽 예술사에서 지워진 존재인 여성이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 그린나래미디어(주)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영화인으로 제71회 칸영화제에서 영화계의 성평등을 촉구하는 레드카펫 퍼포먼스를 기획했던 셀린 시아마 감독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남성) 예술가와 (여성) 뮤즈의 전통적인 관계에 대한 재해석을 강조한 바 있다.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표현되는 창작자와 뮤즈는 일방적인 관계이고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예술가의 동료, 협력자를 숨기기 위해 만들어 놓은 단어일 뿐이다. 남성의 시선에서 여성을 압도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닌, 여성의 시선에서 여성 동료들과의 협업을 강조한 감독은 뮤즈라는 개념을 지우고 두 협력자의 지적인 창작 과정을 보여 준다. 여성의 눈으로 시선과 관계의 평등을 말하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는 예술가와 협업자의 공동 창작 뿐만 아니라 옐로이즈, 마리안느보다 계급이 낮은 소피(루아나 바야미 분)와의 관계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 배우, 제작진의 영화임에도 불구, 빠른 속도로 10만 관객을 돌파하며 앞으로 그 이상의 관객 동원을 기대하게 만드는 흥행작이 된 것은 여성의 시선에서 세상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빼어난 여성 서사를 보여주었기 때문은 아닐까. 

지난해 열린 제72회 칸영화제에서 <기생충>과 함께 황금종려상 유력후보에 꼽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셀린 시아마 감독의 연출력과 작품성에 대한 열렬한 찬사에도 불구하고 각본상에 그친 바 있다. 

이후 여러 영화제에 상영되며 여성 서사에 목말라있던 전세계 관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오는 2월 28일 열리는 세자르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노에미 메를랑, 아델 하에넬), 여우신인상(루아나 바야미), 촬영상, 의상상, 미술상, 음향상 총 10개 후보에 올랐다.

한편 프랑스의 오스카로 불리는 2020년 세자르 영화제 최다 노미네이트 영화는 연이은 아동 성폭행 혐의로 물의를 빚었던 로만 폴란스키의 <더 드레퓌스 어페어>이다. 이에 대한 프랑스 각계의 비판과 보이콧이 쏟아지는 가운데 세자르상 조직위원회 측은 로만 폴란스키 영화를 수상 후보로 선정한 것에 문제 없다는 반응이다. 영화감독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고백한 배우(아델 하에넬)와 동시에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감독(로만 폴란스키)을 같은 장소에 초청했기에 더 큰 비판을 받는 세자르영화제의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궁금해진다. 세자르영화제가 어떤 선택을 하던간에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향한 관객들의 사랑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수입배급을 맡은 그린나래미디어 주식회사 측은 10만 관객 돌파에 힘입어 그간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셀린 시아마 감독의 전작 <워터 릴리스>, <톰보이>, <걸후드>(2014) 등을 만날 수 있는 감독전을 기획 중이라 밝혀 영화팬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개봉 16일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여성 영화의 저력을 보여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절찬리에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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