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중고 시장의 규모는 10~20조로 알려진다. 이 중에서 회원 숫자가 1800만 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 중고 거래 사이트인 중고나라의 거래 규모는 2019년 3조 5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매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중고 상품이 거래되는 만큼 사기도 끊이질 않는다. "중고나라에서 거래했는데 제품 대신에 벽돌이 왔다"는 사기꾼 얘기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지난 1월 18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사기의 재구성-얼굴 없는 그놈을 잡아라' 편은 지난 6년간 중고거래 사이트를 무대로 사기 행각을 벌여온 일당을 추적했다. '그놈'은 누구인가? 피해자들은 어떻게 '그놈'에게 속은 걸까?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의 한 장면

▲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의 한 장면 ⓒ SBS


그동안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일어나는 사기 범죄는 피해 금액이 많지 않고 범행 수법이 단순하여 심각하게 여기지 않곤 했다. '그놈'은 지금까지 알려진 중고 거래 사기꾼들과 다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르고 범죄 수익의 행방을 추적할 수 없도록 계좌 대여와 가상화폐로 돈세탁을 하는 등 보이스피싱 범죄의 진화된 양상을 띠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이요환 제주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반장은 "한 달에 (범죄 수익금이) 최소 억 단위"라며 "(피해 규모가) 100억 이상은 된다"고 밝힌다.

'그놈'은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다양한 물건으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휴대전화, 가전제품, 가구 오토바이, 캠핑용품, 자전거, 전동휠체어, 악기, 명품을 비롯하여 달러 환전, 상품권까지 사기 품목으로 올렸다. 심지어 컨테이너집이라 불리는 '농막'을 싸게 판매한다는 사기도 친 적도 있다.

'그놈'은 어떤 방법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걸까? '그놈'에게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모여 '그놈'을 추적해 판매글을 올릴 때마다 사기임을 경고한 <사기나라>의 회원들은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에게 '그놈'만의 몇 가지 특징을 알려준다.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의 한 장면

▲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의 한 장면 ⓒ SBS


첫째, '그놈'은 판매 게시물을 올릴 때 타이핑한 글이 아닌 이미지를 사용한다. 텍스트로 올리면 <사기나라> 회원들이 찾아내기 때문이다. 둘째, '그놈'은 도용된 아이디를 쓴다. <사기나라>의 회원은 '그놈'이 쓴 한 아이디가 "2011년 3월 30일 이후로 활동을 안 했던 아이디"라며 휴면아이디의 갑작스러운 사용은 도용을 당한 증거라고 설명한다. 셋째, 게시물에 '선물 받은 미개봉 신제품'이라고 소개한다. 여러 가지 질문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다.

넷째, 연락처를 표시하지 않는다. 전화번호 대신에 카카오톡 아이디만 올린 후 살 것 같은 사람에게만 연락처를 건넨다. 사용된 전화번호는 다른 사람의 명의인 대포폰이거나 인터넷전화다. 그리고 가짜 신분증, 가짜 사업자등록증을 사진으로 보내거나 포털사이트에서 매장을 확인할 수 있다는 말로 상대의 의구심을 지운다.

다섯째, 지역은 웬만하면 직접 오기 힘든 외딴곳에 위치한 매장을 고른다. 혹시 상대방이 인터넷 지도 서비스를 통해 매장을 검색할 가능성을 대비하여 간판 등 가게 바깥에 전화번호가 적히지 않은 곳을 고르는 치밀함도 보인다. 때론 포털사이트 상에는 존재하지만, 실제론 없는 가짜매장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놈'에게 천만 원이 넘는 금액을 입금했던 가전제품 사기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강릉 화인전자 치면 (포털사이트에) 나온다고 그러면서 사업자 등록증 사진까지 보여주었다. (포털사이트에) 등록도 되어있는 업체라 믿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의 한 장면

▲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의 한 장면 ⓒ SBS


'그놈'은 이런 방법으로 사람들을 속인 후에 고수익 재택 알바나 대출을 미끼로 대여받은 통장을 이용하여 돈을 받는다. 그 후엔 10단계에 걸쳐 계좌 이체와 암호화폐로 돈세탁을 한다. 컴퓨터는 해외의 IP를 이용하여 추적이 쉽지 않다. 인터폴의 협조를 받아 '그놈'을 추적해온 제주지방경찰청 사이버 수사대는 이들의 수법이 매우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이루어진다고 밝힌다.

'그놈'은 사기 행각을 방해하는 사람들에게 보복성 테러를 가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그놈'은 거래를 위해 받았던 전화번호와 주소를 이용하여 무차별적인 협박을 가한다. 먼저,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무료나눔 게시물에 적어 전화사용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다음엔 주소지에 배달 음식을 마구 시켜 피해를 준다. SNS에서 상대방의 사진을 찾아 협박에 사용할 적도 있고, 가족이나 애완견 등을 언급하며 위협을 준 사례도 존재한다. '그놈'에게 보복성 테러를 당한 한 피해자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 개명까지 했을 정도다.

'그놈'에게 피해를 본 많은 사람이 보복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판매글을 찾아 사기임을 알리고 있다. 이들은 대여된 통장에 1원 송금을 하며 메시지를 적어서 위험성을 경고한다. 피해자들이 행동에 나선 이유는 금융기관과 경찰이 도와주지 않기 때문이다. 2011년 제정된 <전기통신 금융사기 피해금 환급 특별법>에 따르면 보이스피싱과 달리 중고거래 사기는 계좌 지급 정지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의 한 장면

▲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의 한 장면 ⓒ SBS


그렇다면 사기 피해가 발생하는 중고거래 플랫폼 가룬데 가장 회원이 많은 '중고나라'의 입장은 어떨까? '중고나라' 관계자는 이것은 경찰의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저희는 쇼핑몰이 아니다. 게시판이다. 그러니까 사기 거래가 이루어졌는지 파악하는 게 불가능하다."

'중고나라'는 홈페이지에 "통신판매중개자일 뿐이며 통신판매자의 당사자가 아닙니다. 개인 간 거래 시 판매회원과 구매회원 간의 상품거래 정보 및 거래에 관여하지 않으며, 그 어떠한 의무와 책임도 부담하지 않습니다"라고 적었다. 거래와 관련하여 법적인 책임이 없다는 의미다.

신동욱 변호사는 중고나라의 주장에 반박한다. 그는 "본인이 고지한다고 해서 법상 의무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현행법상 통신판매 중개자는 의뢰자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는데 카페에 판매글을 올리는 회원은 통신판매자에 속하니 중고나라도 통신판매중개자로 볼 여지가 있다는 의견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의 한 장면

▲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의 한 장면 ⓒ SBS


통신판매자중개자들의 책임을 강조한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은 발의는 되었지만, 지금도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그런 사이에 피해자는 계속 늘어만간다. 수사기관과 공공기관의 느린 행보 속에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건 시민들의 자발적인 활동 덕분이다.

'그놈'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사기나라>를 중심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과거  사기를 당한 경험이 있던 김화랑씨는 2006년에 개설한 인터넷 사기 피해 정보공유 사이트 <더 치트>를 통해 피해를 예방하고 있다. 오윤성 순천향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시민들의 활약을 높이 평가한다.

"모든 사기 범죄 피해를 국가기관이 막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 치트>, <사기나라> 등이 경찰 같은 수사 조직과 연계가 된다면 이런 종류의 사기범죄를 막는 데 대단히 효과적일 것이다."

'그놈'이 저지른 범죄는 사기죄에 국한하지 않는다. 피해자들을 대한 협박죄와 더불어 배달폭탄을 저질러 자영업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업무방해죄까지 저질렀다. 대포폰은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죄, 돈세탁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죄에 해당한다. 수많은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 사기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범죄자들이 활개를 치며 새로운 피해자를 양산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려는 시민들이 용감하게 나섰으니 이젠 정부와 국회가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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