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기자말]
사채업체에 쫓기는 의사, 수술울렁증으로 수술실에만 들어가면 구토하는 의사.

이번에 새로 돌담병원에 합류한 젊은 의사들의 캐릭터다. 참으로 가혹한 운명을 지닌 이들을 받아들인 SBS <낭만닥터 김사부2>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에 대한 경외를 실천하고 있는 이들 젊은 의사들의 활약덕분에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중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수술울렁증을 가진 의사 차은재(이성경)였다. 수술하는 것이 주 업무인 흉부외과의사가 수술실에만 들어가면 구토가 쏠린다니. 진정 '치명적인 한계'를 지닌 인물이었다. 과연 은재가 한계를 극복하고 진짜 의사가 될 수 있을지 의아스러웠다. 드라마가 끝날 때쯤엔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의사를 그만두고 진짜 나를 찾아 나서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하며 지켜봤다.

그런데 웬걸? 드라마가 중반에 이르기도 전인 5회에 은재는 김사부(한석규)가 처방한 약을 먹고 울렁증을 극복해낸다. 그러더니 8회에는 자신을 무시해온 사람들에게 또박또박 할 말을 하며 자기 자신을 지켜낸다. 도대체 김사부가 처방한 약이 무엇이길래 은재를 이토록 변하게 한 걸까?
 
받아들이기 힘든 나의 약점
 
 수술울렁증이 있는 은재는 진정제를 먹고 수술실에서 잠이 들기 일쑤다.

수술울렁증이 있는 은재는 진정제를 먹고 수술실에서 잠이 들기 일쑤다. ⓒ SBS

 
드라마 초반 은재는 자신이 수술 울렁증을 갖고 있단 사실을 철저히 숨긴다. 수술을 해야 할 때면 청심환과 진정제를 먹고, 심호흡을 하고, 이번엔 괜찮기를 바라며 수술실에 들어간다. 하지만, 결과는 늘 둘 중 하나다. 수술 중 구토하며 나가버리거나 잠들어 실려 나가거나. 그런데도 은재는 나무라는 선배들에게 "며칠 동안 잠을 못자서 피곤해서 그랬습니다"라고 둘러댈 뿐이다.

돌담병원에서 처음 수술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은재는 2회 돌담병원에서 수술을 하다가 구토가 일어나 뛰쳐나가고 만다. 그 후 김사부를 찾아가 "실은 제가 오전에 먹은 빵이 체했던 모양입니다. 수술을 앞두고 컨디션 관리를 잘했어야 했는데 첫 수술부터 이런 모습을 보여서 죄송합니다. 면목 없습니다"라고 변명한다.

늘 이런 식이다. 은재는 늘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모면하거나 회피한다. 매번 비슷한 핑계를 대고 같은 상황을 반복할 뿐이다. 도대체 매우 똑똑한 인물로 묘사되는 은재가 왜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성찰하지 않는 것일까?

이는 은재 스스로가 자신의 약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술하는 의사로서 '나는 수술울렁증이 있는 사람'이라는 진실을 수용한다는 것은 '나는 수술할 수 없는 사람' 그러니까 '의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결론에도 이를 수 있는 위험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때문에 은재는 모두가 알고 있고,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진실을 외면한다. 그냥 이번 한 번만 모면하면 괜찮아질 것이라 믿으며 회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사부는 이런 은재의 내면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는 "빙빙 둘러대서 말하지 말라"고 조언해도 계속해서 핑계만 대는 은재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솔직하게 인정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 왜 들키면 자존심 상해서? 아님 뭐 우습게 보일까봐?"

알약으로 전한 '수용'의 메시지
 
 김사부는 수술울렁증이 있는 은재를 믿음을 가지고 지켜봐준다.

김사부는 수술울렁증이 있는 은재를 믿음을 가지고 지켜봐준다. ⓒ SBS

 
이 말을 들은 은재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한다. 하지만 그냥 듣고 흘려 버리기에는 너무나 뼈아픈 말이었을 것이다. 5회에 또 다시 은재가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때 김사부는 은재에게 다가와 약을 건네며 따뜻하게 말한다.
 
"수술 울렁증 줄여주는 약이야. 특별히 조제한 거니까 부작용도 없고 졸립지도 않을 거야."
 
김사부가 전해준 약을 먹고 은재는 수술대에 선다. 그런데 자신의 울렁증을 부인하며 숨기려해왔던 은재의 태도가 달라져있다. 은재는 "오늘 수술 괜찮겠어?"라고 물어보는 선배 의사 배문정(신동욱)에게 "괜찮길 바라야죠. 김사부님이 주신 약까지 먹었는데요"라고 답한다. 그리고 보란 듯 수술을 해낸다. 수술을 마친 후엔 엄마와 통화하면서 한바탕 눈물을 쏟는다. "내가 너무 잘해내서"라고 울먹이며 말이다.

무엇이 이렇게 은재를 변하게 했을까? 어쩌면 정말 김사부가 특효약을 조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약과 함께 따뜻한 음성으로 건넨 말 "수술 울렁증을 줄여주는 약이야"라는 그 한마디가 은재에겐 특효약이 아니었을까 싶다. 수술 울렁증을 줄여주는 약을 조제할 수 있다는 말은, 이런 울렁증을 겪는 게 은재만이 아니라는 의미다. 누구나 아플 때 약을 먹고 나아지듯, 울렁증 역시 약을 먹고 고칠 수 있는 하나의 증상이라는 뜻이다.

늘 '그러면 안 돼'라는 말만 들어왔던 은재에게 김사부의 따뜻한 한마디는 '그럴 수도 있다'는 수용의 메시지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제 은재의 마음엔 '울렁증 있는 의사라니 말도 안 돼'라는 생각 대신 '약을 먹고 이겨내면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된다. 수술울렁증을 자기 자신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수용해내게 된 것이다. 때문에 은재는 문정의 질문에 "괜찮습니다"하고 부인하는 대신, "괜찮길 바라야죠"라고 솔직하게 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자, 증상은 훨씬 가벼워진다. 수술 중 잠깐 힘든 시간이 있긴 했지만, 은재는 아무 문제없이 끝까지 수술을 해낸다. 숨기려하지도, 회피하려도 하지 않고 '그래, 난 울렁증이 있어. 하지만 그래도 난 괜찮아'라고 마음먹자, 울렁증은 더 이상 약점이 되지 못한다.

확산되는 수용의 효과
 
 자기 자신의 약점을 수용해낸 은재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해낸다.

자기 자신의 약점을 수용해낸 은재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해낸다. ⓒ SBS

 
자기 자신을 수용한 후 필요한 건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의 자세다. 김사부는 수술에 성공한 은재를 잘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지켜봐준다. 이런 믿음은 은재에게도 전달된다. 때문에 은재는 6회 조폭두목 수술을 앞두고 걱정하는 돌담병원 직원들에게 "김사부가 하라잖아요. 나한테 이런 지시를 내려주신 건 내가 해낼 수 있다고 믿어주신 것 아니겠어요?"라고 말한다. 은재는 이번엔 잠깐의 울렁임도 느끼지 않고 더 멋지게 해낸다. 어쩌면, 김사부가 처방한 건 진짜 약이 아니라 수용과 '할 수 있다'는 믿음, 즉 플라시보였을지도 모른다(실제로 6회의 제목은 '플라시보'였다).

수술울렁증을 극복하며 자기 자신을 신뢰하게 된 은재는 보다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본다. 8회 무조건 보호자에게 사과를 하라는 병원의 지시를 따르기도 하지만 곧바로 내면의 진실을 외면했던 자신의 태도를 후회한다. 수간호사 명심(진경)은 이런 은재에게 "다른 사람이 원하는 정답 말고, 차 샘이 원하는 정답은 뭔데요?"라고 조언한다. 이에 은재는 다시 용기를 낸다.

살인을 한 무기수 환자를 찾아가 "꼭 살아서 모범수가 되어서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라"고 말하며 환자를 돌보며 느꼈던 마음의 갈등을 털어낸다. 또한, "수술실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의사는 필요 없다"며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고 했던 선배에게도 "약 먹고 있습니다. 이 약 먹으면서 수술실도 잘 버텨내고 있고요. 선배도 저한테 떠나라마라 막 뭐라 하지 마세요"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는 은재가 자신의 울렁증을 더 이상 부끄럽게 여기지 않음을,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 장면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은재는 자신의 다른 약점들도 수용해간다. 8회 말미, 은재는 우진에게 자신이 의사집안의 딸임을 밝히고, "그 중에 내가 제일 좀 처지는 편이랄까?"라고 말한다. 이전의 은재였다면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인정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울렁증 극복 경험'에 힘을 얻은 은재는 이제 이런 자신의 모습도 보다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은재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갈까? 아마도 자기 자신의 약점을 수용해 낸 용기,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해 가지 않을까? 나아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한 그 넓은 마음으로 이제 막 사랑하기 시작한 우진(안효섭)의 상처까지도 보듬어 안아 주지 않을까 싶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고 사랑하며 스스로를 믿을 수 있을 때, 사람은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하게 발휘할 수 있다. 지금 삶에서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무엇이 있는가? 답답하고 길이 없어 보이는가? 그렇다면 "솔직하게 인정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 라는 김사부의 말을 떠올려 보자. 은재가 해냈듯 '이러면 안 돼! 이런 일은 절대 생기면 안 되는데 누가 알면 어떡하지?'가 아니라 '그래 나 지금 잘 안 풀려. 지금 내 상황이 이렇구나' 하고 담담히 인정해보자. 그리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찬찬히 자신을 들여다보자. 분명, 길이 보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 (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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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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